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楩楠聳幽壑。絕殊樗櫟之散材。鏌鎁晦豊城。豈比鉛刀之鈍器。故以入魯班之大手。繩削任其棟樑。遇吳士之愽知寃氣銷於牛斗。異物不虗弃。偉人亦如斯。大師道行孤高。松風水月。未足比其淸華。神資爽拔。仙露明珠。詎能方其朗潤。幼奉趍庭之訓。閱三傳五經。夙負超世之才。等百世千古。是知鴻鵠未成羽。早抱凌雲之心。菸菟未燥毛。先有食牛之氣。乃者金園慕道。剪黑髮而染素衣。玉鏡澄心。淬法刃而燃慧炬 道德之器無缺。人天之敬何慚。逈秀千年。追馬龍而絕後。孤標一世。駕澄什而光前。但以澆俗移今。聖路堙而未闢。淳風替古。長夜昏而不晨。况復妙道虗玄。碧漢高而莫測。眞源淨淥。滄海濶而無津。是用蠢蠢凡愚。爭小黠之利口區區庸鄙。笑大音之稀聲。則何異鷽鳩槍楡枋。誚壯圖之九萬。蜘蛛羅枳棘。擬扶桑之千尋。然而河漢之流。非一塊之能塞。 鄧林之木。豈集刃之可除。每自觀古人。切爲法之心。𨈬或亡也。愧後生無可畏之行。顏必厚焉。屬以江左管夷吾之存。余旣親見。齊國樂正子之用。民所喜聞。香壇推主盟。遠近有來蘓之望。渚宮許禪伯。道俗約歸投之誠。於是寶筏橫津。極苦海之沉溺。金鎞刮膜。示妙嚴之康莊。光耀不已多乎。遺風猶有存者爾。其愽涉游刄。無愧彌天。捷辯洪機。何慚明覺。加以詞林玉樹。驚互舚舌。筆鋒龍泉。新若發硎。懷素獨步之傑。未可比肩。皎然絕世之才。猶堪捧駕。若余者賦性甚魯。見賢思齊。深虞畫虎之未成。切慕藏龜之無用。是以山行六七里。惟存竹杖芒鞋。芧茨八九椽。徒自飢飯困眠。物我䨥遣。岩猿共松鶴同群。榮辱俱忘。靑山與紫陌齊致。旣而派分涇渭。肯隨人而桎梏。味殊酸醎。見與世而枘鑿。然而十年請益。圖發軫而自行。一句興人。敢傚嚬於先覺。流通事大。雖不讓乎當仁。荷擔力微。恐難決乎了義。幸以靑眸半面。傾盖華嚴。黃卷連床。結夏松社。以至槐陰。滿地散步。怡神月華。臨𤗉談理。忘寢所幸。河閏九里。豈無沐浴之恩。厦廣千間。可得帡幪之庇。聊採蔬筍。以報瓊琚。白雪陽春。爲知音而獻曲。夜光明月。豈以暗而投人。


출전 ⟦栢庵集⟧下

注)
樗櫟(저력) - 가죽나무와 떡갈나무의 合稱으로 크기만 할 뿐 아무 쓸모가 없어서 어떤 목수도 돌아보지 않는 나무라는 뜻의 겸사이다. 
鏌鎁(막야) - 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간장(干將)이 만든 명검(名劍)의 이름이다.
豊城(풍성) - 풍성(豐城) 땅에 묻힌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밤마다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를 발산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鉛刀(연도) - 연도(鉛刀)는 납으로 만든 무딘 칼이라는 뜻으로 우둔하고 무능함을 비유하는 겸사로 쓰인다. 후한 반초의 상소문에 “신이 대한의 위엄을 받듦에 있어서 무딘 칼이라도 한번 써 볼 수 없겠습니까.〔臣奉大漢之威 而無鉛刀一割之用乎〕”라는 말이 나온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魯班(노반) - 수(倕)는 고대 교장(巧匠)의 이름이다. 요(堯) 임금의 부름을 받고 백공(百工)의 우두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공수라 칭했다 한다. 공수(公輸), 공수반(公輸班) 혹은 노반(魯班)이라고도 한다.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공수가 줄을 그으면 그림쇠와 곱자를 쓴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은 줄을 긋는 재료와 하나가 되어 사심으로 분별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전일해서 막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工倕旋而蓋規矩 指與物化而不以心稽 故其靈臺一而不桎〕”라는 말이 나온다.
澄什(징집) - 晉나라 고승 불도징(佛圖澄)과 구마라집(鳩摩羅什)을 병칭(竝稱)했다.
槍楡枋(창유방) - 유방(楡枋)은 느릅나무와 박달나무를 가리킨다.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이르려 한다는 것은 곧 봉황(鳳凰)이나 붕새(鵬) 같은 큰 새에 비하여 아주 자잘한 뭇 새들을 비유한 것이다.
鄧林(등림) - 좋은 재목으로 가득하다는 전설상의 숲이다.
江左管夷吾之存 - 강좌에 관이오가 있어서 안정되었다. 관이오는 춘추 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패업(霸業)을 이루게 한 관중(管仲)을 가리킨다. 이오(夷吾)는 관중의 자(字)이다. 
半面識 - 잠깐 만난 일이 있었는데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일.

