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하면 먼저 남쪽에 면한 바다와 그 사이 사이에 분포되어 있는 다도해가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에 면하여 있지만, 남쪽 바다에 대한 향수가 많다. 특히 남쪽 바다를 그리워하는 시나, 노래 말이 많아, 남도에 대한 노래로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나르면 뒷동산에 동백꽃은 곱게 피었네...” 로 시작되는 “고향초”는 한때 국민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또한 남쪽 바다를 노래한 가곡 중에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곡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은상의 작사와 김동진이 작곡한 "가고파"는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가사의 내용과 같이 남도에 대한 그리움이 베어 있는 노래이다. 인간이면 자기가 태어나 자라는 곳에 대한 추억은 모두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 민족이 즐겨 부르던 노래 가운데 많은 노래들이 일제 식민지하에 나라를 잃은 민족의 아픔을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노래한 것도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31회 사료조사위원회의(5월 29일)를 개최하여 전국 각지에 거주하고 있는 사료조사위원들이 참석하였다. 그들은 모두 고장에 태어나서 그동안 향토사에 심취되어 사료를 수집하거나, 향토사 연구를 꾸준히 하여 시ㆍ군지를 편찬하거나, 그 지역만이 자랑하는 문화를 개발하여 문화를 육성 발전시켜 문화의 뿌리를 지켜 온 원로들이다. 이 회의에 참석한 사료조사위원 중에 20여 년 전에 회의에서 인사를 나눈 뒤 친분을 지속해온 남도에서 온 강수의 위원이 있었다.


1988년 각 지역별로 "사료의 수집과 보존에 대한 회의"를 하였는데, 강수의 위원은 장흥군지역 위원으로 위촉되어 만나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강수의 위원하고 인연을 맺게 된 뒤 강위원은 국사편찬위원회에 회의가 있거나, 서울에 일이 있어 오게 되면 연락을 하거나 사무실에 들여 남도의 문화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인사말부터가 전형적인 남도 말 씨여서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강위원은 항상 등산 가방을 메고 다니며, 카메라를 들고 다녀 때로는 거추장스럽게 보였는데, 이러한 복장과 준비물은 사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퍽 알 맞는 복장이었다.


강위원이 자랑삼아 소개한 장흥은 기후가 사계절 온화하고 천연의 관광자원이 많아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장흥 북쪽은 산악지대로 호남의 명산인 가지산이 있으며, 가지산에는 동양의 삼보림인 보림사가 있어 불교문화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남쪽은 바다에 면하여 천관산의 비경과 억새풀, 동백꽃 군락지,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등 산자수려한 남도의 향취는 장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의 해택인 것이다. 자연의 풍요함과 훈훈한 인심은 우수한 예술가를 배출시킨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문단에서 손꼽히는 문인들이 배출되어 문향의 고을로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장흥 문화의 뿌리이면서, 우리민족 문화의 유산으로 오늘날에도 관심이 많은 백광홍의 관서별곡이나, 위백규의 실학은 장흥의 크나큰 문화 유산이다. 백광홍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1555년(명종 10년) 평안도평사가 되어 그곳에서 생활과 자연풍물을 노래한 관서별곡은 한국기행가사의 효시이며, 존재 위백규는 조선말에 문장과 학문으로 뛰어 났으며, 조선시대 실학사상을 언급하려면 의당 기호 지방에 근거지가 있었지만, 위백규는 호남에 거주하여 기호지방의 실학자들하고는 학문의 연원도 없이 자생적으로 높은 수준의 업적을 이루게 되어 , 오늘날 실학 연구자들에게 더 소중하게 평가 받고 있다.


이러한 문향의 장흥에서 장흥문화를 지켜온 강수의 위원은 전국 사료조사위원 중 최장수 위원 중 한분이시며, 최고령 위원이다. 그는 20여 년 동안을 한국사 사료수집과 보존 및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비록 나이는 들어 흘러간 세월은 붙잡을 수가 없지만 강수의 위원은 백수를 바라보며 지금도 왕성한 문화수호자 및 연구자로 일하면서 인생이 늙어 가는 것도 잊고 사는 것 같다.
부디 건강하셔서 백수를 누리시기를 기원한다.


제공: 이상근/문학박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국협의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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