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과 산' / 2002년 3월호


지난 겨울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겨울산에서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겹겹이 쌓인 눈길을 걷던 꿈같은 겨울 산행을 추억에 담고,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러 가벼운 발걸음을 남쪽으로 돌린다. 100여 미터의 산에 잔설 조금 남아 있는,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냇물 가에 하얀 얼음 조금 남아 있는 그러나 봄은 소리없이 조용하게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언제나 찾아오는 봄이지만, 게절의 시작인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비교적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조용한 산행 대상지를 물색했다.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보던 중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흥산악회 이영돈 부회장으로부터 장흥군의 안양면과 웅치면 경게에 솟아 있는 삼비산(三妃山)을 소개받았다.
장흥은 전라남도 남단에 위치한 지역으로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울려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남북으로 긴 땅덩어리는 강진과 보성을 좌우로 두고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곧장 남해다. 장흥에는 유명한 산도 여럿 있다. 가을의 억새와 기암괴석이 어울려 호남의 5대 명산이라 불리는 천관산, 푸르름과 철쭉능선으로 명성이 자자한 남도의 명산인 제암산, 철 따라 다양한 모습을 선사하는 사자산 이외에도 가지산, 억불산 등 유명한 산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러한 명산들이 많아서인지 삼비산은 지도에 산명도 없이 그저 '664.2'로만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삼비산은 장흥군 안양면과 보성군 웅치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이다.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이 남으로 남으로 한없이 달리다가 장흥땅 제암산과 사자산에 이르러 갑자기 방향을 동북으로 틀어 북상해 올라간다. 사자산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호남정맥이 남진하던 산줄기의 기운을 모아 남쪽 바닷가 가까이 내려와 봉우리 하나를 형성해 놓은 것이 바로 삼비산이다. 호남정맥의 다음 봉우리인 북동쪽의 일림산(626.8m)과는 직선거리로 약 1,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전지가위로 가시덩굴 헤치며

호남고속도로에서 광주로 진입하기 전 광산IC에서 13번 국도를 이용하여 나주로 이동, 나주에서는 23번 국도를 이용하여 장흥에 들어섰다. 장흥군청 앞에서 이번 산행을 위하여 전화로만 연락은 하던 장흥산악회의 이영돈 부회장을 만났다. 장흥군청에 근무한다며 이번 산행을 위하여 지난밤 당직을 하고 군청에서 나오는 길이란다.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산행을 동행하기로 한 전임 장흥산악회장인 이희찬씨와 조직부장을 맡고 있는 조규석씨까지 합류하여 산행 들머리인 장수마을로 향했다.

이영돈씨는 오늘 취재팀과 오를 삼비산은 장흥군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등산가들도 잘 오르지 않는, 숨겨놓은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취재팀을 도와주기 위해 장수마을 주민인 정창섭씨가 직접 동행키로 했다. 장흡흥읍에서 18번 국도를 따라가니 오른쪽에는 억불산이 왼쪽은 사자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10여 분 진행하여 장수마을에 도착하였다. 장수마을이 산행 들머리다. 새로 지은 마을 회관 앞에는 돼지 한 마리가 매어져 있고 마을 사람들은 분주하다. 제법 커다란 회관 앞의 나무는 트랙터를 동원하여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내일이 마을회관 준공식이란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 회관 앞의 마당과 주차장을 정리하고 있다. 마을 회관 안에서도 청소가 한창이다. 산행을 동행한 정창섭씨는 이 마을회관 바로 옆에 살고 있었다.

신축된 마을회관의 오른쪽 길을 따라 마을을 통과하여 유자나무 밭으로 능선에 올라섰다. 마을 서쪽의 나발봉을 조금 넘어선 곳이다. 능선을 올라서자 나무 사이로 건너편 골짜기의 신촌저수지가 보인다. 신촌저수지는 이승골로 불리며 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민물장어가 많아 어렵지 않게 장어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부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관계로 가시덩굴이 취재팀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진행을 더디게 한다.

이영돈씨는 이것을 미리 예상했었던지 미리 준비한 전지가위를 이용하여 가시덤불을 잘라내 길을 만들어 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알고보니 이번 산행을 위해 지난 주말에 이미 답사까지 다녀갔었다. 정창섭씨는 햐산물을 나를 때 쓰는 갈고리 모양의 도구를 준비해와 가시덩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능선에 어럼풋이 남아 있는 임도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오히려 작은 소나무들이 아주 잘 자라나고 있다. 신촌저수지 오른쪽에서 시작된 임도는 400m가지 이어져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다시 신촌저수지 아래쪽으로 내려가도록 되어있다. 지역에 연고가 있던 분이 신촌저수지가 있는 이승골 일대를 수련원으로 개발하려고 준비를 하였으나 결실을 보지못하고 중간에 공사를 중단하였다고 한다. 임도를 조성했던 곳에 작은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차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긴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임도와 능선을 넘나들면서 해발 400m 이상의 능선에 이르니, 가시덩굴도 없어지면서 산행하기가 아주 좋다.

