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도 십 년을 더 자세히 가르쳐 주기를 청하고 수레를 내어 스스로 가기를 도모하며 한 구절로 사람을 흥기시켜 감히 선각자 흉내를 냈습니다. 
섬김이 큼을 유통하면 비록 인을 행해야 할 때에는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는다(當仁不讓於師)고 하나 미력(微力)으로 책임을 짊어지고 요의(了義, 불법의 이치를 완전하게 설명한 것)를 해결하기 어려울까 두려웠지만 다행히도 반가운 눈빛 반면식(半面識)을 만나 화엄경을 가까이 할 수 있었습니다.
한자리에 앉아 함께 경전을 강론했고 송사(松社, 松廣寺 修禪社)에서 하안거 결제 때는 홰나무 그늘이 땅에 가득 질 때까지 산보하며 달빛(月華)에 정신을 유쾌하게 하고 창가에서 선리(禪理)를 담소하다 행여 침소를 잃을까 두려웠습니다. 강과 땅이 비옥한(河閏土肥) 아홉 마을에서 어찌 목욕하는 은혜가 없겠으며 넓고 큰 집 일천간의 가옥(帲幪)에 의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대로 푸성귀나 잡풀을 캐서 경거(瓊琚, 아름다운 詩文)에 보답하듯이 백설곡(白雪曲)과 양춘곡(陽春曲)을 지어 나를 알아주는 벗(知音)을 위하여 곡을 바치나니 야광명월(夜光明月, 夜光珠와 明月珠. 문장솜씨)이 어찌 어둡다고 타인에게 주겠습니까.

◆鳳岬寺雕塑千佛勸文
-栢庵性聰(1631~1700)

吾聞易之爲敎也 必立象以盡意 臻易之奧者 必忘象以明心 象不立則意不盡 象不忘則心不明故 未有不由象而入 亦未有不忘象而得者也 用觀吾敎之設肖像 亦若是矣 三世如來 十方諸佛 各自照玉毫 映金山於菡蓞花王之座 而不得齊瞻並覩 徒勤翹企之想 於怳惚杳邈之中 未若幻衆聖之儀容 儼然咸臨于一堂 使吾人造其堂宇 拜手禮足而作 一一歷數而指之曰 此某佛也 彼某佛也 稱誦其十號 則罔不終登覺岸 齊成佛道也 經曰一稱南無佛 皆已成佛 况稱揚誦說之 至於數五百之多而不已乎 然則像設之作 不得不已者也 盖像者 非眞也 因其眞而設像 像不外乎眞 籍其像而見眞 眞本無諸像 像設之敎 不亦大乎 玆某上人 準擬雕塑衆聖儀像乎 本寺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 以至於千佛而後 已必與衆檀共結此勝緣 何吾上人之苦心矢願 如是之廣且大也 夫造像功德 備載大藏 而衆人之所稔聞故 玆不贅及 若乃助緣隨喜而禮瞻者 倘因假相 以契心眞 至於眞假俱忘之域 則徑登道岸 福慧兩足 爲世所尊 豈讓千如來哉 幸毋忽諸

