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위씨 유적으로는 5세조 충렬공 계정의 묘가 장흥군 장동면 연하동(烟霞洞)에 남아 있다. 또 사우와 제각으로는 하산사를 비롯 죽천사(竹川詞)·석천사(石川詞)·다산사(茶山詞)·월명사(月明詞)·사월재(沙月齋)·백산재(栢山齋)·장천재(長川齋)·추원재(追遠齋)·운곡재(雲谷齋)·양춘재(陽春齋)·경모재(敬慕齋)·관산재(冠山齋)·흥문재(興門齋산)·금산재(錦山齋)·운산재(雲山齋)·계양재(桂陽齋)·화운재(畵雲齋) 등이 있다.

또 향사(享祀)는 시조 및 5현조(중시조 諱昌祚, 판사공 諱 )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하산사에서 봉헌되고 있다.


● 종친 활동

위씨 대종회 결성

장흥위씨 대종회는 시조 위경으로부터 1,35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지난 1990년 11월 3일 각 지역 종친회와 문중을 대표하는 종인 70여 명이 모여 대전의 유성관광호텔에서 모여, 숙의를 거듭한 끝에 창립되기에 이른다. 이때 초대회장에는 위찬호(魏燦鎬.사회교육학박사. 33세), 이사장은 위혹량(魏或良), 부회장은 위황량(魏滉良)·위자형(魏滋炯·위재형(魏載炯), 사무국장은 위갑종(魏甲從) 등이 선임되어 회장단을 구성했다.

이후 대종회는 조직의 저변확대 및 종회기금 모금 등 종무활동을 기반으로 봉제사(奉祭祀), 현창(顯彰)사업, 육영사업(장학사업), 종친 친목도모 등 대종회의 본령적(本領的)적인 사업들을 활발히 펼치면서 위씨 종친회로서 위상을 정립해 나오고 된다.

이리하여 위씨 종친회는 ▲95년 '장흥위씨종보'(4×6배판, 60∼70쪽,2000부)를 창간, 종인들의 정보교류와 소식지로 활용하게 되었으며(2003년 제 7호 발간) ▲정례적인 연중 행사로 매년 5월첫째주 일요일, 장흥위씨의 성지인 하산사(霞山祠)에서 시조 휘경(諱鏡)을 위시한 5현조에 대한 대제(大祭) 봉행 ▲1987년 5월, 시조공 사적비 제막(하산사) ▲학업성적 우수자와 생계 빈곤 종인 자제 중 고교생과 대학생에 장학금을 지급(15명∼20명)하는 지속적인 육영 장학사업 추진 ▲하산사 하계 수련회 개최 등 역동적인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특히 지난 98년 5월 13일 하산산 5현조 대제 때는 지난 98년 4월부터 3년간 모금해온 장학금 3억3백70만원 기탁금에 대한 '장학기금 헌성비(獻誠碑)' 제막식을 갖기도 했다. 이 헌성비에는 장학기금을 기탁한 9개 문중과 14개 종친회, 78명의 개별 헌성 종인 이름을 새겨, 종친과 후학을 위해 성금한 이름들을 후인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1999년 10월 4일에는 3년간에 걸쳐 추진돼 온, 남북합본으로서는 처음인 '장흥위씨 대종보' 2천7백여 부를 발간하는 큰일을 치르기도 했다.

현재 위씨 대종회는 산하에 장흥·서울·광주·관북종친회 등 15개 지회가 있으며, 문중으로는 하산문중을 비롯하여 장천(長川)·행원(杏園)·사월(沙月)문중,정무공(貞武公)·평덕(平德)·종사랑(從仕郞)·운암(雲岩)·운곡 종중(雲谷宗中) 등 9개 문중이 있다.


