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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내안리 김기홍씨, 장흥문화원장 입후보선친,증조부 유고집 발간-전국서 매우 드믄 일- 의미 커 주위 강한 권면, 지역문화 창달 위해 문화원장후보 나서 문화공보부,교육부등서 36년-다양한 문화적 마인드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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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2.07  03: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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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내안리출신-명문가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아


지난해 김기홍(金基洪. 69)씨가 선친과 증조부의 유고집을 펴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송천 유집(松泉遺集)>과 <원봉유고(圓峯遺稿)>가 그것이었다.

송천 김태경(松泉 金太璟)선생은 2002년에 향년 84세로 별세했던 학자로 장흥사회에 널리 알려진 인물. 우리지역의 대표적 유림인이기도 했던 송천선생은 지난 1997년, 79세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제28대 장흥향교 전교를 맡아 전통과 법도를 개선하고 재정립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이때까지 한 번도 펴낸 적 없던 <장흥향교지> 발간을 위해 쇠잔해진 몸을 이끌고 방대한 자료를 추스르고 편집과 집필을 맡아 수고하기도 했던 분이었다. 선생은 지난 1993년, 75세 때 대전세계박람회의 국제한시백일장에서 당당히 장원, 대내외에 문명을 드높이기도 했고, 이후 전국한시백일장 고시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기도 했던 열혈 노익장이었다.


또 김기홍씨 증조부인 원봉 김용현(圓峯金用鉉)선생은 조선조 말엽, 독학역행(篤學力行)하고 의를 지키는 가운데, 향리에서 후진양성에 주력하며 살았던 선비였다. 특히 원봉선생은 1894년 장흥동학란 때 장흥부사가 살해된 후, 당시 20세 나이로 두려운 줄 모르고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하였고, 일제합병기 때는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은인하고, 머리 깎고 개명하라 해도 의연하게 따르지 아니하였던 조선조 마지막 선비였다.

송천선생이 지난 1985년 발간했던, 김씨 조부 인곡 김정채 선생의 유고집<인곡집(仁谷集)>까지 합하면, <송천유집(松泉遺集)>․<인곡집(仁谷集)> ․<원봉유고(圓峯遺稿)>등 일문삼대(一門三代)의 유고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 셈으로, 이는 오늘날 전국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드믄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집이든 유고집이든 그것은 나름대로 매우 의미 있는 일로,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책자는 세상에 널리 자랑할 만한 덕망과 공적을 쌓은 선비거나 문사(文士)나 학자로 귀감되는 명문장을 남겨, 후인에게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어야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책을 발간해 내는 과정에도 적지않은 재원과 편집 등 공력이 수반되므로, 이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점에서, 김기홍씨 선대 3인의 유고집 발간은, 능히 김기홍씨 일문의 빛나는 가풍과 학문적인 전통 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도 남는다 할 수 있다. 이는 또 최근들어 가족과 가정이 해체되고, 전통적 가정윤리가 붕괴되고, 숭조사상이 점차 희박해져 가는 세태에 사는 우리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던져 주는 일로, 참으로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문화공보부 등 36년 공직- 문화적 마인드 탄탄

김기홍씨는 부산리 내안리에서 바로 이러한 명문에 탯자리를 묻고 태어났다. 그는 부산초등학교를 거쳐, 장흥중고(8.7회)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행정학과)을 졸업했다. 그리고 공직에 투신, 유치면-부산면사무소, 장흥군청,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 홍보과 등을 거쳐 문화재담당사무관으로 근무하다 전남대학교 학적과장(84년, 서기관), 목포해양대학교 사무처장 근무를 끝으로 지난 1996년에 '36년의 공직'을 마감했다.

