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면 율산마을 해산토굴에서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소설가 한승원씨(68)가 최신작 <키조개>(문이당)를 펴냈다.


남도 특유의 한(恨)을 신화와 샤머니즘을 통해 넘치는 생명력으로 환원시키며 그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 온 소설가 한승원의 장편소설. 오랜 기간 스스로 유배시킨 ‘해산토굴’ 안에서 은밀히 ‘곡신=갯벌=연꽃=키조개’라는 씨앗을 키우며 애타게 해산을 기다린 작가의 수고로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한승원의 문학적 메시지는“본질적인 존재로의 회귀와 탄생”으로 응축된다. 소설 <키조개>는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방불케 한다. 장흥바다를 무대로,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배우로 나와 한바탕 살풀이춤을 추며 비틀린 한을 달래는 굿판인 것이다.

"이번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시원과 뿌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10여년 전 해산토굴에 온 이후부터 줄곧 쓰고 싶었던 주제이기도 하지요."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번 작품도 장흥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모티프가 되는 키조개는 생명의 근원인 여근을 상징한다. 한씨의 기존 작품이 순수한 근본으로의 회귀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키조개'는 생명 재탄생의 공간으로까지 문학적 상상력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과 차별성을 지닌다.


주인공 허소라는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모성성을 함께 지닌 인물이다.
51세의 그녀는 연꽃바다 앞에 별장을 지었다가, 3년 전 남편이 죽은 후부터는 아예 내려와 산다. 그리고 홀로 칠흑 같은 어둠의 세계를 바라보며 청죽처럼 젊은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엮는다. 한편 토굴 안에서 은밀히 ‘곡신=갯벌=연꽃=키조개’라는 씨앗을 키우며 ‘해산’을 기다리던 소설가 한승원은 갑작스레 방문한 ‘헤프게 푸진’ 자궁 권력자 허소라에게 연꽃으로만 살아서는 꽃이 피는 경계인이 될 수 없다고 충고한다.

아직 달거리가 끊어지지 않은 허소라에게는 홀아비 변호사 이계두, 제랑 박남철, 평생 자신을 짝사랑해 온 영후, 그의 동생 노총각 영재까지 과부가 된 그녀를 넘보는 수컷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녀는 암으로 죽어 가면서 벌어 놓은 많은 돈을 두고 혼자 먼저 죽는 것을 억울해하고 분노하던 남편의 망령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퍼덕이는 참숭어’처럼 살아 있는 자신을 죽은 남편의 부장(副葬)물로 취급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공격에 움츠러들어 중심을 잡지 못한다. 자신이 걸려 넘어진 ‘허방’에 너도나도 빠져드는 현재가 혼란스럽기만 한다.

하지만 평생 동안 자신을 짝사랑해 온 잠수부 영후가 떠돌고 있는 검은 밤바다를 내려다보는 허소라는 짙은 안개 같은 혼돈과 의혹, 모든 문을 열어 놓은 채 자신을 가두는 모순과 역설 들을 뚫고 나가 용서하고 희망을 갖는 것이, 그리고 밤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 밝고 뜨겁게 사랑의 불을 키는 것이, 윤회를 지나 참된 길을 찾아가는 기회를 한 번 더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자의와 타의에 의해 강요된 고독을 떨치고 허소라는 영후를 찾아가 함께 밤바다를 선유한다. 그리고 영후의 딸이 줄기 세포 연구에 난자를 제공했다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말을 듣고 분노한다. 허소라는 진정한 꽃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차지고 무른 갯벌에 연꽃 같은 자신의 몸을 담근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소설가 한승원을 찾아가 간밤에 꾼 지옥도(곡신도)의 이야기를 한다. 한승원은 자신의 꿈과 똑같은 그녀의 꿈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허소라는 이제 이승의 사람들을 위해서 이승 사람들의 삶이 소재로 사용되고 독자도 이승 사람들일 지옥에 관한 꿈을 소설로 쓰겠다고 말한다

한씨는 "작가란 굿을 해야 몸이 안 아픈 무당 같아서 자기 글에 미쳐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며 어떻게 해야 잘 쓰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말한다. '미각 기관이 향기로워하고 맛깔스러워하지 않은 음식을 몸이 즐겁게 받아들일 리 없다. 모든 소설은 한사코 재미있어야 한다. 작가는 그것을 쓰는 동안 내내 성행위를 하듯이 그 속의 이야기나 문장 쓰는 재미에 깊이 젖어 있어야 한다. 작가가 쓰면서 재미있어 하지 않은 소설을 독자가 재미있어 할 리 없다."
294쪽, 9800원, 문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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