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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학송마을, 장흥마씨의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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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1  1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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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안양면 학송리를 가는 길은 주로 풍암~수문간의 군도 9호선 길을 이용한다. 면사무소가 위치한 운정을 지나면 요곡 입구에서 "요곡재(일명 여꿋재, 요곡峙)" 10리 고개길이 위치한다. 지난날에는 꼬부랑 산길을 이용한 오지길이었으나 1992년 확장하여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산마루 정상에 서면 준용하천 홍거천과 운정, 모령 앞 들판이 조망된다. 내리막길을 내달리다 보면 화개산(華蓋山 230m) 아래 자락에 장흥馬氏의 집성촌 학송마을이 위치한다.

   
 

마을의 주산인 화개산은 안양면의 주산 사자산(獅子山 666m)의 낙맥이 동으로 뻗어가면서 검암산(500m), 삼비산(664m), 상제봉(620m), 투구봉(520m), 매봉산(370m) 등을 형성하였다. 이중 검암산(칼바위산)에서 뻗어 내린 낙맥에 화개산이 위치한다. 동쪽은 장수마을, 서쪽으로는 요곡재를 넘어 요곡마을과 경계하며, 남쪽은 화개산 줄기가 뻗혀 있고, 북쪽으로는 학송 저수지와 사자산 끝 골치에 이른다.

   
 

마을은 1580년경 충정공(馬天牧)의 6대손인 馬麟瑞(1512~1594)가 인근 장수리 주암촌에서 이곳 화개산 아래 해발 70~80m 자락에 입촌 후 마을을 조성하였다. 이때부터 주변 소나무에 학(鶴)이 서식하여 학송(鶴松)이라 불리었다. 또한 마을 앞으로 학송천의 맑은 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 산수(山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후 남평文氏, 진주鄭氏, 흥덕張氏 등이 입촌하여 성촌되었다.
1970년경 한때에는 인근 장수마을과 합하여 장흥마씨가 100호 가량 거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은 1963년 안양분교가 설립된 후 1973년 안양북초등학교로 승격되어 학송과 장수, 수락 3곳 마을 태생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하였다. 1989년 취학아동 감소로 폐교하여 운동장은 감자와 쪽파 밭으로 변모하였다.
지금은 25호의 70~80대 노령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장흥마씨가 15호다. 다른 농촌과 다를바가 없으나 화개산을 등지고 동향으로 마을이 조성되어 마을을 비추는 해가 짧아 한적함이 더한다. 마을 앞 광활한 농토는 비옥하여 여름에 감자, 가을에 쪽파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 두 작물의 생산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장흥마씨 대동보는 1808년 무진초보를 시작으로 2차 1840년 경자보, 3차 1922년 임술보, 4차 1963년 계묘보, 5차 1996년 병자보를 편찬하였다.
이중 학송마을 마영완(1942년생)이 소장하고 있는 2차 경자보 6권 1질과 5차 병자보 1권이다.

장흥마씨의 시조는 마완(馬浣)이다. 은(殷)나라 양성인(陽城人)으로 학식과 덕행이 높은 군자(君子)이다. 은나라 말기에 마완(馬浣)·마장(馬莊) 부자는 주왕(紂王)의 폭정에 인한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경서(經書)를 가지고 은거하다가 나라가 멸망한 뒤에 마장(馬莊)이 기자(箕子)와 더불어 조선에 처음으로 동래 하였다고 한다.
중시조는 마혁인(馬爀仁)이다. 고려 1085년(선종3)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판개성윤(判開城尹) 등을 지냄으로써 가문에 중흥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때부터 후손들의 벼슬이 대대로 이어졌으며 가첩이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11세 충정공(마천목, 1358~1431)은 1398년(태조7)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안군(靖安君) 이방원을 도와 공훈을 세워 1399년(정종1)에 상장군(上將軍)에 올랐다. 이듬해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다시 정안군 측의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워 조선 왕조의 기틀을 잡는데 공헌하여 좌명공신삼등에 녹훈되었다.

