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들은 흔히 우리 고장 ‘장흥군’(長興郡)을 글을 숭상하고, 의로운 기상의 전통을 이어가는 ‘문림의향’의 고장이라고 일컫는다. 또한 전국 최초의 문학특구이자, 한국 문학의 본향이다. 맞는 말로 충분히 동의한다.

 ‘장흥’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인종 임금께서 길게 흥하라고 장흥(長興)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천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오직 하나의 지명으로 길게 흥하고 있다고 본다.

 며칠 전 80이 넘은 연세 드신 지인으로부터 장흥군 문학기행을 다녀갔노라고 연락이 왔다.
 천관산시문학공원, 천관문학관, 한승원의 문학 산책길, 장흥문화원에서의 장흥문학과 문화, 역사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갔다라고 했다.
 지인은 장흥군이 이렇게 문학과 문화에서 훌륭한 고장이고 출신 문인들의 작품 활동이 대단하다는 칭찬의 일색이었지만 필자는 문림장흥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장흥 문학 현실에 선뜻 동의하기에 조금은 주저함을 느꼈다. 
 장흥읍의 법원검찰청 뒤편에 ‘장원봉’이라고 하는 낮으막한 야산 봉우리가 있다. 
 이는 고려시대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위씨(魏氏) 형제의 문장이 탁월함과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자 ‘장원봉’ 이라고 명명하였다는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
 이처럼 장흥은 고려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문장에 능한 인물들을 배출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보다 25년이나 앞서 구성과 표현 수법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기행가사의 효시인 ‘관서별곡’의 백광홍님을 비롯한 4형제가 모두 대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후기 천재 실학의 대가이신 존재 위백규님의 숫한 주옥같은 실사구시의 학문을 우리는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또한 중·고 학창시절 임진왜란 시 의병을 일으킨 지역으로 우리 장흥에서는 고경명장군, 나주 김천일장군이라고 배웠는데 후일 다시 들어다 보니 장흥은 찾을 수 없고 광주의 대촌과 담양도호부를 포함한 호남 여러 지역으로 변경되었음을 보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의 대표적인 장태(남도)장군 이방언 접주를 비롯한, 농민혁명에 가담했던 장흥 출신 수많은 열사들이 장흥 석대 뜰에서 최후까지 항전하였음을 기리기 위하여 석대 뜰이 내려 보는 곳에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건립운영하고 있지만, 장흥군을 방문한 관광객의 필수 코스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보이고 연인원 관람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더 많은 홍보와 편의 제공으로 기념관 설립 목적에 부응하는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우리 장흥군 용산면 출신으로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화에 헌신하시며 주옥같은 글들을 남기신 의인이자 대인이신 송기숙 교수님이 타계하셨다. 고교시절 교수님 친구 분이 학교 은사님으로 계셔서 은사님이 말씀하셔서  ‘자랏골의 비가’를 읽게 되었다.
 이후 생전에 한번 뵌 기억밖에 없지만 ‘녹두장군’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동학농민운동을 쉽게 접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문림의향’ 장흥의 정체성과 가장 일치하신 교수님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타계하셔서 못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교수님에 대한 여러 기념사업을 빠른 시간에 추진했으면 좋겠다. 

 지금 현대문단에서 활동하고 우리 장흥출신이 줄 잡아 120여 명 정도라고 하는데 단순히 숫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분 한분의 문학적 수준이 매우 높다. 라는 평가다.
 타계하신 이청준, 송기숙을 비롯하여 아직도 왕성한 작품 활동하고 계신 한승원님을 비롯한 수많은 문인들이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계신다.
 한발 더 나아가 대부분의 문인과 작가는 우리 장흥의 수려한 들, 뫼(산), 바다를 배경으로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모토로 하고 있다고 본다.
 요즈음 문학특구인 장흥군청은 물론, 장흥문화원과 장흥문인협회 그리고 장흥별곡문학동인회와 이청준기념사업회에서 나름 장흥군 문학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문림의향과 문학특구에 맞는 품격과 성장발전을 가져 오고 있는지 장흥군민 한사람으로서 스스로 자문해 보고 싶다.
 외지인의 문학기행이나 답사 시, 자신 있게 안내할 국·공립문학관은 물론 유명작가와 문인 명의의 문학관 하나 존재하지 않고, 타계하신 작가들의 생가 관리에도 다소 소홀해 보인다.
 물론 2016년 문화체육부의 국립문학관 건립 시 장흥군으로 유치하고자 모든 군민들이 일치단결하여 유치전을 펼쳤으나, 지정학적 접근성이 다소 어렵다는 이유로 유치에 실패했던 것이 지금도 많은 아쉬움만 남는다.  
 늦었다고 생각되지만 인근 목포시의 경우 과거 유명 문인 4명의 목포복합문학관을 동일 공간에 건립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휴전선 접경인 강원도 양구군은 이북출신 실향민 출신 2명의 문인이자 철학자 기념관을 건립운영하고 있다.
 인근 시·군에서는 지역출신 문인과 작가의 문학기념관 건립과 생가 관리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에 벤치마킹도 필요해 보인다.
 전라남도에서는 2022년을 ‘전라남도방문의 해’로 정하고 인문학의 성지로 만든다고 한다. 이 행사의 목적과 주제에 가장 부합되는 고장이 아마 우리 장흥군이라는 사료되고 그 중심에 서야 한다고 본다.
 자칫 주변 타시·군을 탐방하기 위하여 우리 장흥군이 하나에 지나가는 길에 머무르는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엊그제 한 공중파방송에서 우리 장흥의 음식에 대한 방송이 있었다.
 명승 천관산과 득량만을 비롯한 수려한 장흥의 자연과 음식 등이 뒷받침하고 있는 문림의향의 명성을 되찾는 장흥군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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