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지난 호에 이어]

⦁次題天風樓 천관사 천풍루에 차운하여 쓰다.

層樓陟起入圓穹 층진 누각 오르자 하늘 드는 것 같아
千里憑看縱目窮 눈 닿는 머나먼 천리풍광 자세히 구경한다.
鴉帶夕陽歸遠浦 석양 까마귀 떼는 먼 포구로 돌아가고
鴈將秋色度寒空 가을빛 품은 기러기는 차가운 하늘 건너간다.
一生浪跡隨萍綠 인생 떠도는 자취는 푸른 부평초 신세지만
半世浮名任槿紅 반평생 헛된 명성은 붉은 무궁화에게 맡긴다.
忽見飇輪雲外過 그새 구름 밖 지나가는 신선수레 보자
也疑天路赤松逢 또 하늘 길로 적송자 만나려가나 의심한다.
⟦雪巖禪師亂藁⟧

注)
天風樓(천풍루) - 장흥부 천관산 천관사 종각 남쪽 편에 있었다. 영조23년(1747) 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飇輪(표륜) - 회오리바람을 타고 올라가는 신거(神車)로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궁궐에는 표거 우륜(飆車羽輪)이 아니면 이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환린(桓驎)의 《서왕모전(西王母傳)》에 있다.

⦁次伽智寺韻 가지사 시운에 차운하다.

何人相地闢金田 어떤 사람이 지리 살펴 사원 개창했나
路隔塵紅別有天 티끌세상 길과는 떨어져있어 별천지로다.
千疊白雲生遠壑 일천 겹 흰 구름은 먼 골짝에서 일고
一聲踈磬落孤烟 드문 경쇠소리에 한 줄기 연기 사라진다.
聞經老鶴看空殿 독경소리 들릴 때면 늙은 학은 불전 지키고
觀壁胡僧護深淵 벽화 보자 달마대사는 깊은 못 수호하구나.
引燭中宵繙貝葉 한밤중에 촛불 밝히고 불경 펼치니
石床凉甚不堪眠 석상이 너무 서늘해서 잠들 수는 없겠다.
⟦雪巖雜著⟧

注)
相地(상지) - 상지인(相地人).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 통일신라 말기 도선(827~898)의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金田(금전) -  절의 다른 이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수달장자(須達長者)가 황금을 주고 땅을 매입하여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었다는 고사에서 절을 금전(金田) ․ 금지(金地)라 한다.
胡僧(호승) - 서역에서 온 중을 말한다. 달마대사.

⦁過金剛寺古基 금강사 옛터를 찾아서

古寺餘基作草氈 고사 남은 터 풀방석 되었으니
層稜樹色翠相連 층계 모서리 나무 빛 연달아 푸르다.
千年苦竹生空地 천년 참대나무 빈터에 자라고
浩劫浮雲鎻梵天 영겁의 뜬 구름은 범천을 가로막는다.
西敎金鍾皆寂寞 절간 에밀레종은 모두가 적막하나
東流石澗自潺湲 동류 석간수는 여전히 물 졸졸 흐른다.
階花有意含晨露 뜻 지닌 섬돌 꽃 새벽이슬 머금자
似向春風泣泫然 봄바람 향하여 눈물 흘리는 것 같다.
⟦雪巖雜著⟧

注)
金剛寺 - 全羅道 長興府 龍溪坊 沙開(居開) 東三里에 있었다. 僧 靈基가 創建했다. 어느 해 폐사되었는지 모른다. 현재 행정구역은 전남 장흥군 장동면 하산리 이다.
靈川 申潛(1491~1554) 文集 ⟦冠山錄⟧에는 ‵金剛寺′ 기사가 보인다.
浩劫(호겁) - 끝없이 긴 시간.
梵天(범천) -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에 속하는 가장 위의 하늘을 다스리는 왕. 제석천(帝釋天)과 함께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불법 수호의 신이다.

⦁成佛寺逢別 성불사에서 만났다 헤어지다.

宇宙長爲客 우주에 오랜 객 되어도
天涯孰有知 하늘 끝에서는 그 누가 알아줄까.
偶來成佛寺 우연히 성불사 찾아
聊賦贈僧詩 그저 납자에게 시편 지어 준다.
落帽淸遊近 아주 즐거운 놀이에 관 날아가도
重陽醉興彌 중양절 취흥은 널리 퍼져간다.
瞥然離思動 별안간 이별의 정 충동하니
回首不勝悲 고개 돌리자 슬픔 못 견디겠다.
⟦雪巖雜著⟧

注)
成佛寺 - 長興府 府西坊 北 修仁山下 南麓 屬鄕校.
落帽(낙모) - 진(晉)나라 맹가(孟嘉)가 중양절에 환온(桓溫)이 베푼 용산(龍山)의 주연(酒宴)에 참석했다가 술에 흠뻑 취한 나머지 바람에 관이 날아가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고사가 있다.

