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교육, 금융, 소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그 중 많은 사람이 앞 다투어 본 받아야 할 미국의 미덕이라 부르는 것이 있으니 바로 「기부문화」이다. 세계의 유명한 기부자들 대부분은 미국의 부호로 그들의 기부액은 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부호 중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 기부액은 얼마인지 타국인 한국에서도 꽤 중요한 뉴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만큼 그들의 기부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뉴스에서 다루어지는 기부의 대부분은 아마존의 설립자로 유명한 제프 베이조스, 오랜 기간 세계 부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부부,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다. 이들 부호의 기부액 단위가 천억 단위, 때로는 조 단위의 금액에 달하는 만큼 이들 부호의 기부가 미국 기부 문화와 재원의 근간을 이루는 듯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 내 전체 기부액 중 일반인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기부 문화를 주도하고 선도하는 것은 몇몇 부호가 아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시민이라는 뜻이다. 미국 기부 문화의 저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나눔의 미덕을 배우고 생활 속 소액 기부 활동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자란 미국인들에게 기부는 그다지 특별한 행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부 문화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을 중심으로 각종 재단을 통해 공격적인 기부를 펼치고 있다. 포스코는 장학재단을 통해 인재 육성에 꾸준히 기부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삼성의 경우 문화재단 및 미술관과 같은 문화예술 시설을 통해 사회 환원을 실천하고 있다. 연예인 및 스포츠 선수 같은 유명인의 기부 또한 우리가 자주 접하는 기부 형태 중 하나다. 기부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평판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얻은 사회적 명망을 또 다른 선행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의 기부문화 또한 기부자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미국의 것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기부는 경제 규모와 비교해 미약한 수준이다. 세계기부지수(2018년도기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국가 중 60위로 OECD 36개 회원국 중에서도 21위의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기업과 단체, 유명인의 기부를 제외한 개인 기부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는 증거다.

2021년 9월 28일 국회는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의결했다. 평소 고향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희소식이자 기부 방법에 다양성을 더했다는 측면에서도 귀추가 주목되는 시도라 하겠다. 「고향사랑기부금」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기부액 한도는 500만 원으로 연말정산 시 세액 공제 혜택은 물론 답례품이 제공된다. 답례품은 기부액의 30% 이내로 답례품을 통한 지역 특산물 소비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에서도 「고향사랑기부금」과 비슷한 「고향납세」제도 실시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 기부금이 전달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또한 새로운 기부 형태의 등장에 따라 개인 기부자의 증가 등 점차적인 변화가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민간 기부, 개인 기부가 활성화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부금 운용의 투명성, 세제 혜택, 사회적 분위기 등을 꼽는다. 세제 혜택과 기부자를 향한 사회의 긍정적인 시선 및 평가는 우리도 미국과 비슷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개인 기부 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국모금가협회가 행정안전부 의뢰로 2018년 전국 성인남녀 1천 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부문화 인식 실태조사를 통한 기부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기부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56.8%(424명)가 기부금 사용 내역을 모른다고 답했다. 또 최근 기부 경험이 없는 사람이 꼽은 기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두 가지 중 하나가 「기부를 요청한 시설을 믿을 수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학력이 높을수록 기부단체의 투명성을 의심하는 비율도 높았다. 여유롭지 않은 상황 중에도 사회와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시급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기부금을 운용하는 기관 단체를 향한 믿음이었다.

기금 운용의 투명성은 몇몇 기부 단체에 국한하지 않는다. 고향의 발전을 위해 「기부」라는 형태로 고향 사랑을 실천해 온 향우와 지역 유지 또한 기부액이 어떤 형태로 쓰였는지 궁금하기는 매한가지다. 「고향사랑기부금」 제도를 시작을 기점으로 지방자치단체의 기부금 관리 및 사용에 이목이 쏠릴 것이다. 이는 기부금 관리 및 사용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기존 방식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는 기부금 사용에 대한 정보 공개를 통해 기부금 운용의 투명성 확보해야 한다. 기금운용의 투명성은 기부자가 바라는 신뢰이자 기부금을 운용하는 단체의 의무다. 더불어 기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뉴스레터(소식지) 발행 등을 통해 기부금의 사용처 관련 내용을 충분히 고지하는 배려도 필요하다. 기부자 맞춤형 뉴스레터를 이용해 기부에 동참한 이들의 여러 사회 활동을 알리고 전달한다면 그들의 선한 영향력이 더 확대되지 않을까. 기부자들 간의 유대 관계 강화는 또 다른 형태로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기부금 및 기부자들을 위한 지자체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한 거액 기부자는 기부와 관련해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사용한 돈들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남들과 세상을 위하여 사용한 돈들은 늘 살아 있는 영원한 유산이 된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기부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한 마디다. 그러나 우리는 말처럼 기부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기부금을 관리하는 지자체의 꼼꼼한 운영을 끊임없이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고향사랑기부금」을 시작으로 소액 기부도 늘어날 미래를 위해 지자체는 기부금 운영에 관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부금 사용처를 공개해 기부자들과 신뢰를 쌓아가는 것은 물론 기부에 관한 적절한 혜택을 제공해 그들의 고향 사랑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독려하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고향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의 등을 밀어주는 것도 지자체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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