또한 제법 고도가 있어 남동쪽으로는 득량만의 나해가 시원스레 펼쳐지고 북서쪽은 억불산과 사자산이 바라보인다. 전망 좋은 산행이다. 정상부로 다가갈수록 철쭉나무들이 울창해진다. 철쭉들이 자연적인 군락이 형성되어 간다. 마을에서 보이는 가장 높은 곳인 회룡봉에 올라섰다.

완만한 정상부 능선은 철쭉나무군락

회룡봉은 640m 정도의 두 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고 주봉인 삼비산과는 500m 정도 거리로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삼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온통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철이 아니라 잎도 나지 않는 나무들만이 온산을 뒤덮고 있다. 전임회장인 이희찬씨는 '4월 말부터 개화하기 시작하는 철쭉은 5월 초가 되어 붉은 꽃이 만개되면 산등성이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 일대 18만평 정도가 붉게 물들어 멀리서도 산등성이 전체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산행에서 식사도 또 하나의 즐거움. 회룡봉에서 각자 준비한 점심을 펼치니 조직부장을 맡고 있는 조규석씨의 배추김치, 갓김치, 파김치 등 김치 시리즈가 일행이 준비한 음식 중에서 인기를 독차지 한다. 회룡봉에서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 삼비산 정상에 오르니 억불산, 사자산, 일림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해에 떠 있는 듯한 득량도와 장계도도 손에 잡힐 듯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삼비산으로 알고 있는 664.2봉 정상에는 보성군에서 세워 놓은 <일림산 664.2 보성군> 이라는 커다란 자연석 표지석이 있다. 그 앞에는 대리석으로 잘 다듬어진 제단이 있고 제단 옆에는 '2001년 5월 11일 제1회 철쭉제 백두산악회 설치단 일림산 철쭉제단' 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조금 떨어져서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봉분이 커다란 시커먼 비석을 앞에 하고 서 있다.

함께 동행한 장수마을의 정창섭씨는 "이곳은 동네 어른들도 삼비산으로 부르고 본인도 이제까지 삼비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동네에서는 예로부터 이 산의 어딘가에 있는 명당에 산소를 얻으면 제왕이 나온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조규석씨는 이곳이 일림산이라면 동북쪽에 있는 일림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자세한 자료는 하산해서 알아보기로 하고 하산을 시작하였다.

심비산을 동쪽의 안부를 넘어 주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장흥군과 보성군의 경계를 짓는 능선이기도 하다. 하산길 능선에서는 남해가 잘 조망된다. 하산을 시작하여 30분 정도에 만나는 530m의 봉우리는 상제봉이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가면 투구봉을 올라 수락 마을과 장수 마을 사이의 능선으로 내려서게 된다. 장수마을로 원점회귀 산행도 가능하지만 일행은 왼쪽을 이어지는 주능선으로 하산을 계속하였다.
3여분을 걸으니 고려시대 축조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사용되었다는 해발 400m의 봉화대가 나왔다. 봉화대에는 보성군에서 세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급경사의 봉수대를 내려오면 보성군에서 봉수대 밑까지 임도가 건설되어 있다. 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오다 다시 능선으로올라섰다.
봉화대에서 30여분 내려오니 수락리와 전일리를 이어주는 전일치 고개다. 전일치를 넘어서면 바닷가에 마지막으로 솟은 204m의 봉우리에 올라선다. 여기서 사면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서니 해안선을 따라 건설된 장흥군과 보성군을 이어주는 18번 국도가 나왔다. 넘실대는 남해가 파도를 타고 오는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우리의 하산을 맞이해 준다.