 출전 <栢庵集>下

◆鳳岬寺雕塑千佛勸文 봉갑사 천불을 조소하는 권선문

나는 주역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象)을 세워 뜻을 다해야 하고 주역이 오묘함에 이르는 것은 반드시 상(象)을 잊고 마음을 밝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상(象)을 세우지 않으면 뜻을 다할 수 없고 상(象)을 잊지 않으면 마음이 밝아지지 않기 때문에 상(象)을 말미암지 않고서 들어가는 것은 있지 않고 또한 상(象)을 잊지 않고서 얻는 것도 있지 않습니다.
우리 불교에서 초상(肖像)을 설치하는 것을 보면 또한 이와 같습니다. 
삼세의 여래와 시방의 여러 부처께서 각자 옥호의 광명에 의거(依據)하여 연꽃 봉우리(菡蓞, 함담) 화왕(花王)의 자리에서 금산(金山, 佛身)을 비추지만 모두 우러러보고 나란히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황홀하고 아득한 가운데 지성스럽게 발돋움하여 상상하는 것도 헛된 중생(幻衆生)과 성인(聖人)들의 위의와 모습이 분명하게 모두 한 불당에 계신 것만은 같지 않습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그 당우를 조성하여 두 손으로 절하고서 부처님에게 예를 갖추고 하나하나 세어 가리키기를 이것은 아무개 부처이고 저것은 아무개 부처라고 합니다. 
여래의 열 가지 명호를 칭송하면 끝내 깨달음의 피안에 올라 나란히 불도를 이루지 않은 이가 없을 것입니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나무불(南無佛)을 한 번 부르면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룬다.”고 하는데 하물며 칭송하고 찬양하며 외우고 말하는 것이 오백의 많음을 헤아리는 데서 그치지 않음에 이른데 서이겠습니까. 
그렇다면 불상(佛像)을 설치하는 작업은 부득이 해서 그만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개 상(像)이라는 것은 진(眞)이 아니지만 그 진(眞)으로 인해서 상(像)을 설치하기 때문에 상(像)은 진(眞)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 상(像)에 의지해서 진(眞)을 보며 진(眞)은 본래 여러 상(諸像)이 없으니 상(像)이 베푸는 가르침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이에 아무개 상인(上人)은 여러 성인의 위의와 형상을 견주어 흉내 내어 조소(雕塑)하고자 했습니다. 
본사(本寺)에서는 일불이불삼사오불이 아니라 천불에 이른 이후에는 이미 반드시 많은 시주자(施主者, 檀越)와 더불어 함께 이 수승한 인연을 맺어야 하는데 어떻게 우리 상인이 고심하여 맹세하는 발원이 이와 같이 넓고도 또 큰 것입니까. 
저 불상을 조성하는 공덕은 대장경에 갖추어 실려 있어서 여러 사람이 자세하게 들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덧붙여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마침내 인연을 도와 수희심(隨喜心)을 일으켜서 우러러 보는 것은 혹 가상(假相)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맞는 진상(眞相)을 가지고 진상과 가상을 모두 잊는 영역에 이르게 된다면 깨달음의 언덕에 금방 올라서 복과 지혜가 모두 구족하여 세상에 존귀한 사람이 될 것이니 이 어찌 일천 여래에게 사양하겠습니까. 소홀히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역자 注)
백제시대에 창건된 절로 全南에는 ‘湖南三岬’이라고 하여 靈光의 佛岬寺, 靈巖의 道岬寺, 寶城의 鳳岬寺가 있다.
백제 枕流王 元年(384년) 印度에서 건너온 마라난타 존자가 영광 母岳山 자락에 불갑사를 세웠고, 신라에 불교를 최초로 전한 아도 화상이 백제에 와서 보성 天鳳山 자락에 봉갑사를 세웠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전남 영암 月出山에 도갑사를 創建함으로써 호남 삼갑湖南三岬이 되었다.

◆백암 성총 대사 시문
-백암 성총(1631~1700)

▶送天風山人應和歸山 
천풍산 사람 응화 선자(禪子)가 참선하려고 산으로 돌아가자 전송하다.

海岳殘秋雨 
바다 산 가을비 침노하자
天風落木時 
천풍산은 낙엽 우수수 진다.
送君歸入定 
그대 전송하면 입정에 들겠지
寒月滿天池 
차가운 달 바다에 가득하다.

注)
天風山 - 장흥부 천관산의 옛 이름이다.
落木 - 낙엽. 잎이 떨어진 나무. 古城落木疎.
入定 - 삼업(三業)을 그치게 하고자 선정(禪定)에 들어가다.
天池(천지) - 바다의 별칭. 

▶天風樓望海 천관사 천풍루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野濶烟迷樹 
너른 들 연기에 수풀 아련하고
雲收海接天 
구름 걷힌 바다는 하늘에 닿았다.
倚欄遙騪目 
난간에 기대 원경 눈여겨보자
詩思入蒼然 
시상은 고색창연한 마음 더한다.

注)
天風樓 - 천관사 정문 종각 바로 앞쪽에 있었다.
영조23년(정묘1747) 봄 천풍루 화재로 종각 정문과 香積殿·淸風寮‧明月寮‧禪堂과 마구간이 연소되었는데 전각이 70여 간이나 되었고 크고 작은 여러 북과 雲版(운판) 및 大鐘과 飯頭(반두‧주방 간) 그리고 大槽(대조‧큰 구유) 二隻(이척)도 아울러 타버렸다.
<支提(天冠)誌 P84>
蒼然(창연) - 고색창연(古色蒼然). 오랜 세월이 쌓여 옛날의 정취가 자연스럽게 도드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물건이 오래되어 옛 빛이 저절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 

▶調應和禪子 응화 선자에게 화답하다.

寒蟲何苦咽寒更 
차가운 밤 벌레소리 너무 구슬프다
兩耳聞來轉不平 
두 귀에 들려오니 맘 더 편치 못하다.
那似紅殘綠暗日 
꽃 지면 녹음 무성했던 날 같을까
好鸎啼送兩三聲 
아름다운 꾀꼬리는 두세 번 울음 운다.

▲관산 천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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