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동조합위원장으로 노동운동 - “국내 노동계 거목으로”
퇴직 후, 장흥군노인재가복지협회장-더 큰 봉사 위해 도의원 출마
여생은 ‘분배ㆍ나눔 실현, 아름다운 복지사회건설’에 헌신할 터


■굴곡 많았던 김기주 씨의 삶

지난 2009년 4.29 광역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공천 후보로 나섰다가 석패, 본선 진출의 좌절을 맛보았던 김기주 씨가 이번 6.2지방선거에서 다시 광역의원에 도전한다. 물론 이번에도 민주당 공천에서 승리해야 본선에 나설 수 있다. 그러므로 본선보다 예선이랄 수 있는 공천 경선이 보다 중요하다.

지난 09년 4.29 보궐선거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김기주 씨는 그 2년 동안 이번 선거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표밭을 가꾸고 인지도를 넓혀왔다. 그런 연유로 그는 이번 민주당 경선의 통과를 거의 확신하고 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일까?
결코 과신만은 아닌 듯하다. 그에게는 확실히 나름대로의 확고한 정치적 소신과 정치적 비전이 있다. 그런 것들이 그에게 귀한 자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번 공천 경선만 거친다면, 앞으로 2개 월여라고 하는 시간도 있고 ‘민주당의 바람’이 불어닥칠 수도 있어 그의 정치적 도전은 매우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기주 씨, 그는 과연 누구인가?
진부한 물음이긴 하지만, 그의 정치적 진정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의 답이 중요하다.
그의 고향은 관산 삼산리 2구 산동마을. 그는 고향에서 관산초등학교와 관산중학교를 졸업했으며, 조대공전을 중도에 그만두었고(1년 중퇴), 장흥고 2년 때 중퇴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학(행정학)3년 수료와 동신대학교대학원(사회복지학)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경영자 과정), 필리핀의 PCU대학(신학과)을 졸업하기도 했다.
이후 육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에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고, 제대 후에는 곧바로 고속버스 회사인 그레이하운드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불혹의 40세, 변신의 삶 시작하다

그런데 정작 김기주 씨의 주요 사회 경력은 40세 때인 1989년 한국농촌공사 전신인 농지개량조합에 입사하면서 시작된다. 사실 그에게는 장흥고 2년 중퇴 이후인 20여세 때부터 40세 때까지 거의 20여 년간은 ‘거친 암흑의 시절’로 메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그 자신도 “어린 시절을 건전하고 건강하게 살지 못했다”면서 “이에 대해 지역민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를 잘 아는 주위 사람들도 그에 대해 “젊은 날 그는 거칠게 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변신, 새 직장도 얻고 갱생의 삶을 살게 된다. 그때가 40세 때였던 것이다.

당시 그런 그의 모습에 대해 그를 잘 아는 모씨는 “농지개량조합에 입사한 뒤부터 김 씨 행동이 180도로 달라졌다”고 증언한다. 사람은 누구도 새롭게 변할 수 있다. 또 과거가 거칠었다면 그 거칠었던 만큼 변신의 깊이도 커지기 마련이다. 아무튼 과거와 다른 새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그 변화에 대해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그는 완전히 다른 새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뒤늦게나마 불혹이 지나 비로소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농지개량조합에 입사한 후 저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앞으로 20년은 다른 사람들보다 배를 더 성실하고 배를 더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각오했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잘못 살아온 과거를 회개했고 혹독하게 반성하면서 새롭게 변화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 지은 죄를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매사에서 남들보다 배는 더 노력하고, 배는 더 정성들이고, 남들이 8시간 자면 4시간만 자면서, 정말로 진실 되게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김기주 씨의 말이다.

■노동운동 주도- 전국노동조합위원장 역임

김기주 씨는 누구보다 젊은 날을 거칠게 살아 왔다. 그리고 불혹을 넘겨서야 비로소 지난 과오를 바탕으로 열심히, 성실히 살아와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당당하게, 사회적으로 어느 만큼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4ㆍ29 선거 출마에 이어 이번에 6.2지방선거에서 남부지역 도의원 후보로서 재도전했다.

그의 이러한 연이은 정치적 도전이 사뭇 궁금하다. 그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타 후보들과 달리, 지방 정치활동에서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에게는, 과거에 ‘정치적’인 것과 유사한 경험이 있다. 장흥농지개량조합에 입사, 10여년이 되었을 때인 지난 1998년 IMF의 여파가 농지개량조합에도 불어 닥쳤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을 단행, 전국농지개량조합과 농조연합회를 농진공사와 통합했고, 그리하여 노조는 1사 3개 노조의 상황이 되면서 감원, 감축 등 치열한 생존의 전투가 이어졌다.

이때 김기주 씨가 주도해서 조직 상호간의 이해와 양보(인센티브)등의 수습책을 통하여 노동 역사 이래 처음으로 ‘1사 3노조’를 ‘1사 1노조’라는 상생의 기틀을 이루어내는 데 산파역을 담당한다. 김기주 씨는 이러한 노고와 공을 인정받아 전국노동조합위원장 선거에서 전라도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경상도 회원까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당선된다.

전국노동조합위원장이 된 김기주 씨는 이후 갈등과 대립의 현장에서 조정과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활동을 역동적으로 펼쳤고, 그의 이러한 노조활동은 시민운동의 더 큰 기폭제로 이어지면서 한국노총과 한국시민사회실천협의회(개혁시대)와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다지고 한국노동운동을 대화와 상생의 틀로 견인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전국노동조합위원장으로서 국가조찬기도회(당시 회장 김영진 장로)를 개최하기도 했고, 제17대국회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후보가 될 정도였다. 이처럼 그는 당대 노동운동사상 큰 역할을 해낸 노동계의 큰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복지농촌 건설 활동-더 큰 봉사 위해 출마

김기주 씨는 퇴직한 후, 고령사회의 문제에 대한 학문 연구에 정진, 동신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미래복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며 복지전문가로서 활동 기틀을 쌓아왔고, 실제로 지역사회에서의 이웃과 사회의 공공복지를 위해서 힘써 왔다.

