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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서울사람에게 장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80년대 MT촌, 90년대에는 모텔촌이 된 장흥유원지를 생각할 것이다. 서울근교의 장흥이 사람 발길에 이제 변변한 녹지조차 보이지 않은 곳이 되었다면, 그 서울에서 남쪽으로 곧게 내려와 만난 바닷가라하여 정남진(正南津)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 이제부터 이야기할 남도의 장흥은 북적대는 사람들보다는 포구의 빈배들과 억새밭을 스치는 바람들이 띄엄띄엄 시어 같은 말을 건네오는 그런 곳이다.



1. 장흥개관


장흥군은 전라남도의 남해안에 접한 곳으로 서쪽으로는 남도답사일번지 강진군과, 동쪽으로는 녹차밭으로 유명한 보성군과 맞닿아 있다. 유명세를 타게 된 정동진에 착안했을까? 정남진이라는 말은 사실 최근에 지역홍보를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장흥의 위치가 서울 광화문기준으로 정남방향이 맞긴 하다. 하지만 굳이 서울과의 관계를 나타낸 말을 써야 했을지. 더군다나 장흥에는 한양천도한 이성계의 조선에 불복했다는 바로 그 천관산이 있지 않는가? 그런 별칭없이도 장흥의 풍경들은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장흥은 남북으로 기다란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서울이나 광주 쪽에서 접근하면 보림사 부근을 지나쳐 장흥읍에 도달하게 된다. 장흥읍 주변에는 며느리바위가 이색적인 억불산이 있고 그리 머지 않은 곳에 수문포해수욕장이 있다. 장흥읍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용산면을 지나 관산읍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름과도 같이 여기에 유명한 천관산이 서 있다. 또 용산과 관산에서 동쪽으로 향하면 득량만의 너른 바다를 만나게 된다. 관산에서 더 내려오면 대덕읍이라는 작은 동네를 만나는데 여기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회진포구로 향할 수도 있고 강진으로 넘어가 바닷길을 따라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장흥을 처음 찾은 때는 2003년 가을이었다. 그리고 그 때 새겨진 장흥의 가을 풍경을 잊지 못해 이듬해 가을에 한 번 더 다녀가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기는 달랑 두 번만 올 곳이 아니라고 장흥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이 있지만, 우선은 다녀간 곳들만 기억 속에서 꺼내 보고자 한다.


2. 가볼 곳

* 장흥읍


장흥읍과 억불산▶

장흥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버스가 유일하다. 버스를 타게 되면 터미널이 있는 장흥읍에 제일 먼저 도달하게 된다.
한적한 곳으로 여행할 때의 기분은 어떤 면에선 이중적이다. 일상을 탈출한 해방감이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해방감의 이면에는 불안한 마음도 존재한다. 익숙한 일상이 제공했던 편안함을 잠시 놓아두고 낯선 곳에서 생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만나는 ‘읍’이라는 장소는 바로 이런 기분을 적당히 섞어놓으며 불안한 마음을 완충시키는 역할을 한다. 외딴 여행지에서는 구할 수 없을 수도 모를 잠자리, 먹을거리, 의약품 등 필요한 것들을 읍에서는 제공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처럼 이러한 것들이 과잉공급된 상품이 되어 서로 선택해 달라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딱 필요한만큼 구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어서 읍에서의 기분이 든든하고 아늑한 것일 게다.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도 하고, 골목골목을 다녀 보며 큰 도시와는 다른 생활을 느껴보고, 또 조금 고단할 수 있는 발걸음을 잠시 쉬면서 다음 여행 일정을 계획해보는 곳이 바로 여행 중의 ‘읍’일 것이다. 장흥읍은 이러한 읍의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읍 중에는 너무 커서 도시와 비슷하거나 혹은 여행자가 머물기엔 적당치 않은 작은 곳도 있는데, 장흥읍은 적당한 규모와 적당한 시설과 적당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장흥읍의 탐진강

터미널에서 나오면 가까이에 억불산이 보이고 산중턱에 자리잡은 독특한 모양이 바위가 한 눈에 띄는데 이 바위에는 며느리바위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 바위에는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던 어느 집의 며느리가 스님의 충고를 잊고 뒤를 돌아봐서 돌이 되고 말았다는 오르페오스러운 전설이 전해진다. 그런데 바위 엄청 크던데 뭐 며느리가 거인도 아니고 -_- 이런 전설이 실감나기 보다는 그냥 며느리 발톱같이 튀어 나와 있어 며느리바위라고 불린 건 아니었을까 하고 멋대로 생각도 해 본다. 억불산은 높지도 않고 완만해서 가볍게 등산하기에 제격이라고 하는데 직접 오르지 않고 보기만 하더라도 좋은 눈요깃감이다.

