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수필가

삶이란 끊임없는 변화와 지속적인 진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변화와 혼돈을 맞딱드리며, 이것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는 것으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순간은 과거의 나와 이별하고, 삶의 기회를 넓히는 변곡점이 된다. 좀 익숙한 것과 생소한 것, 지난간 일과 새로운 일,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갈수록 고령화 되고 있다. 따라서 고령화는 개인의 변화를 개별적으로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는,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다. 

현재 연금 조달 문제와 가입 연령 등 다양한 수준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안락사, 존엄사, 간호·양로원과 요양원의 지원은 재정적 윤리적 관점에서 해결이 필요한 정치적 과제다. 

현역시절 일 만이 활력의 원천이었다면, 은퇴후 노인들은 다른 취미의 풍선을 띠우고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또 이때가 되면 가족 사이에 암같은 질병이 등장 화두가 될테고, 주변에서 들리는 부고 소식도 많아져 자신까지 위협받고 침울해 진다.

특히 내게 중요한 사람의 상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고 깡마르는 내 삶과 외로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뿐만아니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급변하는 사회는 나를 압박하며 가혹하게 다가온다.


사회적 발전의 속도에 적응하려니 기력이 딸리고 거기다 과거에 배운 것은 쓸모 없어진지 오래고 이래 저래 젊은이들로부터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받을 때마다
속절없이 무력감에 서글프다.

이제 내가 가진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들은 관심밖의 퇴물로 취급받고 한때는  하찮게 여겼던 일들조차 막상 닥치면 움찔하며 두렵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놀랄때 부모님의 무릎에서 숨을 고르듯, 노인들은 과거에 자신이 중하게 여기던 사람 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조차 대부분 죽고 내 곁이 썰렁할 때 위기를 감지한다.

어찌됐건 과거는 지나갔고 우리는 현실을 살아야 한다. 과거의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리며 힘을 얻을수도 있지만 과거가 현재의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해 버리면 그것을 다루는 것도 힘들어진다. 과거는 현재의 사건을 잘헤쳐 나가는 기쁨과 위로의 원천으로 만족하면 된다. 

어쩌면 노화는 지금까지 해온 세상에 관한 생각과 외부적 요인을 놓아두는 과정이다. 더 작은집으로 이사하거나 양로원에 들어갈때는 가구나 집기 등 애정을 가졌던 소유물들과도 작별해야 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놓아주는 것은 운신의 폭을 좁히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아갈수 있다는 좋은 면도 있다. 노화의 중점 과제중 하나는 ‘이별하고 놓아주는 것’일지 모른다. 이와 동시에 자연과도 더욱 친숙하며 삶이 선사하는 좋은 혜택속에 변함없이 머무르자.

어떤 관점에서 보면 노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 어느 가정에선 놀랍게도 부모님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평화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 있다. 평소 엄격한 성품과 폭력으로 무서운 아버지가 갑자기 무력해지거나 냉정하고 쌀쌀맞은 어머니가 고마움과 애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해묵은 적대감과 원한은 위력이 시들어지고 화해와 용서를 할 여유가 생긴다. 

인생에서 미완으로 남겨진 부분을 인정하고 원래 삶은 그런것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인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것은 노년의 지혜이자 여유로워지는 열쇠이며 젊은이들에게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의 창을 열게 한다.

노인일수록 담백(淡白)하게 사는 습관을 길들여야 한다. 담(淡)이라는 글자는 삼수변에 불화(火) 두개가 얹혀있다. 물은 맑고 깨끗하고 싱겁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타오르는 불길을 물로 끄는 형상이다.

내 마음에 타오르는 불을 물로 끄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리라. 말은 가능한 줄이되 미소를 자주 짓고, 손에는 항상 책을 쥔 노인에게서 우리는 그 고상한 인격에 절로 고개를 숙인다. 이런 생각들은 삶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놓친것에 집착하지 않을 채비를 만들어 준다. 

「우리에겐 두 개의 인생이 있다. 두 번째 인생은 당신이 가진 인생이 단 하나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작된다」는 말은 삶의 끝에 고뇌하며 현재를 강렬하게 즐길 힘과 욕망이 생길때에야 비로소 삶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하여 또 나이 한 살 불어나는 선명한 경계선인 대명절 설날 아침 후한 밥상을 대할때마다 노인들의 심경은 다음해를 의식하며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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