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夢詩(기몽시)/동춘 송준길
평생에 어르신 흠앙을 했었는데
세상을 떠난 뒤에 오히려 감동했고
꿈에서 깨어나 보니 달빛만이 가득하네.
平生欽仰退溪翁    沒世精神尙感通
평생흠앙퇴계옹    몰세정신상감통
此夜夢中承誨語    覺來山月滿窓
차야몽중승회어    각래산월만창롱

학문하는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았던 존경하는 스승이 있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시문을 통해 큰 영향을 받았다면 큰 스승으로 자리매김한단다.
조선 중기 성리학의 두 줄기는 퇴계와 율곡이 아니었나 싶다. 인격적으로도 큰 감동을 받았겠지만, 학문적으로 흠모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학문을 하면서 평생토록 퇴계 어르신을 흠앙했었는데,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그 정신에 오히려 늘 감통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꿈 깨고 보니 산에 걸친 달빛이 창살에 가득하네(記夢詩)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1606~1672)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어려서부터 율곡 이이를 사숙했고, 김장생의 문하생이 되기도 했다. 1624년(인조 2) 진사에 합격한 이후 학행으로 천거 받아 1630년 세마에 제수되었다. 우참판, 이조판서를 지내며 노론의 거두로 활약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평생토록 퇴계 어르신을 흠앙했었는데 /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그 정신에 오히려 늘 감통했네 // 이날 밤 꿈 속에서 큰 가르침을 받았는데 / 꿈을 깨고 보니 산에 걸친 달빛이 창살에 가득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꿈속에서 시를 쓰다 // 꿈속에서 기록한 시문]으로 번역된다. 몽유록 계통의 소설이 있는가 하면, 몽유시도 가끔 보게 된다. 평상시 보다는 훨씬 상상력이 높고, 미지의 세계를 달려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상으로만 여겼던 상상의 세계를 향해 가는 느낌을 받고 그곳에서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성현군자, 혹은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는 수가 많다.
시인도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평생을 두고 퇴계 선생을 만나고 싶었는데, 꿈길에서 만났다는 시상의 얼게다. 평생 동안 퇴계 어르신을 흠앙했었는데,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그 정신에 오히려 늘 감통했었다고 시상을 흩뿌리고 있다. 퇴계(1501~1570) 사후 100여년 후에 나타난 꿈이다. 학문의 길과 문학의 길은 그 생명이 길다는 점을 실감하게 되는 선경의 디딤돌이다.
화자는 후정의 얽히는 또 다른 사념에 빠지고 만다. 퇴계를 만났던 날 밤 꿈속에서 큰 가르침을 받았는데, 꿈을 깨고 보니 산에 걸친 달빛이 창살에 가득했었다는 감동적인 일을 꿈에 그린 시상이다. 평상시 받지 못한 큰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해 보는 대목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퇴계 선생 흠앙하여 그 정신에 감통했네, 꿈속의 가르침 받고 꿈을 깨니 달빛 가득’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平生: 평생. 欽仰: 흠앙하다. 흠모하고 우러르다. 退溪翁: 이퇴계 어르신. 沒世: 세상을 따난 뒤. 精神: 꼿꼿한 정신. 尙感通: 오히려 감통하다. // 此夜: 오늘 밤. 夢中: 꿈 속에. 承誨語: 큰 가르침을 받다. 覺: 꿈을 깨다. 來山月: 산에 와서 달을 보다. 滿窓   : 달빛이 창살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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