그 후 고향에 정착한 그는, 조용히 고향마을에서 살며 간간이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장흥문화원운영위원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언젠가, 김기홍씨는 “증조부(원봉선생)께서 내 나이 6,7세 때 세 권의 한문(推句,萬物集,史略)을 가르쳐주었고, 그 후 11세(초등 4년)때까지 기초적인 인격형성을 위해 많이 지도해주었으며, 가문의 전통계승 등 숭조정신도 깊이 인식시켜주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전통적인 학문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밝았고, 특히 의기(意氣)가 넘쳐났던 명문가에서 어릴 때부터 증조부, 조부, 친부 등으로부터 교육받으며 성장했고, 공직에서도 무탈하게 근무해 온 그였기에, 나이 들어 낙향한 후 나이든 부모를 봉양하며 살 수 있었고, 부모를 여읜 후에는 각고의 집념 끝에 선친과 증조부의 유고집을 펴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또 어쩌면 그것은 바로 그에게 당연지사 같은 것이었는지도.


■“지역문화 창달 위해 내 한 몸 희생하겠다”


언제인가 필자에게, 장흥 안양면 율산리로 귀향, 해산토굴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 대해 "한승원 선생을 존경하고 매우 부러워한다, 글 쓰는 일 이외의 거의 모든 외적인 일을 초월해 자기세계만 천착하는 그분의 그런 무욕의 초탈한 삶을 나 역시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많이 통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생의 여명기에 접어든 그이지만, 이 말 한 마디는 그의 삶의 철학과 성정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향리에서 가벼이 농사나 지으면서 읽고 싶은 책도 읽고,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부담 없이 찾아가 만나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단조롭지만 그것이 내 성격이요 철학이니만큼 조용히, 말 그대로 無爲의 삶을 살고 싶었고, 해서 될 수 있는 한 사회활동 같은 것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최근, 장흥문화원 원장에 입후보했다.

"공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아주 묻혀 살려고 했는데, 친구들이나 주위에서 공직생활에서 얻은 귀한 문화적 경험이나 문화행정의 노하우를 왜 그냥 묻히려고 하느냐, 며 자꾸 추적대곤했고, 성격상 모질게 자르지 못하며 어찌어찌 해 오다 어거지로 떠밀리다시피 이 자리까지 와 버렸습니다. 물론 아직도 건강상으로 정정하고, 나름의 의기마저 포기해 버릴 수 없다는, 보이지 않은 잠재적인 것들이 배어나와 이 자리까지 떠밀려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여기에다 무엇보다도, 지역의 문화창달을 위해 내가 좀 더 수고하고 봉사할 수 있다는, 공직 때 쌓은 식견과 경험들을 지역을 위해 쏟아 부어야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절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명료한 답은 아니지만, 이해되는 말이다. 주위에서 먼저 자꾸 권면했고, 그것을 확연히 절단시키지 못하다가 결국 자신도, 지역을 위해서 제대로 뭔가 봉사해보겠다는 의욕이 절로 생겨나면서 입지하게 됐다는 말이다.

주위에선 그가 장흥문화원장으로서 능력은 충분히 갖췄다는 평이다. 그를 잘 아는 친구 동료들은 넘치다고 평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장흥 문화계 수장으로서 추진력이나 힘은 뒤지지 않느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점에 대해 김기홍씨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단정해버리고, 자신을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투명하고 정직한 성격이어서, 지금 다소 어지러운 상태인 문화원 풍토를 완전히 일신시키면서 자신의 강점인 다양한 문화적 마인드로 문화원의 위상을 재정립하려고 한다,면서 단단한 의지를 내비쳐 보였다.

문화공보부에 근무하다 어찌해서 교육직으로 이전했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연로한 부친이 갑자기 위독한 지경에 빠진 적이 있어, 가까운 데서 부모님을 지켜야겠다고 생각, 자처해서 교육직으로 이전해 전남대학교 교무과에서 일하게 됐고, 목포대학에서도 근무하다 정년한 것이지요. 광주나 목포에서 매주 주말이면 부산으로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을 돌봤고, 정년 후에는 아예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양친 별세 이후, 혼자서 고향을 지켜오고 있다”고 대답했다. /김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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