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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 정체성을 찾는다(3)>>정자문화①이대흠 시인의 정자기행(2)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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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2.03  21: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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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는 정자에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용호정 가늘길

동백정에서 나와 부산면 소재지 쪽으로 향하여 다리 하나를 지나면, 왼쪽에 조그만 대숲이 나타난다. 대숲에 싸인 흰 건물은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부산동국민학교’이다. 그쯤에서 멈추어 오른쪽 길옆을 보면 ‘지와몰’(용반리)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용호정이 있는 마을이다. 농로로 접어들면, 마을이 지닌 품이 여간 넉넉하지 않다. 초행이라면 마을 사람에게 용호정의 위치를 묻는 것이 좋다. 약간 비탈진 길을 따라 마을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언덕 너머로 이어진 길이 보인다. 그 길로 담배 한 대 참쯤 걸어가면, 길이 왼쪽으로 비암 꼬랑지맹키로 휘어져 들어가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 쉰 발짝 정도 내려가면 용호정이 있다.

언덕 위에서 보아도 정자는 오간데 없고, 강물이 보이는 곳에 이르러도 정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귀한 것은 감추어져 있기 마련이던가. 습기 많은 암반과 괴목들 사이로 난 좁은 길에 들어서야만 정자가 보인다. 그것도 전체가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수줍어서 눈썹이 보일 듯 말 듯 바위 뒤에 숨은 모습이다. 적나라하게 노출된 여배우가 아니라, 창호에 비친 그림자가 아름다운 여인이랄까.


정자를 보면서 어찌 집만 보고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으랴. 풍경과의 어울림, 그리고 거기에 깃든 정신과 사연들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정자가 보이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감안하였을 때, 용호정은 수많은 정자들 중, 하나의 모범답안처럼 느껴진다. 정자에서 보는 탐진강의 검푸른 물결도 그렇지만, 정자 밑으로 쌀쌀 걸어내려 가면, 있는 듯 없는 듯 암벽에 붙어있는 돌담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기념물이 되었을 법한 바위들의 형상이 범상하지 않다. 하지만 슬리퍼나 삐딱구두는 그 길이 사양할 것이므로, 웬만하면 운동화나 맨발로 가야 한다.

정자는 삼대에 걸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자의 주인인 최영택(崔榮澤)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상을 당하자 3년간 온갖 정성을 다하였는데, 어느해 많은 비로 강물이 불어, 성묘를 갈 수 없게 되자, 이 자리에 서서 강 건너에 있는 부친 최수인(崔守麟)의 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다. 어찌 하루이틀이었겠는가. 매일같이 용소 위에 앉아서 건너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효성을 기리어, 셋째 아들인 奎人이 형제들과 힘을 모아 초가정자를 지은 것이 1827년이다.

이후 정자는 1946년에 重修하였는데, 정면과 측면이 각각 2칸씩에 팔작 지붕이다. 가운데에 방을 두고 사방에 마루를 들였다. 내부에는 20여개의 현판이 있다. 귀목과 밤나무를 사용하여 지었다는 정자는, 효심이 깊숙이 밴 탓인지 한겨울에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재질이 재질인지라 칠을 하지 않았어도 좀 먹은 흔적은 없다. 마당에 놓인 괴석들은 그것대로 용의 모습을 닮아있다.

현판의 글씨는 집자된 것이다. 집자 글씨를 볼 때마다 나는 우리 문화의 위대함에 놀라곤 한다. 옛것의 뛰어남을 아끼고 우러르는 마음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새로 쓸수도 있지만, 이미 이전에 더 높은 수준의 작품이 있으므로 그것을 배낀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복사의 의미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좋은 작품에 대해 예의를 갖출 줄 알았던 세계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 같으면, 이전의 것은 그것대로 두고 자신의 글씨로 현판을 달려 하였을 것이다.

앞쪽에 보이는 산은 기역산(騎驛山)이다. 옛날에 장사 하나가 큰 바위를 들고 기역산 위를 걸어갔다고 한다. 그때 장사가 들고 간 바위는 제암산 정상에 있는 제왕바위(상대바위)라고 하는데, 장사가 지나가며 남긴 발자국이 있다는 기역산은, 6.25 전후에는 지리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빨치산들의 길이었다.

