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소문난 잉꼬부부였던 노부부가 자신의 집 안방에서 한 날 한 시, 같은 장소에서 저 세상으로 함께 떠났다.

지난 2002년부터 4년 동안 늙고 병든 아내를 정성스레 돌본 70대 할아버지는 고통받는 아내를 보다 못해 질식사시킨 뒤 스스로도 목을 매 숨진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8시께 장흥읍 예향리 한모씨(75)의 집에서 한씨와 한씨의 부인 위모씨(74.여)가 함께 숨져 있는 것을 한씨의 손자(17.고2)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한군은 "등교 하기 전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 집에 들렀다가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어 보니 두 분 모두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한씨는 집안 대들보에 압박붕대로 목을 매 숨져 있었고, 한씨 부인은 방 안에서 콧구멍이 휴지로 막힌 채 질식사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숨진 한씨 부인의 머리맡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미안하다'고 새겨진 유서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경찰조사 결과 남편 한씨는, 4년 전 아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뒤 줄곧 아내 곁에서 병수발을 해 왔다. 택시 기사인 아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중학생 손녀가 옆집에 살고 있으나, 병든 아내의 병치레는 늘 한씨의 몫이었다. 부인이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정도였지만 아들 내외가 이혼하는 바람에 혼자서 아내의 병수발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온갖 수발을 다들며 정성스레 부인을 간호하던 한씨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끼니도 거르기도 하며 황혼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왔던 한씨. 스스로 고령인데다 2년전부터는 고혈압과 동맥경화 등 각종 노인성 질환을 앓으면서 갈수록 심적 고통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이 이처럼 악화되자 한씨는 통원 치료를 받아야했고 최근에는 위식도 역류질환으로 식사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병원에 입원 해야할 만큼 상황이 악화됐다. 1주일전부터는 위식도 역류증세마저 보였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한씨의 아들은 경찰에서 "병든 부모님에게 효도 한 번 못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시다니 죄스럽고 괴롭다"고 말했다.

한씨 부부가 숨진 6일은 공교롭게도 병원 입원이 예정된 날이었다.

경찰은 '평소 부부금슬이 남달랐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한씨가 오랜 병수발로 지친 데다 하나뿐인 자식에게도 짐이 될 것을 우려, 고통받는 아내와 함께 나란히 생을 등진 것이 아닌가 보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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