*산행길잡이

4월말, 정상부 18만평 물들이는 철쭉 장관. 장수마을~삼비산~봉화대~용곡 당일코스, 영화 '축제' 촬영지 남포도 볼만
삼비산은 전라남도 장흥군의 동남쪽인 안량면과 보성군 웅치면의 경계에 위치하여 북동쪽의 일림산과 이웃하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남해의 득량만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서북쪽으로는 억불산과 사자산이 위용을 자랑한다. 삼비산 정상은 철쭉의 자연군락으로 산철쭉이 붉게 피어나는 4월말에서 5월 중순까지가 가장 아름답다. 남쪽의 회룡산에서 삼비산을 거쳐 북쪽의 이웃한 일림산까지 18만 여평의 정상 부위가 붉게 물든다. 특히 남쪽의 640m의 회룡봉에서 삼비산까지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의 산철쭉 군락의 만개한 모습은 장관이다.
산비산 산철쭉 군락은 사람이 인위적인 형성이 아닌 군락지로자생 면적이 넓고 꽃이 선명하다. 삼비산 철쭉을 즐기려면 4월 말에서 5월 중순에 산행을 하면 좋다. 보성군에서는 작년부터 철쭉제를 개최하고 있다.
코스 상세 가이드 장수마을~나발봉~회룡봉~삼비산~주봉산~상제봉~봉화봉(봉화대)~전일치~용곡 코스는 하루산행 거리로, 아직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아 조용한 산행을 즐길 수있다. 장수마을에 들어서면 올 2월5일에 준공한 마을회관이 나온다. 마을회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200m 정도 올라가 오른쪽으로 산을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초입에서 400m 고도까지는 잡목들과 가시덩굴 등이 산행을 더디게 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철쭉나무 등이 많아지면서 비록 등산로는 없지만 능선을 따라 오르기가 수월하다.
삼비산에서 안부를 넘어 주봉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작하여 상제봉에 이른다. 이곳에서 능선이 두 개로 갈라지면 오른쪽 능선을 이용하면 투구봉을 거쳐 다시 장수마을로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왼쪽의 주능선으로 하산하면 봉화봉에 이른다.
봉화봉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조금 걷다가 또다시 능선에 접어 들면 예전의 수락리와 전일리를 이어주던 전일치다. 이곳을 넘어서면 마지막 204m 봉우리에 올라설 수 있다. 사면을 따라 내려서면 해안선을 따라 장흥군과 보성군을 이어주는 18번 국도의 안양면 용곡으로 이곳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교통
승용차편/ 서울, 대전 등 중부권에서는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광주 직전 광산IC에서 나와 13번 국도를 타고 나주를 거쳐 23번 국도로 산행 기점인 장흥에 도착한다. 장흥읍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안양면 쪽으로 8km 진행하여 운정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5km 정도 진행하면 왼쪽으로 들머리인 장수마을이 나온다. 장수읍에서 들머리 장수마을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편/ 서울~장흥간 1일 3회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그러나 광주~장흥간 직행버스가 하루 26회 운행한다. 들머리인 장수마을행 시내버스는 아침 6시15분부터 18시5분까지 5회 운행하며 요금은 850원이다. 하산지점 수문리 용곡까지는 장수읍에서 아침 5시부터 20시까지 하루 25회 30~40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다닌다.

* 잘 데와 먹을 데

안양면 수문리에 가면 민박업소와 모텔이 있다. 또 산행의 기점인 장흥읍에 위치한 숙박시설인 호텔(장흥관광호텔 061-864-7777)과 여관 등을 이용하여 장흥읍에서 숙박하는 것이 편하다. 수문해수욕장의 민박집(장흥민박 061-862-8563)도 고려해볼 만하다.
삼비산 산행은 다른 산행과는 달리 끝마무리가 바닷가로 이어져 있어 해산물이 먹거리다.
수문해수욕장 주변에 횟집들이 많이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서 있다. 2층에 올라서면 넓은 창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자연산 회를 즐길 수 있다.

*볼거리

남포와 소등섬 남포는 영화 <축제>의 촬영장으로 유명하다. 장흥읍에서 약 20분 거리로 바다가 보이면 해안을 따라 왼쪽으로 앞의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해안선과 앞 바다에 떠 있는 듯한 조그마한 소등섬이 그림처럼 나타난다.
썰물이 지면 방파제를 따라 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다. 겨울철인 11월 하순부터 설까지 자연산 굴 채취 기간이다. 한 겨울 기나긴 밤 목장갑을 끼고 신선한 자연산 굴을 탁탁 튀는 장작불에 구워먹는 것도 이곳의 추억을 더해준다.
수문해수욕장 하산지점인 용곡에 있는 해수욕장. 장흥읍에서 동남쪽으로 16km 거리에 있다.
남해의 청정해역인 득량만이 조용하게 펼쳐져 있다. 넓지 않은 백사장으로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아 조용히 피서를 즐길 수 있다. 사시사철 득량만의 풍부한 어족 등으로 싱싱한 활어 맛을 느낄 수 있으며, 키조개, 피조개, 대조개의 자연 서식지다.
특히 이곳의 자랑거리인 바지락회 맛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있다. 해수욕은 매년 7월15일부터 8월15일까지 즐길 수 있으며 해수면이 완만하여 전남지방에서도 안전한 해수욕장으로 꼽히고 있다. 사촌리와 연결되는 해안일주도로를 따라가면 장재도와 갯바위 낚시터와 함께 남해의 정취를 흠뻑 만끽할 수 있다.

*삼비산은 664.2봉, 일림산은 626.8봉 2만5천분의 1 지형도의 일림산 위치 틀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5만분의 1 지도에는 보성군 웅치면과 화천면 경계의 626.8봉을 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국내 대부분 지도는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5만분의 1 지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어서 다른 대부분의 등산지도에도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1/25,000 지도는 취재팀이 답사한 장흥군 안양면과 보성군 웅치면 경계의 664.2봉을 일림산이라 가라키고 있다. 보성군에서는 664.2봉에 <일림산 664.2 보성군> 이라는 표지석을 세우고 일대의 등산로를 정비하고2001년 5월에 제1회 철쭉제를
거행하였다. 이는 국립지리원이 5만분의 1 지도와 2만5천분의 1 지도에 각기 다른 봉우리에 일림산을 표기한 데서 생긴 혼돈이다.
장흥군의 향토사료와 1997년에 안양면에서 옛날 자료를 정리한 것을 살펴보아도 664.2봉은 오래 전부터 삼비산으로 불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안양면 수락리와 장수마을 노인들도 삼비산으로 알고 있다. 이웃한 장흥군과 보성군에서는 향토 고문헌 등을 깊게 고찰하여올바른 산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