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5. 천관산과 문인들의 발자취
전국의 등산객들이 갈대 축제로 즐겨 찾는다는 천관산. 산 정상의 독특한 모양의 바위들이 장관인데, 볼거리 또한 많다. 수백 개의 돌탑들이 일일이 자원한 면민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니 더 경이롭고 숙연해진다.
전국 문인들 중 54인의 작품이 새겨진 시비들을 전시한 문학 공원 또한 볼만하다. 유일하게 장흥 출신에 국한되지 않은 열린 공간이어서 더욱 신선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많은 문인들의 발자취가 천관산문학관에 잘 보존되어 있는데, 방문객들이 편안히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전국의 작가들 중 140여 명과, 유명 작가 24인 중 걸출한 세 명(고 이청준·송기숙·한승원)이 장흥 출신이다. 현재도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문인들 중의 다수가 장흥 출신들이라니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1700년대부터 시작된 가사문학이 뿌리가 되어 그 문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덕분이라 한다.
고 이청준 작가의 묘소가 있는 갯나들 문학자리와 「눈길」이란 소설의 배경이 된 산길. 그리고 한승원 작가가 글을 쓰고 후학을 지도하는 <달 긷는 집>, 바닷가 시비 전시장 한승원의 문학 산책길은, 문학도가 아니더라도 방문객들의 탐방 필수 코스이다. 아름다운 탐진강변을 따라 만나게 되는 정자문화도 자랑할 만하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리잡은 겸손한 정자들이 정다워 보인다.
정자에 새겨진 한시들을 우리 말로 풀어 현대인들도 읽을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하시는 분을 만나 이야길 들었는데, 역시 풍류와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장흥인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괄목할 만한 문인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생각해 보니 장흥만의 독특한 유전자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젖 같은 탐진강의 물을 먹고, 아름다운 풍광 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다보니 형성된 풍성한 감성의 유전자 말이다.

6. 늘어나는 이웃
우리 마을엔 요즘 도시를 떠나 귀향 또는 귀촌하는 사람들이 있어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곳이 세 곳이나 된다. 코로나를 겪으며 시골을 선호하게 된 사람들이 늘어난다더니, 그래서일까?
이런 식으로 도시의 인구가 지방으로 분산되고 골고루 발전하여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로선 새로운 이웃이 생기는 반가운 현상이다. 우린 더 일찍 귀촌 못한 것이 아쉬운데, 그래도 더 늦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생활을 즐긴다. 도시에서 살 때, 일기장에다 하루를 살아냈다고 표현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하루를 즐겼단 말을 자주 쓰게 된다.
가까운 군 내에 장흥댐을 비롯하여 운주, 재송 저수지 등 농민들의 젖줄인 저수지들이 많은데 주변 경관도 하나같이 아름답고조용하다. 탐진강변 양 옆으로 장흥에서 강진으로 이어지는 벚꽃길, 소등섬 가는 길의 벚꽃 아치 등은 가히 장관이다. 용산면의 남상천을 따라 형성된 벚꽃 길도 아름답다.
눈부신 봄 햇살아래 머리에 닿을 듯한 벚꽃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얼마나 행복한지, 벌써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자전거를 타고가서 쑥을 뜯어 배낭에 담아 온다. 올해도 쑥을 뜯어 도시에 사는 딸들에게도 보내고 일부는 떡을 했는데 맛있게 되었다. 내년엔 더 많이 뜯을 생각이다. 남편과 오순도순 얘기하며 봄나물을 뜯는 여유로움이 행복이라는 고운 빛깔로 가슴 속에 스며든다.

