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哭碧巖大長老 벽암 대장로께 곡하다.

大夢中經八十秋 큰 꿈꾸던 도중에 여든 자셨으니
年光流似水東流 세월은 동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빠르다.
一朝有雀穿瓶縠 하루아침에 참새는 항아리 씌운 비단 뚫으니
半夜何人負壑舟 한밤중 어떤 사람이 골짝 배 등에 졌는가.
幽谷宿雲寒淰淰 깊은 계곡 머문 구름 차갑게 흩어지자
隔林飢鳥亂啾啾 건너편 숲 굶주린 새 제멋대로 지저귄다.
歸根葉落來無口 말없이 떨어진 잎사귀 뿌리로 돌아가니
遙望新州不勝愁 머나먼 신주 바라보자 시름 가눌 길 없구나.

注)
雀穿瓶縠(작천병곡) - 사람의 몸이 죽어서 혼백(魂魄)이 이미 떠나간 것을 말한다. 《법구경(法句經)》에 ‶정신이 형신 안에 거처하는 것은 참새가 병 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병이 깨져 버리면 참새는 날아가 버린다.″ 하였으며 《대지도론(大智度論)》에는 ‶새가 날아와서 병 속으로 들어가니, 비단 가지고 병 주둥이를 막았네. 비단이 뚫어져 새가 날아가 버리자, 신명도 그에

▲고흥 능가사 사천왕상

따라 달아나누나.〔鳥來入甁中 羅縠掩甁口 縠穿鳥飛去 神明隨業去〕″ 하였다.
負壑舟(부학주) -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골짜기에 배를 감추고 그 산을 다시 못 속에 감추어도 밤중에 힘센 자가 등에 지고 달아나도 어리석은 사람은 알아채지 못한다.〔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 有力者 負之而走 昧者不知也〕″ 하였는데 여기서는 깊이 숨는다는 뜻으로 죽음을 의미한다.
新州(신주) - ⟦전등본편(傳燈本篇)⟧에서 "제6조 혜능선사의 속성은 노(盧)씨요 그 조상은 범양(范陽) 사람이다.  아버지 행도(行瑫)는 무덕(武德) 연간에 남해의 신주(新州)로 좌천되어 호적을 정했다" 고 하였다.
 "나는 신주(新州)로 돌아가련다〔吾欲歸新州〕"라는 것은 근본과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뜻이다.

◇碧巖大長老는 碧巖大師(1575~1660)이다.
지리산 부휴선수의 제자이다. 임진·정유란 때 해전에 참여했고 인조2년(1624) 조정에서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팔도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시켰다. 인조10년(1632)에는 화엄사를 중수하여 대 총림으로 만들었고 인조18년(1640) 봄에는 쌍계사를 재정비했다. 문하의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선법을 크게 전파하여 침체된 조선불교를 일으켜 세웠고 전남 동부지역 순천 조계산 송광사 부휴선수 석문(釋門)을 기반으로 전남 서부지역 해남 두륜산 대둔사 청허서산의 문중과 쌍벽을 이루었다. 세수는 86세이고 법랍은 72년이다.

⦁上金相國 時謫靈岩 김 상국께 올리다. 
   영암에 귀양 와 있을 때

屈子唯存憂國志 굴원 우국의 뜻은 아직도 여전하니 
楚王何事放湘潭 초왕은 무슨 일로 상담으로 쫓아냈는가.
雄材斗酒詩篇百 뛰어난 인재 한말 술에 시 백편이고
碩德當年吐握三 그 당시 석덕은 세 번 토포악발 했단다.
春樹幾回思渭北 봄날 위수 북쪽 나무 몇 번 생각나나
秋風誰料對江南 강남 가을바람 마주칠 줄 누가 알았으랴.
他時驛馬星流日 후일 역마가 별처럼 달리는 때오거든
須訪爐峯白石庵 반드시 방장산 향로봉 백석암 찾아다오.

注)
吐握 - 토포악발(吐哺握髮)은 주공이 천하의 인재를 선발하는데 전념하여 ‶머리를 한 번 감는 사이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나갔고, 밥 한 끼를 먹는 사이 세 번이나 입 속의 음식을 뱉어냈다.〔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라는 고사를 가리킨다.
春樹 -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그리워할 때 쓰는 표현이다. 두보(杜甫) 시에 ‶내가 있는 위수(渭水) 북쪽엔 봄날의 나무, 그대 있는 장강(長江) 동쪽엔 저녁의 구름. 어느 때나 한 동이 술로 서로 만나서, 다시 한 번 글을 함께 자세히 논해 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는 시구에서 유래한다. 

⦁附次韵 文谷 문곡 김수항의 차운을 붙이다.

覉人蹤迹風飄葉 귀양객 종적은 바람에 흩날리는 이파리
老釋心期月印潭 노장의 마음은 달빛 찍힌 연못을 기약한다.
鵬舍相逢知有數 적소 상봉은 운수가 있음을 아노니
虎溪何必笑成三 어찌 호계 건너다 세 사람 웃을 필요 있나.
重興古寺思千里 일천리 삼각산 중흥사 옛 절집 생각나고
方丈群峯跨兩南 방장산 많은 봉우리는 영호남에 걸터앉았다.
携贈瘦笻無處試 선물한 마른 지팡이 시험할 데가 없으니
且容孤夢到禪庵 우선 혼자 사는 선암 가는데 쓰이기 바란다.

