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단원으로 선발된 손유빈(27)씨는 인기가요 '노란 셔츠의 사나이'와 '청실홍실'의 작곡가 손석우(92)씨의 손녀다. 19일 귀국 인터뷰에서 손씨는 "어릴 적 2~3년마다 악기를 교체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손석우)께서 플루트를 사주셨다. 돌아보면 응원의 뜻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2007년 독주회 때는 할아버지의 곡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당초 플루트는 어머니 박숙현(54)씨의 악기였다. 박씨는 '건강에 좋고 살도 빠진다'는 조언에 교습을 받기 시작했지만 "조금만 불어도 머리가 어지럽다"며 포기했다. 집안에 굴러다니던 이 악기를 딸이 잡았다. 손씨는 "예쁜 모양과 맑은 음색에 이끌렸다"고 했다. 악기 조립까지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임자가 따로 있었구나!"라면서 무릎을 쳤다.

국내에서 플루트는 피아노·바이올린·첼로에 이어 연주자가 많은 '인기 악기'. 반면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단원은 수십 명에 이르지만, 플루트 단원은 서너 명뿐이다. 뉴욕 필에서도 한국계 바이올린 단원 7명이 활동 중이지만, 관악 단원으로는 손씨가 첫 입단이다. 그는 "한정된 오케스트라의 단원 자리를 놓고 연주자들이 벌이는 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고 말했다.

50여명이 지원한 뉴욕 필 오디션 때도 최종 결선에는 2명이 남았다. 지휘자 앨런 길버트가 주관한 최종 오디션 때는 처음 보는 악보를 초견(初見)으로 연주하기, 뉴욕 필 단원과의 실내악 앙상블, '미니 플루트'로 불리는 피콜로 연주까지 사실상 모든 역량을 점검했다. 손씨는 "곧바로 무대에 설 수 있는 연주자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오디션도 세심하고 꼼꼼했다. 오디션이 열렸던 일주일간은 긴장해서 제대로 잠도 못 잤다"고 했다.

손씨는 예원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 음악원과 예일대·맨해튼 음대에서 공부했다. 2010년에는 뉴욕의 여름 음악 축제인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시애틀 심포니와 시카고 리릭 오페라극장 오디션에는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손씨는 "지금 돌아보면 떨어졌던 경험도 든든한 보약이 됐다"고 했다. 그는 "독주(獨奏)와 오케스트라 합주에 두루 능한 베를린 필의 수석 에마뉘엘 파위 같은 연주자가 롤모델"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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