장흥읍이 그 자체로 멋진 여행지인 것은 무엇보다도 탐진강이 그 곳을 가로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장흥읍을 흐르는 탐진강은 강폭이 그리 넓지 않지만 이 강이 지나는 곳 중 가장 번화한 곳이 바로 이 조그만 장흥읍인 만큼 아직까지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오후 무렵 강물 위로 부서지는 햇살은 말그대로 보석같이 빛나고, 또 그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철새 친구들도 만나 볼 수 있다. 강가에는 강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벤치도 있는데 둔치 정비는 강의 분위기와 조화롭게 하는 것 같지 않아서 아쉽다.
터미널에서 버스 승차장 반대편으로 나오면 번화한 읍내이고 상가 숙박시설 등 여러 편이시설들이 있다. 번화한 곳을 통과해 몇분만 걸어가면 탐진강이다. 그리고 강 건너편에는 어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각종 싱싱한 수산물을 보고 살 수 있다. 장흥의 가을 전어 유명하다! 요즘은 이 일대를 토요풍물시장으로 개발해서 난전처럼 먹거리도 팔고 다양한 물건도 팔고 산다고 한다.

* 수문포



수문포구의 아침바다

장흥은 바다와 접해있지만 해수욕장은 수문포해수욕장이 거의 유일하다. 그리 넓지 않고 백사장도 발달해있지 않지만 파도가 잔잔해서 여름철에 물에 들어가서 놀기에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해수욕장이 오목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에 여기서 보는 바다 경관은 약간 답답하다. 바닷물에 발목이라도 담글 생각하지 않는다면 해수욕장 옆에 있는 포구 방파제로 향하는 것이 좋다. 그 곳에서 멀리 섬들을 감싸고 있는 탁 트인 바다풍경을 볼 수 있다.
수문포는 장흥읍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버스를 타고 간다면 20분이상 소요된다. 경유지에 따라 버스노선이 두 개 이상인 것 같은데, 어떤 버스를 타면 허술한 군내버스로 왕복 2차선이 채 안되는 낭떠러지 고개길을 꼬불꼬불 올라갔다 내려오는 스릴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 천관산



장흥을 찾게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꼭 가을에 장흥을 찾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천관산 때문이고 굳이 천관산인 이유는 그 산 위에 끝도 없이 펼쳐진 억새들 때문이다.

천관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장천재를 들머리로 하는 길을 주로 이용한다.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대중교통 편도 비교적 좋으며 승용차를 이용해도 원점회귀코스이기 때문에 차량 회수가 쉽기 때문이다.
관산읍을 남쪽으로 빠져나온 후 한적한 국도를 10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으로 천관산입구 이정표가 있다. 이 이정표를 따라 작은 포장도로를 계속 걸어가면 장천재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조금더 올라가다 오른쪽을 보면 수십그루 나무에 테니스공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눈에 띌 것이다. 가을이면 이곳에서 그 테니스공을 싸게 팔기도 하는데, 돌아올 때 몇 개 구입해 가서 칼로 자른 후 설탕에 재워두면 겨우내 향기로운 유자차를 즐길 수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에 시원한 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는데 산 위에 물이 귀한 편이므로 여기서 식수를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지도 출처 : 한국의 산하