注)
覉人(기인) - 귀양객. 나그네.
老釋(노석) - 노승. 노장.
鵬舍(붕사) - 유배지.
重興古寺 - 한양 북한산성 안에 있던 重興寺. 
方丈 - 방장산(方丈山).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우리나라 지리산(智異山)의 별칭이다.

역자 注)
당시 좌의정을 지낸 文谷 金壽恒(1629~1689)은 47세(숙종1년1675)되던 7월에 전라도 영암으로 원찬(遠竄)되어 50세(숙종4년1678) 9월까지 3년 정도 귀양 살다 江原道 鐵原으로 양이(量移) 되었다.
이 기간에 性聰 上人이 낭주(朗州)의 배소로 찾아가 근체시 한 편과 철쭉 지팡이 한 자루를 선물하고는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돌아갔다. 

⦁義諶上人作詩問方丈山景仍次其韵以酧
풍담 의심 상인이 방장산 풍경을 시로 지어 보내며 안부를 묻기에 그 시운에 차운하여 수답하다.

方壼逈出碧虛中 파란하늘에 방장산 우뚝 빼어나니
翠色千峯更萬峯 검푸른 빛 천봉우리에 다시 만 봉이라.
丹桂影邊僧入㝎 계수 그림자 가에 선승 입정 들고
白雲臺畔客休笻 백운대 주위에는 길손 지팡이 서 있다.
溪流決決箏琴響 콸콸대는 계곡물 아쟁 거문고 소리고
岩壁層層造化工 층층 암벽은 조물주가 솜씨 부린 거라.
欲寫名區無限興 무한한 흥취에 명승 읊고 싶지만
廢文才拙手還慵 글 내쳐 재주 졸렬하고 손도 게으르다.

◇義諶(의심) - 풍담 의심楓潭義諶(선조25년1592∼현종6년1665) 
속성은 유씨(柳氏). 호는 풍담(楓潭). 경기도 김포 출신. 나이 16살에 출가하여 성순(性淳)대사에게 머리를 깎고 원철(圓澈)대사에게서 계(戒)를 받았으며 편양언기(鞭羊彦機)대사를 알현하고 법(法)을 전수했다. 천관산에 있는 원철(圓澈)을 찾아가서 사집(四集)을 배워 불경의 대의를 파악하였다. 첫 번째 해남 대둔사 13대종사이다.
서산휴정의 문파에서 가장 성대한 문도를 거느린 해남 대둔사 문중을 개창해 종지(宗旨)를 선양하자 각각 일가를 이루었다.

注)
方壼(방호) - 신선이 살고 있다는 곳. 방장산(方丈山). 지리산(智異山).

⦁贈行脚僧 행각승에게 주다.

水萬山千得得行 천만 산수를 득의양양 가노라니
七升衫重一身輕 거친 베적삼 무거우나 한 몸은 가볍구나.
善財昔日叅知識 옛적 선재동자가 선지식 참례하듯
不覺南遊百十城 어느새 남쪽 유람 백십 개 성 지나갔네. 

⦁題松廣寺水閣 송광사 수각에 쓰다.

湖山千里倦遊情 호남 천 리 길은 객 마음 지겹고
野寺秋來樹竹淸 들녘 절은 가을에 묻혀 대숲은 정갈하다.
高閣晩憑踈雨過 해 저문 고각에 기대자 가랑비 지나고
石溪流水有新聲 석계에 흐르는 물소리는 새롭구나.

⦁漁父 어부

穿魚換酒渡頭沙 나루터 물가에서 고기 꿰어 술과 바꾸고는
歸臥扁舟醉放歌 작은 배로 돌아와 쉬며 취해 노래 부르는구나.
楓葉荻花秋色老 단풍잎과 갈대꽃엔 가을빛이 무르익고
一江寒雨滿漁蓑 온 강의 차가운 비 어부 도롱이에 가득하네.

⦁題黃嶺蘭若 지리산 황령암에 쓰다.

古寺無人到 옛 절은 인적도 없으니
空山晝掩關 텅 빈 산은 대낮에도 문 닫아 걸었다.
茗煎春雨細 차 달이자 봄비 보슬보슬 내리고
林暝宿禽還 숲 어둑해지자 자던 새 돌아온다.
一逕松杉下 솔 삼나무 아래로 작은 길 하나 나 있고
千峯凡度間 수많은 산은 세속과 출세간을 가로막고 있다.
庭前翠栢樹 뜰 앞 푸른 잣나무는
眞介祖師顏 진실로 조사의 얼굴이라.

⦁贈俗僧 속된 중에게 주다.

曾甞世味覺醎酸 일찍 세상맛 보아 짠맛 신맛 알고
萬物都將一馬看 한 마리 말로 온갖 만물 구경했다네.
千嶂樹雲開水墨 온 산 나무구름은 수묵화 펼치고
一區泉石稱盤桓 한 구간 자연은 배회하기 어울려라.
海松滿壑晴疑雨 곰솔 가득한 골짜기 맑아도 비 온 듯하고
溪榭含風夏亦寒 시내 정자 바람결에 여름에도 서늘하네.
堪笑勞生成底事 고달픈 삶에서 이룬 일 우습기만하고
世間無地不波瀾 세간에는 파란 없는 곳이 없음을 알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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