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지난 호에 이어]

여러 제자들이 그 덕행의 아름다움을 진술하고 ‶평진 대종사(平眞大宗師)″라고 호를 더 높였다. 
‵평(平)′은 진실한 은덕(實德)을 취한 것이요, ‵진(眞)′은 실제의 행동(實行)을 취한 것이다. 
다비를 했을 때 끝내 사리를 얻지 못하자 승(僧) 탁준(卓濬)이 유골을 받들고 관서지방 묘향산에 이르러 전례대로 초제(醮祭)를 지내려고 했다. 
동행 승 낭총 암(朗聰菴) 주지 두 승려가 다 신령한 꿈을 꾸고는 밤에 일어나 촛불을 켜자 거듭 봉하였는데도 구멍이 나 있었고 사리(舍利)를 본 사람이 셋이었다. 
마침내 오도산에 부도를 세우고 그중 한 과(一顆)를 안치했다. 감실(龕室)과 석장(石藏)의 영골(靈骨) 두 과(二顆)는 각각 순천의 선암사와 해남의 대둔사에 안장했다.
오호라, 우리 유학은 불교를 물리쳤으니 그 사람을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고 그 책은 불태우고자 한 것은 불교도들 때문이었다. 
감히 우리 유학을 드러내놓고 헐뜯지는 않을지라도 그 마음은 서로 화목하지는 않았다. 
우리 유학은 선가(禪家)와는 같지 않으니 어찌 안다고 하겠는가. 
대사는 마침내 불교의 도가 유학과 부합(附合)한다고 상하를 인증(引證)했으니 그 다름을 같게 하고자 한다면 다르고 같아서 그 말이 이치에 맞는지 그렇지 않는지 여부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러나 양자운(揚子雲)이 말한, 
‶오랑캐 땅에 있는 자라면 이끌어 들여야 한다.(在夷狄則進之)″라고 한사람들도 여기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하물며 그들이 주석(註釋)을 질곡(桎梏)하지 않으면서 현묘한 깨달음(妙解)을 홀로 얻었다고 해도 유형의 것이 아니니(非有) 어찌 이 도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감동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구슬 사리가 신령한가 신령하지 않은가에 있지 않다. 이에 비명(碑銘)을 작성한다. 명에 이르기를,

骨耶珠耶。뼈인가 구슬인가
三顆之熒熒。세 과가 형형하구나.
衆緇以爲靈。대중과 승려들은 영골이라 하니
吾亦不妨乎還佗靈。나도 그것을 영골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注)
繳繞(교요) - 대체(大體)를 알지 못한 채 공연히 용어를 남발하여 얽어맴으로써 실정을 교란하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명가(名家)는 지나치게 사물을 분석하여 교요함으로써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돌이켜 볼 수 없게 만든다.[名家苛察繳繞 使人不得反其意]”라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교요는 이리저리 얽어매는 것과 같으니, 대체에 통하지 못한 것이다.[繳繞猶纏繞 不通大體也]”라고 하였다.
未發氣像 - 사시(四時)가 운행하고 만물이 생겨나는데도 여전히 발하지 않는 기상〔時行物生而依舊未發氣像〕.
理一分殊 - 주희(朱熹)의 이른바 ‘이일분수(理一分殊)’ 사상을 가리키는데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4에 “물건마다 하나의 태극을 지니고 있고, 사람마다 하나의 태극을 지니고 있다.[物物有一太極 人人有一太極]”는 유명한 명제(命題)가 나온다.
冥應(명응) -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신령과 부처가 감동을 받아 이익을 주는 일.
在夷狄則進之 - 한유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에 ‶이단(異端)의 학설을 주장하는 자가 사문(師門)에 들어와 있으면 쫓아 버려야 하겠지만[在門牆則揮之], 오랑캐 땅에 있는 자라면 이끌어 들여야 한다[在夷狄則進之]″는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상월 새봉 대사 시문
-霜月璽封(1687∼1767)

⦁題金華山上院庵 금화산 상원암에 쓰다.

上院高開俯碧湫 활짝 열린 상원암 푸른 늪에 숨고
登臨滌盡十年愁 올라 내려다보자 십년시름 다 씻겨간다.
長天九萬頭邊近 장천 구만리는 머리맡에 가깝고
大地三千眼底浮 삼천리 강산대지는 눈 아래 떠다닌다.
玉磬聲寒明月榻 명월탑 아래 옥경소리 차갑고
金爐香濕白雲樓 금향로 향기 백운루에 스며든다. 
留連剩得無生樂 오래 머물러도 무생의 즐거움 넘쳐나니
不必緱山羽化遊 구산 우화등선 유람 갈 필요 있겠나.