   
 

이후 전라도병마절제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장흥부원군에 봉해졌다. 타계하자 세종은 영의정에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며, 곡성 충정묘, 장흥 충현사, 강진 충정사, 의성 화산서원 숭절사에 배향됐다.
※마천목 좌명공신녹권(馬天牧佐命功臣錄券)은 1401년(태종1) 공신도감에서 절충장군(折衝將軍) 웅무시위사상장군(雄武侍衛司上將軍) 마천목에게 발급한 문서이다.
이 녹권은 왕지(王旨) 등 마천목의 유물과 함께 전남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소재 장흥마씨 종손가에 전해져 왔다. 1948년 여순사건 때 미군 비행기의 오폭으로 종택과 사당이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전해 내려오던 고문서 및 소장품 등이 모두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던 1990년 마천목 영당 충정묘(1810년 건립) 중건 때 옛 사당의 마루바닥 아래 땅 속에서 항아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항아리를 열어보니 그 속에서 공신녹권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전체 규격은 세로 39㎝, 가로 570㎝로 현재 전하는 좌명공신의 유일본이다. 국가에서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2006년 4월 28일 보물 제 1469호로 지정하였다. 녹권은 장흥마씨중앙종회 소유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관리하고 있다.
충정공은 配 정혜택주(定惠宅主) 경주李氏 사이에서 4남을 두었다. 장자는 경주부윤을 지낸 문간공(12세 勝, 1393~1463)으로 후손의 세거지는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이다. 차자는 단양군수를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조은공(12세 ?, 1395~1465)으로 후손의 세거지는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 이다. 삼자는 구례현감공(12세 ?, 1398~?)으로 후손의 세거지는 강진군 작천면 척동리 이다. 사자는 병조참판공(贈 12세 椿, 1403~ ?)으로 후손의 세거지는 함경북도 길주군 웅편면 용천동 이다. 4형제는 모두 현달하고 가문의 기틀을 마련하여 문간공파, 조은공파, 현감공파, 참판공파 장흥마씨의 중심 4파(派)를 이루어 전국의 인원수는 3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학송마을 후손들은 학문을 익혀 조상을 숭상하는 전통적 유교문화를 중요시해왔다. 이를 뒷받침하는 충현사(忠顯祠)가 학송리 614번지 마을 뒤쪽 화개산 아래 위치한다.

   
 

이곳은 1796년(丙辰) 향중유림의 제발로 설단하고 주벽 조선 좌명공신 11세 충정공(天牧)과 18세 주촌공(河秀, 1538~1597)을 배향하여 제향을 봉행하였다. 1831년(辛卯) 향의제발에 의하여 단소에 충현사를 창건하고, 20세 과와공(河龍, 1697~1738)을 추배하였다. 1868년(戊辰) 국령(國令)으로  훼철되었다. 1902년(壬寅) 복향되면서 12세 조은공(?)을 추배하였다. 4位의 위폐를 봉안하고 매년 陰 9월 9일 제향을 봉행한다.

지난날에는 지역 유림들이 제향을 주관하여 봉행하는 향사우(鄕祠宇) 였으나, 농촌사회의 이농에 따른 고령화와 제례문화 변화에 따라 최근 후손들이 주관하는 문사우(門祠宇)로 전환하여 제향을 봉행한다.

   
 

사당 내에는 충정공 영정 사진, 영정사 記, 충정공에 대한 세종대왕 친필 사본과 해석문이 소장되어 있다.
충현사 편액은 1970년 초반에 전남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추범 선종석(보성人, ?)이 썼다.
강당인 경모당(景慕堂)은 1917년(丁巳) 중수하였다. 후손 강학과 문중의 중요 행사를 주관하는 장소이다. 근래부터 10월 선조 묘전 시제는 묘소 진입로에 잡목이 우거져 진출입에 불편이 따르고, 도시에 거주하는 후손들이 제향에 참여가 적은 환경에서 불가피하게 묘전에서 제향을 봉행하지 못하고 경모당에서 매년 陰 10월 13일 12세 조은공 이하 19세간 선조 15位 제향을 봉행한다.