옆의 지도에서 보듯이 장천재에서 오르는 길은 세가지이다. 어느 길이나 정상부의 억새능선까지 1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다. 이 중 두 개를 선택해서 하나를 오르는 길로 다른 하나를 내려오는 길로 정하면 되는데 세가지 길은 각각 일장일단이 있다. 양근암길은 산정상인 연대봉으로 직접 오르는 길인데 양근암, 정원석등 볼거리가 있고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남해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르막 경사가 심하고 거리도 긴 편이어서 오를 때 체력소진이 크다. 가운데 길인 금수굴길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해서 편하게 오를 수 있는 반면 양쪽이 막혀있어서 조금 답답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으로 금강굴길은 꼭대기 능선의 기암들이 이어져 바위감상을 하기에 좋고 전망도 좋지만 간혹 험한 구간이 있어서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이용하기엔 아주아주 약간 불편함이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지 한참 힘들여 올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눈앞이 확 트이고 지금까지 걸어온 곳과는 다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것은 드디어 오르는 일이 끝나는 순간임과 동시에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은빛 억새의 바다 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이기도 하다. 억새들은 연대봉부터 환희대까지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 이 억새능선길은 거의 평지에 가까워서 30분 가까이 계속되는 억새 산책여정은 그 끝이 아쉬울만큼 발걸음이 가볍다. 원래 억새가 있던 이곳은 소나무가 울창한 능선이었는데 몇십년전 등산객의 실수로 산불이 나서 나무들이 남김없이 타버렸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다시는 아무 것도 살 수 없었을 것 같던 폐허 위에 하나둘씩 나타나 그 자리를 메운 것이 이 억새들이다. 그래서일까. 상처 위에 얹어놓은 반창고처럼 억새는 그 곁을 지나는 이들의 상처도 어루만져준다. 실바람에도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며 사람들 가슴속에 맺힌 회한들을 저편으로 실어나르니 말이다. 그렇게 수더분한 인상의 억새도 살며시 제 몸 치장을 할 때가 있다. 해가 기울면 억새들은 자기의 깃털 같은 꽃을 반짝이는 장신구로 삼으니, 곱게 단장한 억새를 만나려면 맑은 날 아침이나 오후 늦은 시간에 이곳을 찾을 일이다.



천관산의 억새능선

억새능선에서는 억새만 볼거리가 아니다. 천관산, 즉 하늘의 갓이란 뜻의 이름은 아마도 이 능선에 곳곳에 있는 기암괴석들 때문에 생긴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 있는 바위들은 웅장하거나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와 모양의 것들은 아니다. 조물주의 어린 자식들이 레고블럭을 여기저기 쌓고 놀다 떠난 듯 고만고만한 바위들이 산등성이에 점점이 얹혀 있어 재미있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사소한 것 갖고도 혼자 잘 노는 사람이라면 바위들이 각각 무엇을 닮아 있는지 생각해 봄직도 하다.

▶억새능선의 바위들

바위는 환희대 쪽에 많이 있는데 시간과 체력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환희대에서 구룡봉으로 잠시 건너가 보자. 공룡발자국 같은 구멍들이 움푹 패인 바위 위에서 반대편 전망도 내려다 보고 억새능선의 기암들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해 볼 수도 있다.

* 회진 포구

장흥의 남쪽 끝까지 내려오면 회진 바닷가를 만나게 된다. 바닷가라해서 끝없이 펼쳐진 코발트 블루의 물결이 수평선에서 하늘과 닿아있고 은모래가 반짝이는 백사장에 잔잔한 파도가 부서지는 그런 럭셔리한 바다를 연상하고 이곳에 왔다가는 실망만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회진은 그런 곳이 아니라 장흥 출신의 한 시인이 이곳을 두고 읇었듯 “허름한 바다와 허름한 하늘이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집이며 상가이며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동리길을 걸어 들어가면 선창의 빈배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허름한 바다에 닿는다. 대지와 물이 맞닿는 곳, 인간과 바다가 만나는 곳, 그래서 치열하고 질펀한 삶들의 이야기가 속속 배어있는 곳, 포구다. 도시에서 온 이방인 중에 이 포구의 얘기들을 들을 줄 아는 자가 얼마나 있으랴. 이곳에 섰을 때 별다른 느낌이 없으면 없을수록 더 오래 머물러 보자. 갯내음 가득한 선창길을 걸어보고, 드나는 배들도 무심히 바라보고, 포구시장 한 켠에서 질박한 남도 사투리의 대화도 슬쩍 엿들어 보고, 땅거미가 뻘과 바다를 한 번에 삼킬 무렵 으슥해지는 체온도 느껴볼 일이다. 이튿날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는 짭조름한 소금기에 물씬 절여 있을 게다.



회진포구의 아침

장흥사람들은 자기 고장을 문림(文林)이라 부른다. 정말 그 이름처럼 장흥에서 수많은 문인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한승원과 이청준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사람이 같은 해에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 곳 회진이다. 최근에 지자체에서 그 분들의 문학비를 세우고 태어난 생가도 정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승원의 생가는 회진에서 왼쪽길로 가는 대리에 있고 이청준의 생가는 오른쪽으로 십리길을 들어가면 진목리에서 찾을 수 있다. 회진에서 이청준 생가를 가는 길은 그의 소설 ‘눈길’이 배경이 된 그 길이다. 빚으로 남겨주게 된 집에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재우고 새벽에 광주로 돌려보내는 어머니와 그 아들이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걸어갔던 길, 그리고 첫차가 후딱 아들을 실어가고 홀로 허망하게 돌아오는 어머니가 밟았던 그 길이다. 사실 누구누구 생가라는 게 막상 가보면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눈길’의 이야기를 글이 아닌 발로 느껴 보려면 그 길을 징하게 한 번 걸어 봄직도 하다.