즉, 그는 퇴직하던 해 갈렙건설(주)을 창립하고 갈렙건설에서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목적으로 당시 회진교회가 운영하던 ‘지역 어르신들을 돌보는 나눔과 섬김의 사업’을 위임받아 ‘정남진노인복지센터’를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다.

또 지난 10여년 동안 필리핀, 미얀마, 카자흐스탄.우즈백기스탄 등 아시아지역의 빈민아동구호 운동에도 적금 참여, 매월 30만원 씩의 성금을 보내면서 국경을 넘는 나눔과 사랑의 구호에도 적극 참여해 오고 있다.

그는 또, 대한예수교 장로회 전국남전도회 부회장, 호남지역 부회장, 목포지역(6개시군) 회장 등 교계의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통해서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복지농어촌 건설 실현에 노력해 오고 있다.

그러나 김기주 씨는 자연인으로서 사회 봉사활동에 한계를 느낀다. 그리고 제도권으로 들어가 보다 효율적인 복지농촌 건설을 위한 일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전국노동조합위원장 시절의 열정도 되살아나 지방정치의 입문을 생각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특히 지역경제의 근간인 농업, 축산업, 어업의 생산성 향상을 통한 분배와 복지사회 건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왔다. 이런 생각과 관심들이 그로 하여금 결국 지난 2009년 4.29 재보궐선거에 도전하도록 했던 것이고, 정치 입문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 이번 6.2지방선거에서도 남부지역 도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입후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도시화, 핵가족화를 거치면서 소외받고 버림받는 빈곤층이 많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나눔 정신의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고, 국가적으로 행정적으로 실질적인 나눔과 분배에 대한 복지 시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답답합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제반 문제를 극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살기 좋은 복지사회 건설입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은 여생을 복지운동에 헌신, 봉사하겠다는 것이 제 꿈이 되었고 이 꿈의 실현을 위해 이번 6.2선거에 입후보하게 된 것입니다.” 나눔과 분배의 복지시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는데 남은 여생을 불살라보겠다는 의지로 지방 정치인에 도전했다는 것이 김기주 씨의 변이다.

■나눔, 분배의 복지 실현에 ‘여생을 봉사’할 터

그의 도의원으로서 공약, 도의원이 되면 해보고 싶은 일들도 아주 구체적이어서 그의 정치적소신과 정치철학을 엿보게 한다.

“첫째, 우리 군의 10대 품목은 한우. 벼, 낙지, 뱀장어, 김, 표고버섯, 키조개, 토마토, 돼지, 양파 등으로 지난해 이것들만의 생산량이 약 4천억원에 이릅니다. 저는 이 10대 품목의 브랜드화 추진을 통해 유통구조 개선책을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최신 장비를 갖춘 도축장 시설 등을 유치하는 등 장흥 경제의 체질개선 향상에 앞장서겠다는 생각입니다.

둘째, 논농사의 창조적 경영, 즉 논농사의 다양화와 다변화 추진 사업을 통해 우리 지역 농업인의 소득증대 방안을 마련하고 쌀 농사의 수급ㆍ공급의 조절 기능을 점차 강화시켜 단순 힘겨루기식이 아닌 보다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농업 환경구조를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올 7월에 출항이 예정인 장흥 노력도-제주 성산포간 쾌속선 운항사업에 지역 관광인프라 연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여 많은 지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경기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넷째, 안양면의 로하스타운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외국의 성공사례를 검토, 도입하는 한편, 동남아등지에 안락한 노후생활에 실패한 일본 은퇴자들이 우리지역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으며, 예견된 농어촌 공동화 현상에 대비할 계획도 수립하겠습니다.

다섯째, 전남도의 불요불급한 행사와 축제를 지양시키고 이를 통해 확보된 총예산의 1%를 노인 일자리에 전용토록 한다면 최소한 12만 명의고용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복잡한 복지제도를 통합, 개선하여 실질적으로 보다 많은 어른들에게 최상의 복지서비스가 시행되고 노인들에게는 행복한 노후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밖에 충효사상 및 윤리도덕 재무장 운동을 적극 추진, 도덕성이 회복되고 예절바른 사회 건설에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면 지역이 활력을 회복합니다.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 기업과 자본 유치가 절대적입니다. 해당산단과 회진산단 조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이곳에 기업들이 많이 유치되면, 그만큼 우리 지역민에게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지역의 경제도 활기를 띄게 될 것입니다.

해당산단의 조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회진산단 조성의 진척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 회진산단의 성공적인 조성과 기업유치 등 그 활성화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부정, 부패를 척결하고, 신의가 있는 정치풍토를 조성하고,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제대로 된 도의원 역할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김기주 씨는 이번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은 물론 본선 경쟁에서도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는 가락 종친인들을 비롯해 지역의 교회와 사찰 등 종교단체 그리고 노인사회와 지역의 어른들로부터 큰 후원을 받고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김기주 씨는 마지막으로 민주당의 공명정대한 공천을 주문했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명성이나 정치 경력보다는, 과연 누가 제대로 지역민을 대변하고 제대로 지역을 위해 헌신 봉사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인물 위주로 선택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의 공명정대한 공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홈페이지 http://blog.naver.com/kiju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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