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환 (천도교 교령)




지난 4월 21일, 천도교 장흥교구에서 '인내천 장흥지역 특별강좌'가 실시되었다.
이날 이명흠 장흥군수와 김기홍 장흥문화원장님이 참석하여 축사를 했고, 강사로 이정희(종학대학원장, 공주대 )교수의 <동학의 생명윤리로서의 살림>, 김동환(천도교 )교령의 <장흥군민으로서의 영광을 되살립시다.>라는 주제 강연이
있었다. 강연 이후 고향숙 순회포덕사의 신앙체험담과 참석한 여러분들의 신앙이야기와 장흥교구 발전을 위한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이날 특별강좌에는 100여명의 주민들이 역사깊은 장흥교구에 모여 인내천 강의를 청취했다.

다음은 이날 강의 중, 천도교 김동환 교령의 강의 내용전문이다.<편집자 주>


존경하옵는 장흥군민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방금 소개받은 천도교교령 김동환입니다. 제 위치상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며 강연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독 장흥군민 여러분들을 만나면 진심으로 존경스럽고 참으로 대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우리나라가 전 민족과 함께 세계만방을 향하여 떳떳이 자랑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동학천도교라고 당연히 말할 수 있습니다.

1860년대 탐관오리들의 등살에 빼앗기고 못된 양반들의 등살에 온갖 고통을 받고 있던 서민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광제창생 보국안민을 외치며 창도된 道가 天道요 동학 이였습니다.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 양반이나 상민이나 관리나 백성들이 다 한울님을 모신 똑같은 위치라는 侍天主의 진리를 깨달으시고 이진리가 온 세상에 布德天下된다면 天德아래 한 형제로 같은 한울님을 모셨으니 서로가 공경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지상천국이 될 것이다.

今不比 古不比한 제세구민의 이도는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 선생이 득도한 東學·天道敎입니다. 짓밟히고 고통 받은 수많은 서민 대중들은 이제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구나 하여 원처근처 어진 선비들이 풍운같이 모여들었습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포덕3년 만에 관군에 체포 되여 대구장대에서 참형 당하시고 도를 이어받은 2세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은 강원도 깊은산 골짝, 골짝 관군을 피해 다니시면 서도 한분, 한분 포덕 하여 수십만의 도인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힘은 1880년대 전라북도에 포덕 되고 1890년대에는 전라남도 이곳 장흥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이곳 장흥에는 최초 이인환(李仁煥), 이방언(李芳彦), 문남택(文南澤) 세분이 동학에 입도했으나 그 수는 점점 늘어나 1894년 호남지방의 동학혁명이 승승장구하면서 진주 관아를 접수하고 補國安民을 외치며 북진 북진하다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합동작전에 역부족으로 참패하여 수많은 동학군이 죽임을 당하고 있을 때 동학군의 주력부대가 없는 이곳 장흥에서는 장흥부사와 강진병사가 서로 밀모하여 동학도인 들을 잡아다 가두고 죽이고 있다는 소식이 동학 본영까지 전해 왔습니다.

이에 금구 대접주 김방서가 군을 발하여 석태 전투를 벌였으니 봉건적 지배체제와 신분제를 타파하여 근대 국가를 건설하며 외세를 물리치고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건설하려했던 1894년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최후의 불꽃으로 타올랐던 장흥지방 동학농민 혁명의 처절한 전투는 온 민족이 잊어서는 안 되며 그 때 희생된 동학 농민군들의 영령 앞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빌고 그들의 뒤를 이어받은 이곳 주민들은 그들이 못 다한 광제창생.보국안민의 대업을 완수해야 할 숙명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 희생되신 분들이 수 없이 많은데 그중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분들이 이인환, 이방언, 이사경, 김학삼, 박치경, 박재현, 안만길, 고제화, 문찬필, 이송빈, 김수권, 강일호, 이봉화, 최양운, 백인명, 김희도, 손지삼, 변운경, 김승언, 김영서, 고영의, 문치화, 김일지, 김춘배, 문생조, 마향일, 박성구, 이매안, 홍순서, 이양우, 이춘삼, 홍관범, 채수빈, 백홍거, 박기조, 고재열, 최동의 등 37명입니다. 이분들은 이 지역에 사시는 여러분들의 조부님, 증조부님 혹은 종조부, 종징조부 내지는 끊을 수 없는 혈연을 맺고 있을 것입니다. 장흥에서 들어낼 역사적인 자랑은 동학혁명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보국안민의 정신은 연연히 이어서 1919년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일어난 3.1 독립운동에 어느 지역보다도 열성적으로 애국 애족하신 흔적이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천도교 장흥교구 교인들의 열성과 김재계 선생의 탁원한 지도력으로 기미년 3월 15일에는 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독립자금을 모금함에 일본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은장, 동장으로 자금을 모았으며 그 자금을 서울 천도교중앙총부까지 전달하기 위하여 한오화, 김영화 두 여자 분이 九死一生으로 책임을 완수한 이야기는 자자손손 전해져야 할 귀중한 역사 자료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전달된 자금은 3.1운동 후 기진맥진한 天道敎 총부에 꺼져가는 호롱불에 기름 같은 역할을 하였으며 그 대부분의 자금은 상해 임시정부 독립기금으로 쓰였습니다.

