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회 개인전에 부쳐

살을 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한껏 부드러워져 싱그러운 풀냄새를 머금은 마파람으로 불어온다. 이맘때면 나는 남으로 길을 나서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사춘기 소년의 짧고 뻐센 머리털 같은 남녘 들판 보리싹, 그 위로 불어오는 봄바람이 내 속을 무척 성가시게하기 때문이다.

고향 길을 가노라면 두 가지 다른 성격의 길을 만난다. 고속도로 같은 직선길과 신작로나 논밭길 같은 곡선길이 그것이다. 근대 산업화의 부산물중 하나인 직선길은 시간적 효율을 극대화한 기능적인 길이다. 직선길은 사람과 물건의 이동을 위해 곡선을 직선으로 펴면서 생겨났다. 그 길은 산이 가로막으면 터널을 뚫고 강이 방해하면 큰 다리를 놓는 거침없고 인위적인 길이다. 직선길엔 여백과 여운이 없다. 사람이 없고 물질만 있으며 속도와 목적만 존재한다. 위협적인 시간이 무시무시한 굉음으로 질주하기에 여유로운 만보 산책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기능적인 직선길에 비해 곡선길은 사람의 왕래와 소통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난 길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굴곡을 따라 같이 흐르며 생성된 길이다. 대부분의 자연적 형태는 곡선이기에 길도 곡선으로 흐른다. 과속을 허용하지 않는 곡선길에는 만보 산책의 여유가 흐른다. 그 길에서 우리는 향긋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고 꽃향기에 한눈을 팔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다. 하여 사람다운 길은 곡선이라야 한다.

길에는 또한 공간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길도 있다. 삶은 어쩌면 공간길이 아니라 시간길을 걸어오고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지나면 다시 갈 수 없는 시간길은 삶의 일회성과 상통한다. 시간의 불가역적인 길을 걸어온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고향으로 시간길을 통해 돌아갈 수 없다. 거기 어릴 적 같이 호흡하고 살았던 사람들도 그들의 시간길을 통해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변해버린 고향은 연로한 부모처럼 상처받은 영혼들을 다독이고 품어줄지언정 책임지지 못한다. 그래서 고향은 위로 받는 곳이지 의탁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길을 통해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온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시간길은 다시 갈 수 없기에 애틋하다. 시간길 위의 만남과 헤어짐, 떠남과 돌아옴은 한 맺힌 이야기를 만들고 시를 만들고 노래를 만들었다. 그 노래는 자동차의 경적이나 축구장의 호루라기처럼 직선이 아니라 사시사철 방향과 강도를 달리해 부는 바람처럼 곡선이다. 살다보면 쌓이는 무수한 한을 달래고 넘어서는 육자배기처럼 유장한 곡선이다.

시간길엔 그 길을 오갔던 많은 사람들의 삶의 비의가 고저장단의 노래로 흐른다. 그 노래는 영원에서 영원으로 무심히 불어오고 불어가는 바람 속에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남아 끝없이 내일로 이어질 것이다. 모든 길은 노래다.

김선두/한국화가

-2007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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