7. 장흥의 9景 9味 9品과 즐길 거리
여름이면 3년 연속 축제 콘텐츠상을 수상하여 더 유명해진 장흥물축제가 열린다. 코로나19로 인해 중단중이지만, 물축제 때 전국에서 탐진강으로 모여든 많은 인파에 놀라고 행사의 규모와 내실에 놀랐다. 과연 상을 탈만 하다고 생각된다. 강변의 토요시장에는 싱싱한 해물이나 채소를 사러 가는데, 삶의 활기가 넘치는 현장을 보는 재미도 있다.
장흥의 9경은 보림사ㆍ탐진강ㆍ제암산·장흥 토요시장ㆍ편백 숲 우드랜드ㆍ소등섬ㆍ천관산·남진 전망대ㆍ선학동 마을이다.9미에는 장흥 삼합(장흥 한우ㆍ표고버섯ㆍ키조개), 키조개 요리ㆍ갑오징어회와 먹찜ㆍ매생이탕ㆍ바지락 회무침ㆍ하모(샤부샤부)ㆍ된장 물회ㆍ굴구이ㆍ황칠백숙이 있다.
9품에는 장흥 표고ㆍ한우와 육포ㆍ황칠나무ㆍ장흥무산김ㆍ청태전ㆍ친환경쌀 아르미ㆍ낙지ㆍ헛개나무·매생이가 있다.

8. 별 걸 다하는 남자
우린 이제 집에서 머릴 자른다. 이발 도구를 사서 서로 잘라 주다가 최근엔 남편이 본인 머리, 내 머리를 다 손질한다. 읍에 나가면 미용실이 많지만, 절약된다는 뿌듯함과 도시에선 안 해봤던 일에 도전하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어느 달 밝은 밤, 마당에서 카트를 하기로 하여 남편에게 머리를 맡겼는데, 잠깐의 실수로 귀에서 피가 났다. 동영상으로 남기려고 촬영하던 중이라 다녹화가 되었는데, 남편의 반응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카트는 대낮에 해야겠단 교훈을 얻었다.
자연 비료를 만든다고 작은 볼 일은 뒷마당의 전용 독에 보는 남편. 누가 뒷구석에 놓인 그 독을 보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거의 다들 그런 방법을 쓰고 있다 하니 흉이 아닌 모양이다.
며칠 전엔 중고 예초기를 샀다. 몇 달 전엔 전기톱을 사고, 도끼는 장작을 많이 패다 보니 잘 망가져서 세 개 째 샀는데, 남편 손을 거쳐 하나 둘씩 농기구가 늘어난다. 그리고 차츰 까무잡잡하니 심신양면으로 농부다워지고 있다. 천정이나 벽이 무너져도 제법 그럴싸하게 고치고, 전기나 수도 고장이 나도 웬만한 건 다 고치니까 내가 ‘김가이버’라 부른다.
남편이 오전에만 일을 하니 자연스레 살림을 도와주게 되어 난 거의 부엌에서 해방되었다. 이것도 시골이 좋은 이유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9. 마실장과 씨앗 곳간
용산의 마실장엔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려는 뜻 있는 분들이 농민들과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조직을 제대로 만들려고 추진 중이라서 사뭇 기대가 크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나서는 깨어 있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농촌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부부도 군민으로서 이런 훌륭한 분들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사회적 기업 씨앗 곳간의 조합이 설립되면 조합원이 되려고 한다.
첫 준비 모임에도 참석했는데, 쟁쟁한 젊은 군민들이 모여 토종 씨앗 포함, 효율적인 농업을 위한 조합의 설립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으로 지혜를 모으는 것을 보고, 농촌의 희망을 느꼈다. 한국이 씨앗 보존은 물론 농업의 발달 수준이 현재 세계 6위라는 사실을 처음 접하고 나니 자부심에 뿌듯했다.