⦁題金華山彌陀殿 낙안 금화산 미타전에 쓰다.

靑山中坼玉壺開 청산 중간 터지자 맑은 마음 열리고
步步淸奇絕點埃 걸음마다 맑고 기이해 한 점 티끌도 없다.
春晩鳥啼千嶂樹 천봉우리 초목에서 늦은 봄 새 울고
夜深僧夢九蓮臺 구품연대 깊은 밤에 중들은 꿈만 꾼다.
爐噴雞舌香烟靄 화롯불에 계설 향 연기 피어나고
牎暎峩嵋月影回 선창에는 아미산의 달그림자가 어린다.
安得他年重到此 어떡하면 훗날 이곳에 다시 와서
禮於無量壽如來 합장하고 아미타불 부처님께 예불 올릴까.

注)
玉壺 - 맑은 마음.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의 시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에 “낙양의 친우가 만약 묻거든, 한 조각 빙심이 옥호에 있다고 하게나.〔洛陽親友如相問 一片氷心在玉壺〕”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無量壽如來(무량수여래) -아미타불.

(二)
浩刼膚功法宇開 큰 재앙에 공 세우자 법우 열리고
容成揆日鬼傭才 용성의 시간 측량은 귀신재주 품 샀다.
誰知綠樹寬心施 짙은 녹음이 너른 마음 베풀 줄 누가 알았나
曾得黃金側地廻 황금 진작 얻었으면 기운 땅 뒤집었을 걸.
無盡燈傳三世火 다함없는 선등 삼대까지 불씨 전하고
有餘香爇一爐灰 한 화롯불 재는 남아 있는 향기 불사른다.
居僧想見西方佛 거주하는 승려들 상상해 보면 아미타불이라
不願蓮花九品胎 구품연화대는 바라지도 않는다.
〚雪巖禪師亂藁〛

注)
浩刼膚功 - “큰 재앙에 공을 세웠다.”임진·정유 란에 승도들이 대거 참가해 국난을 수습했다.
容成 - 용성은 황제(黃帝) 시대의 대신(大臣)으로 역법(曆法)을 발명한 사람이다.
蓮花九品胎 - 정토(淨土) 신앙에서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들을 아홉으로 분류한다. 상품·중품·하품의 각 품에 상생·중생·하생이 있어 구품이 된다.

⦁送萬英沙彌 二首 만영 사미를 송별하다. 2수

別酒三盃盡 송별 주 석잔 다하자
離歌一曲哀 한곡 조 이별가 구슬프다.
龍門今日去 용문동천 오늘 나가면
象界幾時來 선계는 어느 때 돌아오나.
天上佳期近 천상 아름다운 기일 가까우니
人間巧夕催 인간은 칠석 재촉한다.
離愁亦不忍 별리 수심도 참지 못하니
歸路首頻回 귀로에 자주 고개 돌리는가.

注)
巧夕(교석) - 옛 풍속에 음력 7월 칠석(七夕)이면 부녀자들이 견우와 직녀 두 별에게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늘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을 걸교(乞巧)라 했던 데서 시작하여 교석은 곧 칠석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其二
風急天高積雨收 높은 하늘 세찬 바람에 장맛비 그치고
虎溪晴日水空流 맑게 갠 날 호계는 물만 속절없이 흐른다.
關山遠客多歸思 변방 먼 나그네 돌아가고픈 생각 많고
香海幽人惜別愁 향수의 바다 은자는 석별하자 수심 쌓인다.
橋會雙星當七夕 견우직녀 오작교에서 만나면 칠석이고
桐彫一葉屬初秋 오동나무 잎 시들어 떨어지면 첫가을 알린다.
樹雲千里情無限 천리의 친구 그리워하는 정 끝없으니
爲問那時續舊遊 어느 때나 옛날 유람 이을 거냐고 물어본다.
⟦雪巖雜著⟧

注)
萬英沙彌 - ⟪寶林寺重創記⟫에 따르면 현종10년(1669), 현종13년(1672) 보림사 주지를 지냈다.
香海 - 향수해(香水海).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다는 향수로 된 바다.
樹雲 - 멀리 있는 벗을 그리워할 때 쓰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에 우뚝 선 나무, 강 동쪽엔 저문 날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 한 데서 유래한다.

▲천관산 천관사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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