❍答枕肱軒啓 침굉헌에게 답하여 올리는 계

아름드리나무(楩楠)가 깊숙한 골짜기에 솟아 있으니 저력(樗櫟 )의 쓸모없는 재목과는 전혀 다르고 보배로운 칼(鏌鎁, 막야)은 풍성(豐城)에서 빛을 감추고 있으니 어찌 무딘 칼(鉛刀, 연도)의 노둔한 재주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조계산 선암사

그러므로 노반(魯班)의 훌륭한 솜씨로 법도에 맞게 큰 기둥을 자르고 오사(吳士)의 넓은 지혜를 만나 원망하는 기운은 우·두성(牛斗星)에서 흩어졌습니다. 
다른 사물(異物)을 헛되이 버리지 않으시니 위대한 사람은 또한 이와 같습니다. 
대사의 불도 수행은 고고(孤高)해서 소나무에 부는 바람이나 물속에 비치는 달빛은 그대의 청아하고 아름다운 성품과 비교하기에 부족하고 타고난 자질은 시원하고 빼어나서 신선의 이슬과 밝은 구슬로 어찌 그대의 낭랑하고 윤기 나는 목소리를 모방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서 추정의 가르침(趍庭之訓, 자식이 아버지에게 받은 교육)을 받들어 삼전오경(三傳五經)을 열람하고는 일찍부터 세간을 뛰어넘는 재주에 힘입어 아주 오랜 세월과 견주었습니다. 
이것은 큰 기러기가 날개를 이루지 못하였으나 일찍이 구름을 능멸하는 마음을 가졌고 범이 털은 마르지도 않았어도 먼저 소를 잡아먹을 기운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먼젓번에는 금원(金園, 보찰寶刹)의 도를 사모하여 검은 머리를 자르고 흰옷을 검게 물들이고 옥거울과 같은 맑은 마음으로 법의 칼날을 담금질하며 지혜의 횃불을 불태웠습니다. 
도덕의 그릇에 흠결이 없으니 인천(人天, 모든 대중)이 공경하는데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습니까. 
천 년을 까마득히 솟아있어 마명과 용수(馬鳴龍樹, 대승불교의 선구자)를 추격하다 공전절후(空前絶後, 전무후무前無後無)의 경지를 보여주었고 외로이 일세의 의표가 되어 불도징(佛圖澄)과 구마라집(鳩摩羅什)을 멍에하고서 옛날의 현인(前賢)들을 빛냈습니다.
다만 지금은 부박한 세상(澆俗)으로 옮겨가 성인의 길(聖路)은 막혀 아직 열리지 않았고 옛날 순박한 풍속을 대신하여 어두운 긴 밤은 새벽이 밝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또 현묘하게 텅 빈 도는 푸른 하늘 은하수처럼 높아서 헤아리기가 어렵고 참된 근원은 맑고도 맑아 푸른 바다처럼 광활하여 나루가 없습니다. 
이에 예의 없는 어리석은 범부가 작은 꾀를 써서 이로운 말을 다투고 구차하고 용렬하며 비루한 이가 대음(大音)의 희유한 소리를 비웃는다면 어떻게 학구(鷽鳩, 산비둘기, 小人)가 느릅나무와 박달나무에 이르러 장대한 구만리의 포부를 꾸짖고 거미가 탱자나무 가시에 그물치고 천 길 높이의 부상(扶桑)을 짐작하려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큰 강물의 흐름을 흙덩이 하나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등림(鄧林)의 우수한 재목을 어찌 칼날을 모아 베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고인(古人)이 절실하게 법을 위하는 마음을 스스로 살펴볼 때마다 몸이 사라지는 듯하고 후생으로 하여금 두려워할 만한 행실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니 반드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입니다. 
강좌(江左)에 관이오(管夷吾)가 있어서 안정되었는데 저는 이미 친견했고 제나라는 악정자(樂正子)가 정사를 맡게 되자 백성들이 기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향단(香壇)에서 주맹(主盟)으로 추대하자 원근에서는 소생하기를 바라고 별궁(渚宮)의 허 선백(許禪伯)은 정성으로 승속(道俗)이 신명을 던져 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하기를 서약하였습니다. 
이에 보배 뗏목이 나루에 닿아서 고해에 빠진 중생을 제도하여 금 칼(金鎞)로 무지(無知)의 안막(眼膜, 각막)을 제거하고 묘엄존자의 큰 길을 보여 준다면 찬란하게 빛남이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유풍(遺風)은 오히려 남아 있는 것이 있을 뿐이어서 크게 칼 놀림(游刄)을 섭렵하자 도학은 미천(彌天, 釋道安)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니 날렵한 언변과 큰 기틀은 어떻게 밝게 깨달은 이에게도 부끄럽겠습니까. 
게다가 사림(詞林, 문단)의 옥수(玉樹, 거장)로서 놀라서 서로 혀를 내두르게 하니 필봉(筆鋒)은 용천 보검(龍泉寶劍)을 새롭게 숫돌에 간 것과 같았습니다. 
회소(懷素, 초서에 능했던 당나라 승려)와 같은 독보적인 출중함은 다른 이와 비견할 수 없었으며 교연(皎然, 당나라 詩僧)과 같은 절세의 재주는 오히려 감히 수레를 뒤엎는 말(捧駕之馬)이라고 할 만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타고난 성품이 매우 노둔해서 어진 이를 보면 그와 똑같이 되기를 생각하는 뜻만 크고 이루지 못할 것을 몹시 근심하였으니 거북이가 자신을 감추고 쓰이지 않는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산길 육칠 리를 오직 대나무 지팡이와 짚신으로 다니고 여덟·아홉 얹은 서까래 띳집에서 한갓 혼자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이 들었습니다. 
나와 남을 모두 없애 버리고 바위의 원숭이와 함께하고 소나무의 학과 무리를 지어 살면서 영욕을 모두 잊자 청산과 번화한 도성의 길에서 이룬 것과 똑같았습니다. 
이미 경수와 위수의 물결이 갈리었는데 사람을 따라 질곡에 빠지는 것을 즐기겠습니까. 
맛은 시고 짠 것이 다르듯이 세상과 어긋나면 서로 맞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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