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산중)/ 규창 이건(선조의 손자)
봄 산에는 초목도 너무나도 많아서
나무꾼이 길 좁아 분간하기 어려운데
노을에 하얀 구름이 유유하게 흘러가네.
春山多草木    樵路細難分
춘산다초목    초로세난분
匹馬煙霞裡    猶疑上白雲
필마연하리    유의상백운

기다리던 봄이 왔다. 언제 왔는지 소식도 없던 봄이 슬며시 다가오는가 싶더니만, 산중에 오솔길 가에도 파릇파릇 풀이 돋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제 키 자랑을 해댄다. 겨우 길을 걷기조차 했던 오솔길이 금방 풀밭이 되어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만 길을 막아 버렸다고 투정이라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찾아온 파릇파릇 봄 산에는 초목도 많이 돋았는데, 나무꾼은 길이 좁아서 분간키도 어렵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머리 위로 흰 구름 두웅실 하염없이 흘러가네(山中)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규창(葵窓) 이건(李健:1614~1662)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선조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 이공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로 좌참찬 증 영의정 윤승길의 딸로 알려진다.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8세에 소학을 배웠으며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을 공경할 줄 알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파릇파릇 봄 산에는 초목도 하도 많아 돋았는데 / 나무꾼은 길이 좁아서 분간키도 어렵겠네 // 말과 같이 노을 속을 헤치면서 지나가노라니 / 머리 위로 흰 구름 두웅실 하염없이 흘러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산중에 있노라니]로 번역된다. 자연을 보고 음영했던 시작품이 대종을 이룬다. 깊은 산중에 들어가 울창한 숲과 훌쩍 커버린 나무와 풀을 보면서 시상을 일으켰다. 산중의 새소리와 벗 삼아 흥얼거리는 시상도 만나면서 자연은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젖는다. 우리 선현들은 이렇게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을 음영하며 살았다.
시인의 시상을 보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종장인 결구에서 시적인 반전을 시도하여 자연을 힘차게 끌어당기는 한 모습을 볼 때마다 시상의 멋을 발견한다. 봄 산에는 초목도 하도 많아서 산에 가서 나무하는 나무꾼이 길이 좁아서 분간키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 평범한 시상을 만지작거린다. 그렇지만 자연과의 합일을 유도해내기 위한 것임을 은근하게 살피게 된다.
화자의 시상은 자연에 귀일歸一하는 한 모습을 보면서 범상하지 않는 안목을 발견하곤 한다. 말을 타고 노을 속을 헤치며 지나노라니, 머리 위로 흰 구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는 시상이다. 머리 위로 흘러간 구름은 바람을 타고 다시 올 것이라는 귀일의 시상임도 시주머니에는 채워졌으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봄 산 초목 많이 돋아 분간키도 어렵겠네, 노을 속을 지나가니 흰 구름만 하염없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春山: 봄 산. 多: 많다. 草木: 풀과 나무. 樵路: 나무꾼 길. 나무꾼들이 비좁게 다니는 길. 細: 좁다. 難分: 분간하기가 어렵다. // 匹馬: 필마. 여기에선 필마와 같이. 煙霞裡: 노을 속을 지나다. 猶: 오히려. 疑: 의심하다. 上: 위로. 여기에선 머리 위로. 白雲: 흰 구름.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