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 안양면과 보성군 웅치면, 보성군 회천면 경계지점에 솟아있는 삼비산(667,5m)은 백두대간의 영취산(여수, 510m)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이 서남쪽으로 달리다가 제암산, 사자산에 이어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장수리 뒷산인 골치산(骨峙山)에 이어 신촌리 동북쪽으로 높이 솟은 장흥의 명산이다.


삼비산은 장흥 관내에서 제암산(807m), 천관산(723.1m) 다음의 높은 산이다. 상제(上帝)의 비(妃) 셋이 모여 놀았다는 설화에서 그 이름을 따 온 삼비산(三妃山)은 일명, 하늘의 황비가 내려왔다고 해서 '천비산(天妃山)',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정상부 폭포)에서 황비가 놀았다고 해서 '샘비산', 또는 '천비산(泉妃山), 수많은 날을 신비한 안개로 뒤덮인다고 해서 '현무산(玄霧山)'으로 불려 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삼비산으로 통일되어 불려지고 있다.(삼비산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신촌리에서는 지금도 '샘비'로 불려 오고 있다).


산 정상부의 완만한 능선에는 무려 18만여 평의 구릉능선이 펼쳐지고, 이 능선에는 가을이면 온통 억새밭으로, 4월 말이면 철쭉 화원으로 변해 그 일대가 가경(佳景)을 이룬 데다, 삼비산 능선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득량만의 풍경이 또 하나의 절경이어서 해가 거듭될수록 외지에서 삼비산을 찾는 등산객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 산의 정상부는 삼비봉이고 그 줄기에 장수리 쪽으로는 회룡봉, 율산쪽으로는 한덕산, 신촌쪽으로는 투구봉, 수락쪽으로는 상제봉, 매봉산 등을 거느린다. 그리고 이 산줄기들이 품안에 거느리고 있는 마을들이 이른바 장수리, 학송리, 신촌리, 수락리, 수문리, 용곡리, 율산리, 덕산리, 사촌리 등 9개 마을이다. 그러므로 이들 마을과 주민들의 역사와 정서는 삼비산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오래전부터 이 삼비산 줄기가 서북쪽으로 뻗어내리면서 장수리와 학송리를 낳았고, 다시 서남쪽으로 이어지면서 덕산마을과 율산리, 사촌리를 낳았으며, 남쪽으로 뻗어내리면서 신촌리, 그라고 동남쪽으로 뻗치면서 수락리 그리고 용곡리와 수문리를 탄생시켰다. 옛부터 이 산에서 이곳 주민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불을 지필 땔감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한국 전란 이전까지만 해도 정상부근인 신촌리 북쪽 산기슭엔 늑대, 호랑이가 출몰하기도 했다.


지난 1989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장흥군 최초의 지표조사 자료인 <장흥군의 문화유적>과 그 이전 몇몇 고고학계의 자료에 따르면, 안양면 전체에 선사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총 31개군에 347여기가 조사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삼비산과 관련된 고인돌로는 장수리에 80여기, 신촌리에 26기, 수락리에 45기 등 총 150여기가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 발표되었다.


삼비산 줄기에 터를 잡은 9개 마을주민들의 초등학교인 안양동초등학교 교가에도 삼비산은 등장된다. 안양동초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개교한 학교인데, 삼비산은 당시에 현무산으로 불려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종상씨 작사·작곡인 이 교가 가사는 "명소(名所)라 아름다운 호남의 일단(一端) / 현무산(玄霧山:삼비산) 기슭에 옛 거룩한 자취 / 득량의 넓은 바다 우리의 기상 / 의리에 굳세자고 맹세한 우리 / 길이길이 빛내자 안양동초교".


이처럼 삼비산은 인근지 주민들과는 선사시대부터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샘비산, 삼비산을 일림산으로 부르라 한다.

이는, 일제강점기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이름 대신에 일본식 이름을 지어 쓰도록 강요했던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김씨는 가네야마(金山)로 이씨는 리노이에(李家)로 백씨는 시라카와(白川) 등으로 부르라 했던, 그리하여 우리의 민족혼과 역사를 말사하려 한 일본인들의 작태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장흥 일림산'으로 부르면 될 것 아니냐. 문패만 바꿔 단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림산의 개명 이면에는 당초 보성산인 626.8m 일림산의 주봉의 이름으로서 일림산이므로, 행적구역으로는 장흥에 속하지만 역사적인 연고로 '보성산 일림산'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의견에 동조하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일림산으로 고착되면 우리는 영원히 삼비산을 그들에게 빼앗기고, 삼비산 지역민들의 혼과 역사마저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이는 실로 장흥군민이 자존과 관련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왜 우리의 이름인 삼비산을 두고 보성이름인, 보성사람들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삼비산 이름 찾기에 전 장흥군민이 나서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제383호 2006년 8월 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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