▣ "맞치 맞게"

답사를 하다보면, 예기치 않는 사람과 함께일 때가 많다.
이번 답사에는 중학생 두엇이 함께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용호정을 둘러보면서 정자에서만 정자를 보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관광지에 가서 ‘그곳만’ 둘러보고, 그곳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나오기마련이다. 그러나 세상 속에 홀로인 것이 어디 있던가. 내 몸 하나 있기 위하여, 수많은 조상들이 있었듯이, 좋은 건물 하나 있기 위해서는 그것에 어울리는 풍경이 있기 마련이다.

용호정에서 강의 상류쪽으로 눈을 돌리면, 다랑치 논들 너머에 조그마한 모래톱이 있다. 그곳은 내가 용호정을 감상하는 장소로써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또랑 하나 흘러와 탐진강을 만나 이룬 모래톱으로 향했다. 다랑치는 왜 물고기 이름 같을까. 골짝으로 골짝으로 지느러미를 힘차게 치고 올라가는 커다란 물고기같은 다랑치.
어덕밑 응강(응달)진 곳에는 아직껏 녹지 않은 눈이 눈동자를 반짝인다. 아이들의 걸음은 강아지보다 가볍다. 나이 들며 느는 것은 무게 뿐이다. 더 무거워지면 움직일 수 없으리라.

용호정을 둘러싼 나무들은 쭈욱쭉 늘어진 느낌이다. 필력 좋은 서예가가 일필휘지로 한 장의 종이에 한 글자만 남겼는 듯, 나무들은 저마다 혼자서도 완성이다. 여름에는 우거진 것이 넉넉하여 좋고, 가을은 푸른 빛에 점점이 찍힌 붉고 노란 그 색감이 좋고, 겨울이면 비어있는 듯 힘차게 솟구치는 선들이 좋다. 용호정 안의 숲은 계절마다 개미가 있다. 중턱에 부러진 한 그루의 나무는 단순히 자연의 한 현상으로 읽히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용호정의 내력을 말해준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생뚱한 표정으로 질문을 한다.
“왜 이름을 용호정이라고 했어요? 용과 범은 싸우는데…”

녀석은 용호상박이라는 고사성어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나보다. 나는 선뜻 용호정의 한자어가 녀석이 말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 용호정의 한자어는 龍湖亭이므로 거기에는 분명 ‘물 호’ 자가 쓰였지만, 내게 더 중요하게 다가왔던 것은 용과 범이 싸운다는 말이었다.
용과 범은 싸운다. 그것을 용호상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용과 범이 싸우는 것은 상대를 죽이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용은 음의 극치인 물의 상징이고, 호는 양의 극치인 불의 상징이다. 어린 시절 대개의 집에는 용과 범이 싸우는 그림 한점은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家和萬事成’이라는 한자어가 함께 했을 것이다.

어떻게 용과 범이 싸우는 그림으로 집안의 화목을 기원하였을까? 답은 어렵지 않다. 용호상박이라는 단어의 뜻은 싸운다는 의미와 함께 어우러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음의 극치인 용과 양의 극치인 범이 싸운다는 것은, 곧 섹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섹스는 싸움이고 어우러짐이요. 또한 누가 이기고 짐이 없지 않던가.

그래서 과거에 기우제를 지낼 때 용왕에게 빌고나서 호랑이 형상을 한 목조각을 호수에 던져넣는 풍습이 있었다. 용과 범이 만나 한판 싸우고 비 좀 내리게 해 달라고… 이른바 옥수다.
나는 아이의 질문에 늦게서야 대답한다. “보미야. 그건 니가 잘못 알았다. 용호정이라는 이름에 쓰인 ‘호’자는 범을 말하는 호자가 아니라 호수 할 때 호자를 쓴 거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정자 하나에서도 장흥의 넉넉함이 보인다. 담양의 정자들은 강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그런데 장흥의 정자들은 강에 붙어 있다. 강과 산이 ‘마치맞게’ 어우러질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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