마실장 풍경은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시장 놀이 같다.
부모를 따라 나선 아이들이 자기들이 쓰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팔기도 하고 무상으로 나눠 주기도 하는데, 마치 소꿉놀이 하는 것처럼 재미있어 보였다.
집에서 만든 빵을 팔며 직접 거스름돈도 내 주는 고사리 손을 보며, 이러한 소규모적인 매매와 나눔을 통해 건전한 상업 문화를 배우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두부ㆍ수수뿌끄미 부침개를 즉석에서 해주기도 하고, 김치류나 호박죽ㆍ토란국을 해 오는 분들이 계시다. 가성비도 좋다. 도시 못지않은 가죽 공예품들도 있다.
장을 마치면 원하는 사람들 모두, 어떤 때는 2~30여 명 이상 삼삼오오 점심을 먹는데, 아이들은 무료이고 어른들은 1인당 삼천원이다.
요즈음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이는 수가 많지 않지만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소박한 밥상이 그리워 장날을 기다린다는 주부도 있었다. 이런 마을의 풍경이 소탈하고 정겨워 보인다.
어린이들에게 수요와 공급에 대해 산교육을 하는 공간이 되어주니 좋다. 젊은 귀촌인들이 제법 있어서 함께 장에 나오는 어린이들이 많은 사실이 나로선 신기했다. 뛰어 놀기도 하고 재잘거리며 웃는 소리가 아이들이 귀한 시골에선 음악처럼 듣기 좋다.

10. 내가 즐겨 가는 맛집
정남진 타워가 보이는 신동리에 정남진 팥칼국수집이 있다. 부부가 운영하는데, 국산 팥을 사용하면서도 저렴하여 가성비가 높다. 여주인의 요리솜씨가 일품이라 우린 나온 음식들을 핥듯이 알뜰히 비우고 온다. 앞의 바다에서 잡은 낙지는 단골들에게 택배로 나가는 바람에 요리할 것이 안 남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거기서 채취한 미역을 팔기도 하는데 정말 부드럽고 맛있다. 인심도 좋아서 고구마나 옥수수가 제공되는 적도 있다.
우연한 기회에 “아니, 장흥에 이런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색적인 곳을 발견했다. 용산면인데, 평화로운 들판 가운데 특이한 이름이 쓰인 ‘남하 부엌, 남하 점빵’이라는 작은 간판이 소박해 보였다. 특이하고 기발한 식당 안팎의 분위기가 인상적이고, 음식 맛도 좋았다. 정보를 검색해서 찾아오는 타지 고객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11. 만보 걷기의 묘미
장흥보건소에서 시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열흘 동안 총 7만보를 걸으면 5천 원의 편의점 상품권을 주는 챌린지가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이 느껴졌는데, 참여해 보니 상당히 동기 부여가 된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린 하루에 만보 걷기를 목표로 하는데 7~8일 만에 달성되거나 더 걸리기도 한다. 걸음 수가 조금 부족하면 더 채우려고 조금 더 걷곤 하는데, 달성할 때마다 생기는 상품권으로 커피ㆍ껌 등을 살 때마다 공짜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일석이조라서 우린 적극 참여하는데 행사가 없는 때에도 시간이 나면 걷는다. 남들 밭에 농사지은 것을 보고 배우기도 하는데, 걸으면서 부부간에 대화도 많이 하게 되니 참 좋다.

12. 마지막 소풍
서울 살 때 이웃에서 가깝게 지냈던 부부가 경기나 강원 쪽으로 귀촌을 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장흥에도 놀러와 보라 했다.
작년에 우리 집에 2박 3일의 여행을 두 차례 다녀갔고, 두 번 째 방문 때엔 안양에다 땅을 샀는데, 서울의 가게를 정리해야 귀촌할 수 있는 상황인데 얼른 오고 싶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차로 가면 20여분의 거리에 있는 땅인데, 사실상 우리와의 인연 때문에 오게 되는 첫 사람들이니, 귀촌 선배로서 좋은 이웃이 되어주고 싶다. 주변 친척들도 나중에 따라 오겠다고 한다는데 세월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일이다.
인생을 세상에 잠시 소풍 온 걸로 비유함은 마음을 비우는데 도움이 되는 참 멋진 표현이다.
난 여기에서 마지막 소풍을 한껏 즐기다가, 때가 되면 먼 여행길에 오르려 한다.
갈수록 정이 드는 고향 같은 곳, 바로 이 곳 장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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