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日(춘일)/수향각 원씨
이랑에 물에 젖어 물결에 출렁대고
농사철에 접어들어 밤비는 내리는데
봄철이 꿈의 속으로 차츰 지나 버리네.
田疇生潤水增波    農務應從夜雨多
전주생윤수증파    농무응종야우다
庭草漸長花落盡    一年春色夢中過
정초점장화락진    일년춘색몽중과

봄을 찬양한 노래는 많다. 봄은 생명 잉태의 계절이요, 일 년 수확을 약속하는 계절이다. 봄은 삶을 맹세한 계절이요 꿈을 영글게 한 계절이다. 봄은 약동의 계절이요, 진리를 가르쳐주는 계절이다. 봄은 약속의 땅에서 내일을 기약하는 계절이요, 무한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던지는 계절이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요, 화사한 나들이의 계절이다. 봄은 밭 이랑 물에 젖어 잔 물결이 출렁거리고, 농사철 접어들 때는 밤비 많이 내리더라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일년의 좋은 봄철, 꿈 속으로 지나가네(春日)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수향각 원씨(繡香閣 元氏:?~?)이다. 여류시인으로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조선조 시대의 사족부인으로 추정되는 문인이다. 위의 시 외에 <춘일>과 <칠석>을 비롯해서 주옥과 같은 <대동시선>, <정옥산>, <대동시선> 같은 시집이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밭 이랑 물에 젖어 잔 물결이 출렁거리고 / 농사철 접어들 때는 밤비 많이 내리더라 // 뜰앞의 풀은 차츰 자라고 있는데 꽃은 이미 저버리니 / 일년의 이 좋은 봄철이 그렇게 꿈 속으로 지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어느 봄날]로 번역된다. 봄을 시샘이나 하듯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다보면 어느새 봄이 지난 줄 모르게 자취를 감추는 수가 많다.
때에 따라서는 느닷없는 서리가 내리는가 하면, 갑자기 꽃샘추위가 몰려와 칼바람 눈발을 뿌릴 양이면 봄의 꼬리는 저만큼 자취를 감추면서 바등바등 떨면서 몸을 도사리게 된다. 봄은 누구나 없이 좋은 계절이고 기다리는 계절이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시인의 멋진 시적 표현을 만난다. 밭 이랑 물에 젖어 잔 물결이 출렁거리고, 농사철 접어들 때면 밤비가 많이 내리더라 라고 했다. 농사에는 더 없이 좋은 단비다. 쟁기질을 해놓은 고랑이 물에 젖어 보이는 정경이 잔 물결이 출렁거린다는 시심이다.
화자는 이런 빗물을 받아먹은 뜰 앞의 풀들은 잘 자라는데 꽃은 이미 저버리고 나니 일년의 좋은 봄철들이 그렇게 꿈 속으로 지나간다고 했다. 얼마나 봄을 아끼고 마음 속으로 기다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봄은 누구나 기다리는 계절이라고 해서인지 생명이 약동하고, 잉태가 시작되고, 새로운 꿈의 나래가 펼쳐지기 때문이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밭이랑이 출렁이고 밤비 많이 내리더라, 뜰 앞 풀 자라더니 좋은 봄철 꿈속이네’ 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田疇: 밭이랑. 밭두둑. 生潤: 물에 젖다. 水增波: 물결이 출렁이다. 農務: 농사 일. 應從: 응당 쫒다. 夜雨多: 밤비가 많이 내리다. // 庭草: 정원의 풀. 漸長: 점차 자라다. 花落盡: 꽃이 떨어져 다하다. 一年: 일년. 일년 동안. 春色: 봄빛. 夢中過: 꿈속을 지나다. 꿈을 꾸다.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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