游洗劍亭(유세검정)/다산 정약용
드높은 성곽만이 아련히 보이는데
온 종일 계정에는 속물도 드물고
물안개 숲에 젖어서 물소리가 요란하네.
層城複道入依微    盡日溪亭俗物稀
층성복도입의미    진일계정속물희
石翠淋리千樹濕    水聲료亂數峯飛
석취림리천수습    수성료란수봉비

세검정은 북으로 정벌을 하러갔던 군인들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면서 칼을 깨끗하게 씻었던 곳이다. 어디 칼뿐이리오. 손발을 씻고 더러는 몸도 씻었을 것이니.
시인이 세검정을 찾았을 때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그런 시점이었으니, 비를 흠뻑 맞고 있을 서민이 이곳에 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세검정의 풍취를 더하고 있음이다. 푸른 바위 물안개가 온 숲은 젖어드는 저녁에 비가 온 뒤 요란한 물소리만이 정적(靜的)을 깨고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푸른 바위 물안개에 온 숲은 점차 젖어들고(游洗劍亭)로 제목을 붙여본 율시로 전구 칠언체다. 작가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호는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탁옹(?翁), 태수(苔?), 문암일인(門巖逸人), 철마산초(鐵馬山樵) 등이 있다. 가톨릭 세례명은 요한. 시호는 문도(文度)다.
위 시제는 [세검정에서 놀며]로 번역된다. 시인이 1791년 여름 사간원(司諫院)에 재직하고 있을 무렵 세검정을 유람하고 지은 기문(記文)의 대략이다.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은 장마철 물이 불 때면 세검정으로 물 구경을 갔다고 한다. 시인도 세검정으로 물 구경을 가려고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남들과는 달리 비가 내린 뒤가 아니라, 비가 막 내릴 때의 장관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빗속에서 말을 달렸다.
날씨는 한여름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태울 듯하더니, 어느새 먹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마른천둥 소리가 멀리서 은은하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드높은 성곽이 아련히 보이는데, 종일토록 계정에는 속물까지 드물구나 라고 했다. 흐르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물과 뒤섞여 쏟아져 내리면서 정자의 초석(礎石)을 할퀴고 지나갔다.화자는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고 익살스런 농담도 하며 즐겼다. 얼마 뒤에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혀 골짜기 물도 많이 잔잔해졌다. 석양이 나무 위에 걸리니 경치가 천태만상으로 변화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서로를 베개 삼아 누워 시를 읊조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한양 성곽 보이는데 속물까지 드믈구나, 온 숲은 물에 젖고 산봉우리 나는 듯도’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層城: 여러 충의 성곽. 複: 거듭. 道入: 도로에 들다. 依微: 희미하다. 盡日: 하루 종일. 溪亭: 세검정을 뜻함. 俗物稀: 속물(속된 물건)이 드물다. // 石翠: 푸른 바위. 淋?: 물안개. 千樹: 온 숲. 모든 나무숲. 濕: 젖다. 水聲: 물소리. ?亂: 요란하게 소리내다. 數: 거듭. 峯飛: 산봉오리가 날다.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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