* 보림사

장흥 여행에서 빼놓아서는 안될 곳은 보림사이다. 언젠가 유홍준씨가 어떤 장흥사람으로부터 왜 장흥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빼놓았냐는 항의편지를 받은 일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항의의 근거는 무엇보다 바로 보림사였다. 유홍준씨도 인정했듯이 보림사는 답사기에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찰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 답사기에 빠진 것이 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홍준씨의 답사기 의해 소개된 다른 곳들이 단체 답사객들로 북적거리며 유명세를 치르는 동안, 상대적으로 보림사는 주말이건 평일이건 늘 인적없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바람에 짤랑거리는 풍경소리만이 침묵을 깨는 고요한 절집, 보림사의 첫인상이다.



보림사3층 석탑과 석등

누구든 보림사에 들어서는 순간 만만치 않은 ‘문화유산적 가치’의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고색이 느껴지면서도 첫눈에도 예쁘게 보이는 한 쌍의 석탑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옆의 석등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유명한 보림사 삼층 석탑이다. 또 대적광전 안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라는 거대한 철불상도 신라말기 호족의 권세를 짐작하게 하는 것으로 역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국보니 보물이니 하여 문화재에 등급을 매기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다른 절에는 하나도 있기 힘든 국보급 문화재가 보림사에는 무려 세 개나 있다.


뿐만 아니라 ‘국보’급은 안되어도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만 해도 보조선사 창성탑, 보조선사 창성탑비, 현존하는 목조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하는 사천왕상 등등 가히 문화재의 보고라 할만하니, 문화재 답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빠트리지 않아야 할 사찰이 이 보림사이다.

그리고 이 문화재만 살펴보는 것으로 보림사 방문을 끝내서는 안될 것이다. 보림사 경내는 가을이면 그 운치를 더 한다. 해걸이가 심하다고 하는 감나무는 짝수년도면 더욱 풍성하게 열매를 맺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나란히 자리한 은행나무들은 노란 잎을 층층이 쏟아내어 담장 밑을 수놓는다. 가을볕 아래 풍경소리를 들으며 느릿느릿 경내를 돌면 어느덧 세속의 번뇌가 훌훌 털어져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경내를 걷는 것으로 보림사 방문을 끝내서도 안될 것이다. 보림사에는 동부도와 서부도로 나뉜 두 개의 부도전이 있다. 동부도는 본당에서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지만 서부도는 경내에서 10여분을 더 걸어 올라가야만 한다. 보림사 위쪽으로 한적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좌측의 마을길로 돌아서면 집들이 모여있는 곳에 서부도가 자리하고 있다. 서부도보다 동부도에 더 많은 부도탑이 있고 예술적으로도 훌륭해 보이는 탑도 더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부도로 가는 발품은 전혀 아깝지 않다. 몇 십년 전이었다면 ‘신작로’라고 부를 만한 그 길가에 가을이면 곱게 물든 단풍들은 나무들이 벗해주고 사진처럼 곱상하게 생긴 시냇물도 함께 산책해 주기 때문이다. 동부도는 보림사 앞 주차장 아래 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생김새가 제 각각인 부도탑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있다.

그리고 또또한 이 부도전을 보는 것으로 보림사 방문을 끝내서도 안될 것이다. 동부도 옆에는 좁은 오르막 등산로가 있다. 보림사 뒷산인 가지산으로 오르는 길인데 멀리 가지는 않아도 10여분만 힘을 써서 가파른 길을 오르면 대숲이 나오고 그 옆길로 전망대를 찾을 수 있다. 전망대의 정자에서 내려다 보는 보림사의 모습은 또한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분명히 사람이 터를 닦고 뚝딱뚝딱 만든 건축물인데 저렇게 계곡과 산봉우리의 곡선과 잘 어울리게 자리잡을 수 있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간이 자연의 덕을 빌려 살려면 저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또또한 이렇게 전망대에서 보림사를 내려다 보는 것으로 보림사 방문을 끝내서도 안될 것이다. 동부도 옆에는 오르막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림사 방향으로 평지길이 나있다. 이름하여 보림사 산림욕장인데 특별한 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걷기 좋은 숲속 오솔길이다. 여기에는 특히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비자나무 숲이 있는데 숨쉬는 일이 행복해질 정도로 상쾌한 향기를 내뿜는다. 비자림 뿐만 아니라 대나무, 녹차 등의 군락지를 거치는 이 길은 10여분정도 이어지고 보림사 위쪽으로 나오게 된다. 겉옷을 벗어 들고 이 삼림욕 오솔길을 천천히 통과하여 걸어나오는 순간 당신은 이미 한 통의 후라보노가 되어있을 것이다.