注)
金華山上院庵 - 전라도 보성군 벌교읍 金華山 澄光寺 산내 암자다.
한때는 조선불교의 중심사찰로 활발하게 불전을 간행하고 고승들의 수행 처로 유명하던 澄光寺가 사원 경제를 황폐화 시킨 ‶한지부역(韓紙賦役)″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산승도 절문을 떠나 속가로 돌아가자 문헌이 민몰되었다.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廢寺址는 장흥 성불사, 장흥 금강사, 장흥 금장사, 낙안 징광사, 화순 운주사, 영암 월출산 용암사, 영암 금정 쌍계사, 고흥 불대사, 보성 개흥사, 강진 성전 월남사, 지리산 파근사 등이다. 
玉磬(옥경) - 옥으로 만든 경쇠.
緱山(구산) -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晉)이 신선이 되어 구산에서 흰 학(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고사가 있다. 이 산은 흔히 수도하여 신선이 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화등선(羽化登仙) - 사람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는 전설.

⦁題仙巖寺香爐庵 선암사 향로암에 쓰다.

▲선암사 향로암 신중도

偷閒半日到仙鄕 향로암에 도착해 반나절 틈을 내니
玉磬寒聲動上方 옥경 차가운 소리 사찰을 요동친다.
仰見靑天雲杳漠 파란하늘 우러러보자 구름 가물가물하고
俯看滄海水汪洋 큰 바다 내려다보자 파도 끝없이 출렁인다.
從知物外煙霞富 세상 밖 넘쳐나는 안개노을 알고부터
更覺壺中歲月長 신선세계 넉넉한 세월도 새롭게 깨달았다.
塵慮暗隨群動寂 속된 생각 가만 따라도 뭇 생물은 적막하니
却忘歸路坐禪堂 선당에 앉아 돌아가는 길 망각했다.

注)
仙巖寺香爐庵 - 전라도 순천군 쌍암면 조계산 선암사 말사인 향로암이다. 1930년 1월 15일자 동아일보에는 향로암에 강도가 침입했다는 기사가 순천지국발로 올라와 있다. 지금은 향로암 터만 남아있다.
仙鄕 - 선경(仙境). 신선 세계. 仙巖寺 香爐庵.
玉磬 - 옥으로 만든 경쇠.
上方 -꼭대기 암자. 본래 주지(住持)의 거처를 뜻하나 보통은 사찰의 대명사로도 쓰인다.
壺中 - ‵호중천(壺中天)′의 준말로 호로(壺蘆) 속에 있는 별천지(別天地) · 신선의 세계이다. 별세계(別世界). 선경(仙境).
禪堂 -  참선(參禪)을 하는 집. 주로 승려들이 좌선(坐禪)을 하는 곳으로 절 안의 왼쪽에 있다.

⦁謹挽無用大和尙 삼가 무용 대화상을 애도하다

宗門不覺法雷停 나도 몰래 종문에 법음 멈추니
一朶拈花此日零 한 떨기 손에 든 연꽃 오늘 떨어졌다.
後代兒孫無所托 후대 자손들은 의탁할 곳 없고
即今禪侶絶由聽 지금 승려들은 강경소리 들을 곳 끊겼다.
曺溪山色含新恨 조계산 산 빛은 새로운 한 머금고
水石亭光減舊馨 수석정 풍광 향기는 예전보다 못하다.
生死雖知雲起滅 생사는 구름 일었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臨風哀涙灑空庭 바람결에 슬픈 눈물만 빈 뜰에 뿌린다.

注)
無用大和尙 - 무용 수연無用秀演(효종2년1651~숙종45년1719).
속성은 오(吳)씨이며 법호는 무용(無用), 법명은 수연(秀演). 전라도
익산군 용안면 사람이다. 무용은 백암 성총의 강석을 물려받아 남방불교계의 대종장이 되었다. 
法雷(법뢰) - 법음(法音). 법음이 우레와 같아서 미혹한 자들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에 법음을 법뢰라고 한다.

⦁波根龍湫春詠 지리산 파근사 용추 폭포에서 봄을 읊다.

澗合無絃瑟 산골 물 합치자 무현금 소리고
山明不畫屏 밝은 산은 그리지 않은 병풍이라.
有懷千古事 천고의 일을 회고하면서
獨立小沙汀 홀로 작은 모래 물가에 서 있다.

역자 注)
파근사는 현재 폐사지로 용담 조관 선사와 혜암 윤장 대사의 자취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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