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억불산

지금 내 옆에선 태어난 지 두 달이 갓 지난 둘째가 잠들어 있다. 이 아이를 갖기 위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생각하니 더욱 귀하고 예쁜 내 아이.

오랜 시간 둘째를 준비하면서 힘들어하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첫째가 있으니 직장생활에 집중하며 아이 하나를 잘 키워보라고 위로와 충고를 하기도 했다. 둘째 임신이 점점 포기하게 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 하나면 족하다는 여성들이 많은 이 시대에 나는 왜 둘째, 셋째를 꿈꾸며 마음 아파하고 있는 걸까?’ 그 생각에 끝엔 아빠와 탐진강을 산책하며 활짝 웃고 있는 아들이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 아들은 장흥의 자연환경을 좋아한다.
가족이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장소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장흥에서 만든 귀한 추억들. ‘그래. 맞다. 장흥이라서...... 아이 키우기 좋은 장흥에 살아서 내가 다둥이 엄마로 살고 싶어지나보다.’라고 결론지어졌다.

나는 장흥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타지역 고등학교 진학과 대학생활, 취업으로 인해 10여년 동안 장흥을 떠나 살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가족과 고향을 떠나 살았기 때문인지 보통 도시 생활을 선호할 나이인 이십대 중반의 나는 장흥에 살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로 직장을 옮기며 장흥살이를 시작했다.

동료들과 함께 수영을 배우고, 지인에게 기타를 배워 연습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 탐진강을 걸으며 삶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도 즐겼다. 도시와 버금가는 문화생활과 취미생활을 하며 청춘을 보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도시 친구들에게 자랑하니 장흥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는 사람도 생겼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면서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디에 마련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에게 장흥에 살자고 신랑이 먼저 말을 꺼냈다. 
타지역에서 생활하던 남편은 장흥에서 데이트하면서 장흥이 좋아졌다고 했다. 산과 들, 강, 바다가 모두 어울어진 곳에서 산다면 마음이 여유로울 것 같고,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이 잘 자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남편의 생각은 적중했다. ‘체험이 가장 좋은 교육이다’라는 교육철학을 가진 남편은 아들과 지금까지 장흥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아들과 주말이면 억불산에 올라가며 돌탑을 쌓고 들꽃을 살피며, 고사리ㆍ취ㆍ밤 등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곤 한다. 아빠와 손잡고 정상에 올라 장흥을 바라보며 뿌듯함과 감사함을 배우는 아이. 또 갑자기 냄비와 휴대용 가스렌지와 라면을 챙겨 바닷가로 달려가 바다 생태계를 체험하고 노을을 바라보며 뜨거운 라면을 먹는 행복의 맛을 어린 시절부터 알아버린 아이. 그리고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탐진강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 돌다리를 걷고, 레이져 물 쇼에 춤추고, 서툰 솜씨로 자전거를 배우고, 퀵보드를 익히며 아빠 엄마와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아이. 여름밤이면 온 가족이 수박을 썰어 돗자리를 들고 찾아가는 우드랜드에서 폐와 피부에 건강을 더해줄 피톤치드 속에서 숨 쉬며, 도시에 사는 어떤 아이들보다 좋은 아지트에서 장흥을 즐기며 살아가는 아이. 빌딩 숲속이 아닌 집 앞 산책로에서 산새들의 울음소리와 다람쥐를 매일 만날 수 있는 아이. 컴퓨터와 휴대폰 없이도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준 내 고향 장흥에서 살고 있었기에 나는 자식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4년간 임신이 되지 않아 포기하려던 찰나에 우연히 찾아간 장흥군보건소에서 난임지원사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시술이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 고려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군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사업 내용에 대해 들으니 욕심이 생겼다. 친절한 담당자분의 도움으로 절차에 대해 안내받고 병원을 선택하고 준비과정에 들어갔다.
2020년 5월. 장흥군의 지원으로 시험관 시술을 앞두고 있던 찰나에 우리 둘째가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에게 찾아와 주었다.
자연임신이 된 후 임산부 등록을 하니 보건소에서 부지런히 연락이 왔다. 매달 엽산이며 철분제를 제공 받았고, 마스크며 임신축하 선물, 임신초기검사 등 많은 지원에 더욱 알찬 임신 기간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장흥군민임이 더욱 뿌듯했던 것은 아이를 출산하고 공공산후조리원에서 조리했을 때였다. 장흥군민인 나는 공공산후조리원 2주 조리비용 154만원 중에서 108만원 정도를 감면받아 아주 적은 금액으로 조리를 마쳤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친구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장흥의 복지혜택이 대단하다며 부러움과 함께 “아이를 낳으려면 장흥으로 가야겠구나. 출산지원금도 좋고.”라며 칭찬했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나와 집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보건소에서 출산 선물이라며 장흥한우과 키조개, 미역을 보내주셨다. 새롭게 장흥군민이 된 우리 아기와 그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환영하는 군민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으니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다음 세대를 향한 장흥군민들의 정성과 염원을 힘입어 태어난 우리 둘째는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날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신랑과 장흥군민으로서의 삶에 대해 가끔 이야기한다. 고향이 장흥인 나는 장흥이 익숙하지만 타지역에서 생활하다가 결혼 후에 장흥에 정착한 남편의 생활은 어떨까? 남편은 말한다. 
“사실 도시에 비해 생활이 단조롭고 쇼핑이나 문화생활이 힘든건 사실이야. 하지만 아이를 건강하고 밝게 키우는데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해. 자연과 함께 자란 아이들이 인생을 멀리 보고 깊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남이 보기에 행복한 삶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살게 하는데 첫걸음을 함께하기에 장흥은 참 좋은 곳이야.”
부모가 자녀에게 물리적인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심리적인 재산은 다르다. 한결같이 평탄한 길이 펼쳐지지 않고 구불거리는 인생의 곳곳에 숨겨진 역경과 고난을 만났을 때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학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다. 그런 배움의 끝에 아이들의 성품과 인품이 완성되는 것인데, 그 과정에 생활터전의 환경은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하는 배경이 될 장흥을 좋아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이제는 그 가정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냥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한 아이로 자라게 하고 그로 인해 건강한 가정이 되게 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역할이다.

군민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장흥군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요즘 몸소 체험하고 있다. 여유롭고 풍요로운 땅. 예로부터 지역 사람들이 좋기로 소문나 타지에서 이사와 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응하기 좋다는 인심 좋은 지역 장흥. 나와 우리 가족은 우리 장흥을 많이 아끼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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