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장흥군수는 지난 7월 3일, 민선 4기를 출범하는 군수 취임식에서 민선4기 군정 슬로건으로 “느린 세상 건강한 장흥”을 내세웠다.

‘느린세상’이란 변화무쌍과 속도감만 남은 오늘날 도시민들, 갈수록 척박해져가는 도시민의 삶에서 신선한 청량제 같은 구호이다.


그러나 아직도 개발여지가 많고, 어딜 가나 한가로움과 여유가 넘쳐나는 시골의 농촌에서는 다르다. 아직도 ‘낙후’를 벗어나기 위한 힘든 속도와 경쟁적인 개발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날 김군수가 천명한 민선 4기의 ‘느린 세상’이라는 군정목표에 대해 군민 일각에서는,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느린 세상‘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느냐? 장흥을 영원히 침체시키고 낙후시키겠다는 말이냐”하는 따위의 반론이 만만찮았다.


이날 김군수는, “저성장-고령화 사회의 유망 트랜드는 ‘느림’ 이라고 믿는다, 느림의 미학 속에서 우리 농촌-농협의 무한한 잠재력이 펼쳐질 것이다. 느린 세상은, 단순히 게으른 세상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정의로운 세상이다. 느린 세상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면서 친환경농업, 건강휴양촌, 생태체험의 메카를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느린 세상은, 전통과 문화-예술을 사랑하면서 정이 흐르고, 여유와 나눔이 있는 넉넉한 세상을 의미한다”고 정의, 느린 세상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장흥군정의 목표가 된 ‘느린세상’은, 초고속화되고 급변화된 시류에서 반사적 의미로 급부상한 웰빙(참살이)적 의미인‘느림의 미학’에서 그 의미를 차용해 온 것으로, 게으르고 더디게 발전한다는 등의 사전적 의미‘느리다’의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건강한 장흥’을 강조한 말로서 긍정적인 ‘느린 세상’이라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림의 미학’ 개념으로서 차용해 온 ‘느린 세상’이라는 구호라고 해도, 가난한 장흥군민에게 사치스러운 의미나 다름없는 그 구호의 선택은 다소 엉뚱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또 전국 군 단위 지자체 중에서 아직도 가장 낙후된 고을 중 한 곳으로 재정자립도마저 최하위권이며 지역경제는 갈수록 침체되면서 ‘활력을 잃어가는 장흥군’에서 ‘느린 세상’은 다소 동떨어진 구호가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장 허기를 면해야 할 사람에게 배고품을 면케해 주는 말보다 건강한 삶이니, 정의사회 구현이니 하고 운운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느린 세상’은 관광객을 위한 구호적 군정목표로 그칠 공산이 크다.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로 살면서 ‘느린 세상’을 체험할 수 있는 ‘느린 세상’에 대한 인프라 구축은 물론 마인드가 확실하게 구축되어 있거나 그런 면에서의 큰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앞으로 그런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군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활기이고 활력입니다. 이것은 느린 세상을 추구해서는 절대 나오질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고 지역경기 회복이 우선인데, 느린 세상 가지고 뭐가 됩니까? 더욱 침체되고 낙후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관광개발, 지역개발, 군정방향 모두 지역경제의 부흥과 경기활력 회복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한 주민의 말이다.

또 다른 주민들의 말이다.

“느린 세상, 참 좋은 말입니다. 히트 칠 수 있는 구홉니다. 사실 장흥만 아니고, 농촌 어디를 가든 도시 사람들에게는 다 느린 세상인데 장흥이 선점한 것 아닙니까?”

“장흥 가면, 실제로 느린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말이라도 차가 다니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 전용보도가 여기저기 만들어져야 합니다. 탐진천변에 조랑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지면 더욱 좋지요. 토요시장에 가면 수레따위 등 느리게 탈 것도 경험할 수 있고,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로 느린 세상을 체험할 할 수 있는 공간이나 이벤트들이 많아지면, 장흥은 말 그대로 전국에서 가장 느린 세상으로 이름이 날 것이고 관광객들은 더 많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관광산업 가지고 장흥이 부강한 장흥이 되겠습니까?”


‘느린 세상’, 이것은 사실 역사적으로 장흥군이 전용했던 용어였다. ‘느린 세상’은 문명의 이기가 전혀 필요 없던 그 선사시대의 원시적 세상에서, 장흥이 한반도에서 가장 경쟁적으로 찬란하게 소유했던 개념이었다.

유독 높은 산들이 많고, 땅은 기름지고, 호남의 3대강이라는 탐진강이 흐르고, 남녘의 바다가 지척에서 철썩거리고, 맑은 바람과 따듯한 공기가 원시적 삶을 더없이 윤택하게 해주던 그 선사 시절이었다. 그때 장흥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덕지(德地)로 축복받은 땅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대의 유물인 고인돌 분포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해 있다는 데서 확실하게 증명되고 있다.


그 원시 때 장흥의 그 ‘느린 세상’을 증언하고 있는 고인돌에 지금까지 ‘한낱 돌덩일뿐’이라며 아주 무관심해 온 장흥군이었다.

고인돌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도 관심없어하며 지나치고 말았던 장흥군이었다.

당초 3만평 규모의 유치수몰지역 고인돌공원마저 1천~3천평으로 대폭 축소해 형식적으로 꾸미려 하고 있는 곳도 장흥군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새삼 ‘고인돌 세상’과 동격이었던 그 ‘느린 세상’을 상품화의 구호로서 자랑스럽게 외치고 나온다. 그 ‘느린 세상’의 구호가 사실은 허구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제382호 2006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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