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일보/2007.08.06



한 녀석이 뿔을 세우더니 힘껏 밀었다. 그 힘에 다른 녀석은 뒤로 발랑 넘어졌다. 넘어진 그 녀석은 어렵게 일어나더니 살금살금 뒷걸음질을 쳤다. 승리한 녀석은 다른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녀석들은 참나무 토막에 바글거렸다. 먹이로 넣어진 빨간 수박과 대비돼 시커먼 그들의 색깔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한 꼬마가 그 녀석들이 모여있는 곳에 손을 넣는다싶더니 재빨리 뺐다. 그러더니 훌쩍거리면서 엄마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가 달랬지만 꼬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 “장수풍뎅이 발톱에 긁혔어. 허버 사나워.” 꼬마의 고자질에 그 녀석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린시절, 밤이 되면 불빛을 보고 부르르 날아와 `툭'하고 내려앉았던 장수풍뎅이.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내리쬐던 지난 2일, 장흥군 유치면 반월마을. 승용차들이 마을로 속속 들어왔다. 서울이나 경기도 표지판을 단 차량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장수풍뎅이를 보러 온 차량들이다. 이 마을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장수풍뎅이 체험행사를 하고 있다. 올해로 3년째다.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광막이 쳐진 곳으로 곧바로 내달렸다. 그리고 `와~, 와~'했다. 장수풍뎅이를 관찰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는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장수풍뎅이 모형 앞에서 포즈도 취했다. 동네 아저씨들은 만화그림을 짚어가며 풍뎅이의 한살이에 대해 설명한다.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풍뎅이 보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한쪽에선 아주머니들이 파전 등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아이들 부모들은 오두막에 올라앉아 손부채를 연신 부쳐댄다. 개울가에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분수대 비슷한 것에서 물줄기가 솟는다. 개울가에 임시로 달아놓은 대나무 다리는 튼튼하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어른들은 쉬고, 반월마을에 작은 잔치가 열렸다.

반월마을은 산세가 반달모양으로 둥글어 반월(半月)이라 부른다. 영암군 금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장흥댐 최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수는 38세대 89명. 마을추진위원회 총무인 강주성(53)씨가 막내일정도로 고령화 농촌이다. 옛날에 농사가 주업이었으나 지금은 표고버섯이 주소득원이다. 대부분이 표고농사를 짓는데, 많은 사람들은 9만본이 넘게 재배한다고 한다.

1980년도만 해도 유치면 일대는 표고버섯의 최대 생산지였다. 표고재배 묘목으로 쓰이는 참나무가 많이 서식한 탓이다. 표고의 최상품 가격은 1관(3.75kg)에 40만~50만원. 질이 떨어지는 하품 표고는 1만원도 안 된다. 안 좋은 것 차로 한차로 가지고 가나, 좋은 것 1관 들쳐 메고 가나 가격이 비슷한 셈이다. 최근 중국산 표고가 들어오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장수풍뎅이는 표고버섯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애벌레는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남은 참나무 폐목을 갉아먹고 자란다. 표고버섯 주산지답게 폐목이 많았던 반월마을은 장수풍뎅이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던 것. 장흥군은 반월마을만의 자산인 풍뎅이를 활용하고자 2004년 5월 이곳을 생태체험마을로 지정했다.

주민들은 풍뎅이를 기르기로 뜻을 모았고 추진위원회도 꾸렸다. 군의 지원을 받아 실내 사육장 2동을 짓고, 톱밥기계도 구입했다. 풍뎅이 사육은 겨울 농한기를 이용했다. 표고 폐목을 모으고, 일부는 톱밥으로 갈았다. 사육장에 폐목과 톱밥을 부어 풍뎅이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곳에서 장수풍뎅이들은 짝짓기를 해 알을 낳는다. 애벌레들은 번데기를 거쳐, 6월말 또는 7월 초순경에 장수풍뎅이로 솟아오른다.

반월마을은 장수풍뎅이가 제일 많이 나오는 여름에 `장수풍뎅이 생태체험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05년 첫 행사를 치른 이후 올해로 3회째다. 행사 기간은 보통 일주일. 장수풍뎅이 씨름대회, 장수풍뎅이 생태돔 관찰, 대나무 물총놀이, 구름다리 타고 분수 즐기기 등 체험행사 위주로 꾸려진다. 지난해 행사 때는 1만5천여명이 다녀갔다. 지난달 27일 시작한 올해는 하루 평균 40∼50대 차량이 온다고 한다. 행사를 마을 주민들이 기획하다보니 다소 엉성한 느낌이 없지 않다. 별다른 체험거리가 없고, 행사장 또한 누추한 것이 사실. 체험행사를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바쁜 농사철에 짬을 내 준비했다는 것만으로도 체험행사의 의미는 적잖다. 때론 협조하고, 때론 큰소리내면서 준비에서 운영까지 체험행사의 전반적인 사안을 관장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줄만하다. 장경선(67)씨는 “큰소리내도 서로 이해하고, 뭉치면 못할 것이 없다”면서 “처음에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볼거리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장수풍뎅이 애벌레와 성충을 팔아 수익을 올린다. 행사기간 표고버섯전 등 먹거리를 파는 것은 부수입이다. 올해 초 애벌레 2만여마리를 마리당 600원에 팔았다. 성충은 남녀 한 쌍에 1만5천원인데, 주로 애완용으로 판매된다. 성충 판매는 지난해 경기도 성남에서 빅히트를 쳤다. 성남 5일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호응이 좋아 없어서 못팔 정도였다. 올해도 체험행사가 끝나면 성남으로 올라갈 계획이다.

주민들은 여름에만 볼 수 있는 풍뎅이를 사시사철 보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애벌레를 보관, 저장해서 필요할 때 성충으로 만들 수 있는 온돌장치 등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마을이장인 장광수(65)씨는 “함평이 곤충인 나비로 날아오른 것처럼, 반월은 장수풍뎅이로 솟아오르려 한다”고 말했다.
글-김성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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