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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 정체성을 찾는다(8)>>정자문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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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2.04  00: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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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강과 정자문화

이대흠/시인

아름다운 물빛이 있는 강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정자이다. 탐진강이 온 들을 적시는 장흥도 예외는 아니어서 10여 개의 정자들이 요소 요소에 자리하고 있다. 장동 두룡의 용암정, 장항 호계의 용호정, 지와몰 용반리의 용호정, 부춘정 경호정 독취정 등 이름을 다 열거하기에도 벅찰 정도이다.

가만히 장흥의 정자들을 생각해 본다. 어느 정자가 산꼭대기를 넘보던가. 장흥의 모든 정자는 산(자연)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앉아있다. '지가 여그 조깐 자리하고 앙거도 되겄습니까?'라고 묻는 듯 하다.

탐진강변의 정자들은, 탐진강변의 정자라고 해도 좋고 장흥의 정자라고 해도 좋다. 이상하게도 탐진강변의 모든 정자는 장흥 땅에 있기 때문에 두 표현이 엇갈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자라는 것이 어떤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과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탐진강변의 정자'라는 표현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탐진강변의 정자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탐진강변의 정자들은 물과 바위와 산이 함께 한 곳에 있다. 탐진강의 상류에서부터 내려가면, 바위가 아름다운 곳에는 꼭 정자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꼭 보가 있어서 검푸른 물빛을 볼 수가 있다. 어느 정자도 예외는 아니다.

둘째 어느 정자도 산꼭대기에 있지 않고 중턱에 있다. 정자의 위치가 산꼭대기냐 중턱이냐가 무어 대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하다. 정자가 산 중턱에 있는 이유는 자연과의 공생을 뜻하고 산꼭대기에 있다는 것은 자연을 지배하겠다는 욕구의 표현이다. 탐진의 모든 정자들은 산 중턱에 있는데, 이것은 그 작은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자연(산)에 미안해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 때 나는 환경문제를 고민하면서 인간만 사라지면 된다는 극단의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사실 지상에서 인간만 없다면 자연보호니 뭐니 들먹일 이유가 없다. 그 많은 생물 중에서 쓰레기를 만드는 생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그러니 인간이 없다면 환경문제를 거론할 필요도 없겠지만, 인간이 살아야하기 때문에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세기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게 된 것에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착취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 때마다 인간은 더 오염된 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대두된 것이 환경문제이다. 그리고 환경을 위한다는 사람이 매우 많아진 것도 요즈음의 일이다. 하지만 환경 문제를 생각했을 때, 가장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자연을 지배하겠다는 오만이다.

자연을 지배하겠다는 오만을 버리고 자연을 대하면, 가장 먼저 미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우리가 길을 걷고 음식을 먹고 하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자연에게 빚진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가장 잘 담긴 곳이 탐진강변의 정자들이다. '지가 여그 잠시 머물다 갈랍니다. 산님. 강님.'하는 듯이 중턱에 조심스레 자리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영귀정 상량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옛 사람 思亭 지은 마음을 따랐으니 꽃 하나 돌 하나라도 훼손하면 내 아름다운 자손이 아니다'

셋째 탐진강변의 정자들은 인공으로 정원을 만들지 않았다. 아니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용호정에 가면 괴석들이 몇 개 있고, 사인정이나 부춘정, 용호정에도 몇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하지만 그 정도를 정원이라 부르기에는 궁색하다. 그저 빈터에 누군가가 심어 둔 나무들이 자란 것이지, 작정하고 심은 나무들은 아닌 것이다.

인공 정원이 없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고 본다. 인공으로 정원을 꾸밀 필요가 없는 곳에 정자들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자를 가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이 준 원림들이 더 이상의 정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산 중턱에 정자를 짓는 마음이 깃들었으니 무엇 때문에 바꾸어 꾸미겠는가.

넷째 탐진강변의 모든 정자는 담장이 없다. 담장이 없다는 것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되어 드나든다는 것이다. 드나든다는 것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들에 일하러 나간 농부가 낮잠을 취하러 정자에 가기도 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기 위해 정자에 모여 앉기도 한다. 그래서 탐진강변의 정자들은 마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열린 공간이었다.

그래서 대개의 정자들은 단순히 시문을 읊기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곳은 서당이었고 사당이었으며 쉼터였다. 마을에서 학식이 높은 사람이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치고, 그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논밭을 가는 농부들. 위아래의 구분보다는 '함께'라는 말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다섯째 탐진강변의 정자들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정자들은 문중의 소유이거나, 여러 사람의 것이었다. 개인의 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나 어느 때나 드나들 수가 있었다. 생각해 보라. 어느 누가 불쑥 찾아들지도 모르는 담도 없는 곳에서, 기생첩을 옆에 끼고 술 마시고 노래할 수 있었겠는가.

거기에는 오직 벽오동 가지에 봉황 들 날을 기다리며, 학문에 애쓰고 정진하는 모습만 있었을 것이다. 요즈음 대안 학교라는 것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참고삼아도 좋을 듯하다. -시민의 소리/200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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