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이타현(大分県) 유후인(由布院)은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일본 내에서 「가고 싶은 온천 휴양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후인의 특징 중 하나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한 매체는 「13년 연속 일본 온천 1위」를 기록하는 유후인의 인기를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매년 바뀌는 것이 관광지 순위인데 유독 온천 순위에 있어서는 유후인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인이 유후인을 최고의 온천 휴양지로 꼽는 이유는 소박하고 고즈넉한 마을 풍경 덕분이다. 유후인은 일본을 넘어 한국과 중국 관광객에게도 「한 번은 방문하고 싶은 온천마을」로 언급되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옛 풍경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차분함이 유후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많은 이들은 입 모아 말한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시시각각 변하기보다는 변화를 거부함으로써 성공한 마을 유후인의 사례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고 때로는 삭막함이 가득한 도시의 풍경에 지친 이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유후인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일본의 다른 중소도시들이 그러했듯 유후인에도 한때 강렬한 「개발」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골프장 건설, 고층의 호텔 및 관광 시설 건설과 같은 관광 산업 계획이 차례로 유후인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한 개발의 물결에서 옛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합의를 통한 「마을만들기」, 「경관만들기」 운동이었다. 마구잡이 개발이 아닌 마을 내 경관과 마을 주변 자연환경 보호를 위한 자연환경조례를 마련했다. 오랜 기간 농촌 지역으로서 쌓아온 역사와 삶의 형태가 무너지지 않도록 「농촌 지역」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한 후 이를 바탕으로 여러 노력을 전개했다.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면, 농촌지역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대규모의 숙박 시설 건설을 제한하고 건축물의 형태, 높이, 색채, 식수(植樹) 등의 기준을 도입했다. 옥외 간판 설치를 제한하고 건축물에 부착하는 간판 제작 규칙을 만들어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 이와 같은 노력을 장기간 펼침으로서 청정하고 포근한 유후인의 이미지를 구축, 보존해 올 수 있었다.

유후인은 성공적인 마을 만들기 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유후인을 벤치마킹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많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로 많은 전문가가 연구해 왔다. 전문가 및 지자체가 주목하는 부분은 조례를 중심으로 하는 실질적인 「마을만들기」 방안이다. 하지만 조례와 방안의 면밀한 검토만으로는 유후인의 성공이 의미하는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지역을 위한 주민의 합의」다. 지자체의 조례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유후인의 미래를 위한 주민들의 명확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합의가 없다면 강제성이 약한 지자체의 조례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어떤 마을(지역) 건설을 꿈꾸는지, 이를 위해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지 지역 주민 간의 대화와 합의야말로 일본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을 만들기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장흥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문학과 관련된 문화자산은 그 어느 지역보다 월등히 많다. 불허할 정도다. 이 외에도 안중근 의사의 사당이 있는 해동사, 고인돌 공원, 원로 작곡가 손석우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 자원과 유산이 산재해 있다. 우수한 소재가 많다 보니 관련 콘텐츠 또한 넘쳐난다. 보여줄 것 자랑할 것이 너무 많아 고민일 정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장흥군이 실시해 온 문화관광 정책 및 전략을 살펴보면 어딘가 모르게 우왕좌왕하는 듯 보인다. 문화관광 정책 담당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방향성이 바뀌는 듯한 인상 또한 강하다. 명확하고 일관된 장흥군의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유후인의 사례를 떠올려 보자. 지자체의 주도가 아닌 주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계기가 되어 주민들이 생각하는 유후인의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나갔다. 완벽한 그림이 완성된 후에 비로소 제대로 된 정책이 만들어졌고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어졌다. 사실 오랜 기간 그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만이 아는 매력과 본 모습이라는 게 있다. 유후인 주민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오랜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았고, 자신들이 그린 유후인을 지켜나가길 원했다.

지방자치 30년을 맞이한 올해, 이제는 진정한 지방자치의 길을 걸어야 할 때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장흥군의 모습은 무엇인가. 담당 공무원 몇 명이 단기간 내에 도출할 수 있는 답은 결코 아니다. 장흥이라는 땅을 터전으로 살아온 군민만이 찾을 수 있는 무엇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거듭 고민해야 할 때다. 나의 고향, 나의 삶의 터전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지,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기억되길 바라는지 끊임없이 대화하고 또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군민의 자발적인 「우리 장흥 만들기」를 통해  명확한 합의가 도출될 때 비로소 장흥의 소중한 환경 유산과 문화유산은 그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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