해방 후 백범 김구선생이 천도교 총부에서 강연할 때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천도교 총부는 독립운동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시작한 공사였습니다. 이 건물이 없었으면 3.1 운동이 없었을 것이요, 3.1 운동이 없었다면 상해임시정부가 없었으며 상해 임시정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만큼 중요한 자금의 일부를 이곳 장흥에서 마련하였다는 것은 아무리 자랑해도 넘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동학혁명과 3.1 운동에서 여러분의 선대 어른들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셨는지 대충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개인은 얼마나 고생스럽고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 왜 그렇게 살았을까?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보국안민도 꼭해야하고 광재창생.포덕천하 사업도 해야 하지만 자기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다면 어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어른들은 고생스럽고 때로는 목숨을 거는 일을 하면서도 언재나 그 마음은 행복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도교 경전에 ‘入道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 되여 무위이화 될 것이니 지상신선 네 아닌가’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울님을 모신 천도교인은 항상 마음이 행복합니다. 한울님을 모신 천도교인들은 욕심이 없고 욕심이 없으니 걱정이 없고 걱정이 없으니 병이 없습니다. 세상에 모-든 병은 마음에서 얻어지고 마음으로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천도교를 믿으면 가족이 화목하고 이웃으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이웃에서 존경 받는 사람은 직장에서도 사회단체에서도 존경을 받습니다. 왜 그럴 수 있는가.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을 대할 때 한울같이 대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아는 일 같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한울님 모심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나신 김재계 선생도 처음에는 보통 사람 이였습니다. 그 어른이 천도교에 입교하고부터 誠.敬.信 3字를 지키며 열심히 살의셨기에 전국적인 인물이 되시고 돌아가신 후에도 독립훈장을 받으시고 많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 분의 환원을 추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옛날 김재계 선생의 설교 말씀을 들어 보면 지금과 그 때가 무엇이 다른지,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꼭 같다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의 글은 성암 김재계 선생의 설교 말씀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저 정성은 한울과 사람사이에 진실한 보배올시다.
한울은 정성으로 만물을 화생하고 사람은 정성으로 만사를 성공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제까지 오면서 무슨 종교 무슨 사업 실로 그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 종교 어느 사업을 막론하고 그를 성장하며 그를 성공함에 있어서는 제일 중요과정이 무엇인고하면 일왈 정성입니다.

정성이 아니고는 어느 종교든지 성장되지 못하였을 것이요, 어느 사업이던지 성공되지 못하였을 것은 오늘 다시 어떠한 설명을 하지 아니하여도 역사가 먼저 징명하고 있는 바라 하물며 우리가 신앙하는 이 무극대도는 금불문. 고불문. 금불비. 고불비(今不聞 古不聞今不比古不比)의 법으로 자기가 자기를 대상으로 하고 믿는 대도인것만치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여 쉬운데 에서 어려운 것을 알지 못하고 어려운데서 쉬운 것을 알지 못하여 도리어 방황하는 폐단이 없지 못합니다. 하여튼 정성을 극단으로 하여 봅시다.

정성이 극단에 가면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 한울님의 동작이 자연 있을 것이니까? 이것이 닦은 자는 허한 것 같으나 실이 있고 듣는 자는 실한 것 같으나 허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도 중에 유독 내수도에 있어 내수도 여러분 한집의 주인공으로 수도의 전 책임이 내수도에게 있습니다.

이와 같이 중대책임이 있는 부인여러분들 포덕광제의 책임은 물론이고 자기의 가족에 생명이 자기의 정성에 있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이 세상을 보시오. 남풍은 북풍을 마지하고 서풍은 동풍을 마지하야 공중에 오락가락하는 구름장은 장차 어떠한 폭풍우가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은 한울님은 알고 있습니다. 정성으로 한울님을 공경하시오 오늘에 있어 내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아니 됩니다. 속임 없는 정성으로 한결같이 나아갑시다. 한울님은 속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속이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많고 적은 비정성을 한울님은 못 속인다고 하였소. 한울님이 본래부터 친한 사람이 없지마는 오직 정성 있는 그 사람을 친합니다. 사람끼리도 친한 사람이 친한 사람을 구제할 것이 당연한바 한울도 또한 그러합니다. 해월신사의 말씀에 수만명 모은 장판에 가서도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시였소. 이 말씀이 비록 간단하오나 그 의미가 가장 심오한지라 정성이 없고 사업에 성공을 도모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는 사람이올시다. 백날을 구할지라도 소득이 없을 것이오. 다만 서절병어 만들 것이올시다. 생선을 먹고자하는 사람은 강변에 가서 낚시를 던져야 할 것이요, 토끼를 잡고자하는 사람은 산으로 가서 그물을 처야 할 것이올시다. 우리는 먼저 정성을 지극히 합시다. 정성을 떠난 성공이 없고, 성공을 떠난 정성이 없소, 정성과 성공은 베를 짜는데에 씨와 날이 되는 것이올시다. 씨만이 베가 되지 못하고 날만이 베가 되지 못하고 씨와 날이 합하여야 베가 됩니다. 우리교의 주의가 아무리 고상하고 희망이 아무리 풍부할지라도 정성이 희망에 부합되지 아니하면 희망은 공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희망에 따라 정성도 그와 같이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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