건물 좌측에는 액호 경모당(景慕堂)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崇禎五后辛酉淸明節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는 1921년(辛酉) 봄에 편액을 썼다.
건물 우측에는 관산세장(冠山世庄)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辛酉仲春 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1921년 2월 편액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충현사강당중수기는 1922년(壬戌) 늦봄 면암(勉庵) 최익현의 아들 운재(雲齋) 최영조(월성人, 1859~1927)가 썼다. 
충현사영당중수기는 1963년(癸卯) 9월 하순 후손 백암(柏菴) 석순(28세 1882~1966)이 근지(謹識)하였다.
경모당의 외문인 숭의문(崇義門)은 1997년(丁丑) 중건확장 하였다.
주촌공(18세 河秀)의 자는 선천(先天) 호는 주촌(舟村)이다. 1564년(명종19) 무과에 합격하여 선공감주부(繕工監主簿)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여 이순신(李舜臣)을 도왔다. 1597년 이순신이 투옥되자 관직을 사퇴하였다가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統制使)가 되어 전라도 회령포에 이르렀을 때 네 아들과 향선(鄕船) 10여척을 거느리고 이순신을 배후에서 도왔다. 그 해 9월 명량해전 때에는 왜선에 포위되어 위급하게 된 이순신을 보자 성룡(成龍)·위룡(爲龍)·이룡(而龍)·화룡(化龍) 등 네 아들과 함께 왜적 선에 돌진하였으나, 적의 총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충현사(忠顯祠)에 배향되었다.
公의 유품인 교지 1매를 12대손 마영완(1942년)이 소장하고 있다.
敎旨 馬河秀爲中訓大夫行繕工監主簿 者 萬曆十三年四月二十二日  1585년(선조18) 4월 22일 선조가 마하수에게 중훈대부행선공감주부 관직을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중훈대부는 종3품 하의 문관 품계이다. 선공감은 조선시대 궁궐이나 관청 건물 따위를 수리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이다. 주부는 종6품 하의 책임 관원이다.

18세 주촌공(河秀)은 네 아들을 두었다. 장자는 죽창공(19세 成龍, 1564~1631)이다. 20세 시흥 외 이하 선조 11位에 대해 음 3월 10일 학송마을 일반 가옥에서 향사한다.
차자는 송파공(19세 爲龍, 1576~1638)이다. 20세 시량 외 이하 선조. 20위에 대해 학송마을 승유재(承裕齋)에서 4월 둘째 일요일 향사한다.(승유재는 1955 乙未년 건립하였다. 현재 종중의 관리부실로 훼손되어 있어 보수 요망된다.)
삼자는 우후공(19세 而龍, 1581~1653)이다. 20세 시한 외 이하 선조. 48위에 대해 음 3월 15일 학송마을 모성재(慕省齋)에서 향사한다.(모성재는 1964 甲辰년 9월 건립하였다.)
사자는 참판공(19세 化龍, 1587~1664)이다. 20세 시무 등 이하 선조를 강진군 작천면에서 향사한다.
마을 입구 도로변에는 화은(華隱) 마운하 선생 강학비가 위치한다.
화은(29세 운하, 1878~1947)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학송리 613번지 만취재(晩翠齋) 서당에서 후학을 강학하여 사회 계몽에 앞장섰다. 유훈을 받들고 학덕을 기르기 위해 2007년 11월 장손 원중(1927년생)이 근지(謹識)·서(書)하다.

   
▲<2007년 11월 강학비 제막식 기념 사진>

마상용 등 제자 21명이 근수(謹竪)하였다
주변에는 소백(小柏) 마상용 위선 기적비가 위치한다.
소백(30세 상용, 1924~2015)은 제 2대 통일주체 대의원과 제 25대 장흥향교 전교를 역임하였다. 특히 충정공 묘정 성역화 등 모든 문중사에 앞장서 헌신과 지역사회, 유도(儒道)발전에 진력하였다.

1998년(戊寅) 5월 김태경(영광人 1918~2001)이 찬(撰)하다. 김용보(김해人, 1930~2005)가 근서(謹書)하다. 장흥마씨 중앙종회에서 세웠(竪)다.

   
▲<제 25대 장흥향교 전교 小柏 마상용 생전 모습>

학송마을 태생 근대 인물로는 선정을 베푼 前 안양면장 마영호(1904~1948), 前 장흥향교 전교 마상용(1924~2015), 前 초등학교장 마원중(1927년생), 前 초등학교장 문남훈, 前 영암군수 정영래, 문학박사·전남대교수 정재완(1936년생), 한국화가 장찬홍(1944년생), 향토 사진작가 마동욱(1958년생) 등 다수의 인물이 배출되었다.
자문 : 마영완(30세 1942년생, 학송리 거주), 장흥마씨 대종회장 마상빈(30세 1952년생, 학송리 태생, 서울 양천구 거주), 마종희(31세 조은공파 19대 종손, 1952년생 서울시 관악구 거주)
        /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栢江 위성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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