* 그 외

남포. 이청준의 ‘축제’의 배경은 작가가 살았던 회진이지만 영화 ‘축제’의 촬영은 용산면 남포리 마을에서 이루어졌다. 걸어 들어 갈 수 있는 조그만 소등섬이 있는 작고 예쁜 바닷가 마을이라고 한다.

천관사. 천관산 자락에 자리잡은 절인데 동백과 대나무로 둘러 쌓여 있어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관산읍에서 진입하거나 천관산 환희대에서 이리로 하산길을 잡아 내려올 수 있다.

방촌마을. 천관사 장천재 입구에 자리잡은 마을로 장흥 위씨 집성촌이다. 전통가옥들과 고인돌이 보존되어 있어 이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들러 볼만하다.

탐진강 정자. 탐진강 줄기를 따라 경치 좋은 곳마다 정자가 세워져 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부촌정과 사인정이다. 부춘정은 장흥읍 북쪽의 부산면 부춘리에 있는데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공신인 된 문희개가 낙향하여 만든 것이라고 하고, 사인정은 장흥군과 강진군의 2번 국도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3. 가는 길


서울에서 대중교통은 고속버스가 유일한데 하루 4회밖에 다니지 않는다. 출발지가 남쪽 지방이 아니고는 서울을 포함하여 어디서 오든 광주를 경유하는 것이 좋다. 광주터미널에서 장흥까지 약 40분간격으로 버스가 있고 이 버스 중 대부분이 관산을 거쳐 회진까지 운행하므로 여행일정에 따라 하차지점을 정하면 된다. 광주에서 버스로 장흥읍가지는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승용차로 여행할 경우 광주에서 나주를 거쳐 23번 국도로 영암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고, 광주에서 화순을 거쳐 29번 국도 보성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는데 거리와 시간은 비슷비슷하다.

장흥읍에서 관산이나 회진은 광주에서 오는 시외버스나 간간히 있는 군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장흥읍에서 관산까지는 20여분, 회진까지는 50분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보림사는 장흥읍에서 군내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하루 몇차례 다니지 않는다. 대신 유치행 버스를 타면 그곳에서 보림사를 가는 버스가 있는데 이도 역시 하루 몇차례 있지 않다. 보림사를 대중교통으로 찾으려면 시간표를 잘 짜야한다. 장흥군 홈페이지나 터미널의 시간표를 참조할 수 있다. 장흥읍에서 보림사까지 승용차로는 30분이 채 안걸리지만 버스를 타면 여기저기 경유하므로 1시간가까이 소요된다.

4. 먹을 곳

장흥에서 유명하다고 소개되는 음식점들은 혼자 여행하면서 들어갈 만한 곳이 안되기에 찾은 적이 없다. 수문포에 있는 바다하우스는 바지락회가 유명하고, 장흥읍내의 한정식집 신녹원관, 관산에 있는 생선요리집 병영식당 등이 자주 소개된다. 장흥군에 속하지는 않지만 대덕읍에서 23번국도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마량포구라는 곳이 나오는데 잘 단정된 회타운이 있고 싱싱한 활어를 직접 살 수도 있다. 만약 승용차로 마량포구를 들른다면 23번국도로 더 진행해 보자. 천혜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만약 혼자 여행하거나 횟집이나 한정식집 등이 부담된다면 그냥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보자. 여기, 남도다! 동네 백반집, 곰탕집 어디나 반찬 많이 나오고 맛도 좋다.

5. 잠잘 곳

장흥에는 휴양림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천관산 휴양림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운영인 유치자연휴양림이다. 천관산 휴양림은 관산읍과 강진군 칠량면을 연결하는 837번 지방도로의 골치재 정상부에서 진입한다. 진입로에서 간간히 비포장이 있는 좁은 임도로 7km를 가야하므로 이곳에서 숙박하려면 해지기 전에 들어 서는 게 좋다. 휴양림 이용에 대해서는 홈페이지 참조.

그 밖에 장흥읍과 관산읍, 회진포구 등에도 여관, 모텔 등 숙박시설이 많이 있고, 수문포에는 최근 옥섬워터파크라는 호사스런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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