관북 종친회

대종회 외에 위씨 문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종친회는 관북종친회다. 관북종친회는 조선 초기 입북하였던 16세 자공(自恭)의 후예들로, 피난 1세 위씨들로 이루어진 종친 모임이다. 세칭 '38 따라지'라는 멸시와 실향민이라는 외로움 속에 서울과 전국 각처에 흩어져 살던 이들에게 본향과 같은 성씨 중심한 종친회 모임이 일찍 결성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때가 1981년 8월 23일이었으니 대종회보다 9년 빠른 때였다.

관북종친회 창립 이후 이들은 ▲'관북 장흥위씨 족보' 발간(79.10∼81.7) ▲85년 5월 17,18일 관북종인 14명 하산 대제 참석 등 장흥과의 교류추진 ▲관북입조(關北入組) 자공 기념사업으로 유장비(遺莊碑)제막-86년 4월27일 사월제(沙月齊) ▲96년 종보인 '명월송(明月頌)' 창간(격년간. 4×6배판, 100쪽 안팎). -2003년 제 7집발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나왔다.


장흥·재경 종친회

위씨 종친회 중에서 역사가 가장 깊은 것은 역시 장흥종친회이다.

장흥종친회가 결성된 것은 지난 1971년 5월 1일이었다. 종친회 설립 목적을 쉽게 풀어보면, "하산문중(霞山門中) 숭조애족(崇祖愛族)의 전통을 이어 회원상호간의 족의(族誼)를 돈독히 하며, 현창선조(顯彰先祖), 육영자손(育英子孫)하여 위씨 문중의 영원한 번영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전국 종친회 활성화에 기여해 온 장흥종친회의 초대 회장단은 회장 위계남(魏啓男.장흥), 부회장 위종익(魏鍾鎰, 유치단산) 위황량(魏滉良.관산옥당)이었다. 이후 바톤을 이은 회장단은 ▲제2대(73.4-75.4)- 회장 위용철(魏容喆.관산방촌)/부회장 위규복(魏圭復.장흥행원) 위행환(.魏杏煥.장흥건산) ▲제3대-회장단 연임 ▲제4대(77.4-79.5)-회장 위환(魏桓.장흥내양.작고), 부회장 위정량(魏定良.부산기동) 위옥환(魏玉煥.관산옥당.작고) ▲제5대(79.5-81.4)-회장 위환, 부회장 위계현(魏啓玹.안양비동) 위성환(魏星煥.관산방촌) ▲제6대(91.5-94.9)-회장 위황량 부회장(魏聖鎬.부산효자) 위성환 ▲제7대(94.9-현재)-회장 위성호 부회장 위종흠(魏鍾欽.부산기동) 위옥환 등이다.

지난 96년 6월에 장흥종친회가 펴낸 회원명부에 의하면, 세대주 위주의 회원은 525명으로 돼 있다. 당시 읍면 별 회원수 분포를 보면, 장흥읍 38세대, 관산읍 220세대, 부산면 26세대, 유치면 29세대, 안양면 58세대, 용산면 24세대, 장동면7세대, 장평면 5세대, 대덕읍·회진면 17세대 등이었다.

장흥종친회 정기총회는 매년 하산대제일 이전인 3월 경에 열리고 있는데 현재 장흥종친회원은 더욱 줄어들어 45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위씨 종인이 장흥 외 지역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서울 수도권의 재경종친회가 결성된 것은 1984년이었다. 초대회장은 역시 위찬호(魏燦鎬) 종인. 위회장은 재경종친회 발족에서부터 활성화의 토대, 그리고 대종회 창립의 산파역을 맡으며 12년 동안 재경종친회를 이끌어오다 지난 95년 5월 28일 95년 재경종친회 정기총회에서 당시 이화여대 위자형교수(魏滋炯.醫博)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 준다. 재경종친회는 1989년 5월에 '장흥위씨(長興魏氏)'라는 종보를 발간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파, 가장 많은 위씨들을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재경종친회는 대종회의 중심체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장흥신문/제297호/2003.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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