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김규정/한학자

▶次題天風山枕溟樓
장흥부 천풍산 탑산사 침명루에 차운하여 쓰다.

吟餘縱目極遐陬 먼 변방 실컷 구경하고 시 읊고서
只尺靑山也白頭 지척청산과 시름하다 또 흰머리 늘었다.
北斗窺人回卷幔 북두성 엿보려는 사람은 장막 말아 올리고
南溟人座屬登樓 남녘바다 여러 무리들은 조심해 누대 오른다.
九龍峯雨連兜率 구룡봉 빗줄기는 도솔천에 닿아있고
六月天風爽蓐收 유월 천풍산은 되레 서늘한 가을 산이다.
曾讀漢家輿地誌 일찍이 한나라 여지지에서 읽었으니
溫台未勝此地遊 자온대는 이 고을 유람보다 나을 수가 없다.

注)
南溟(남명) - 남쪽에 있는 큰 바다.
九龍峯(구룡봉) - 천관산(天冠山) 옥계동천(玉溪洞天) 아육왕탑(阿育王塔) 서쪽 정상에 있다.
蓐收(욕수) - 오행 중에 금(金)의 운을 맡은 신으로 가을을 관장한다.
漢家輿地誌 - 조선의 여지지를 말한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溫台(온대) - “자온대(自溫台)”.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窺岩里)에 있는 바위이다. 부여현 서쪽 5 리에 있다. 백마나루[白馬渡] 아래에 괴암(怪巖)이 물가에 걸터앉은 듯이 있으니 10여 인은 앉을 수 있다. 민간에 전해지기를 “의자왕이 매양 이 바위에서 놀았는데 그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졌으므로 그렇게 이름 붙였다.”라고 한다.

其二

一髮支提拔海陬 한 터럭 지제산 바다 모퉁이 공략하고
上房臺殿壓鰲頭 절집 누대전각들은 자라머리 산 진압한다.
深春細雨迷鮫室 늦은 봄 가랑비는 용궁을 미혹하고
薄暮寒鐘度唇樓 해거름 차가운 종소리는 신기루 건너간다.
萬國城池床下入 온 나라 성과 해자 마루 밑으로 달려들자
三韓天地望中收 삼한천지 좋은 경치는 눈앞에서 거두는구나.
探看瘦骨渾如化 수척한 몰골 찾아보다 마치 신선되는 듯하니
不必崆峒汗漫遊 속세 밖서 노니는데 질펀한 서울 필요하랴.
〈雪巖禪師亂藁〉

注)
鰲頭(오두) - 큰 자라의 머리에 얹혀 있다는 바다 속의 산 즉 오산(鰲山)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신선이 산다고 한다.
鮫室(교실) - 바다 속에 산다는 교인(鮫人) 즉 인어(人魚)들의 궁궐로 용궁을 말한다.
城池(성지) - 성 둘레에 파 놓은 못. 성호(城濠), 해자(垓子).
崆峒(공동) - 서울을 뜻하는 말이다. 옛사람은 북극성이 하늘 중앙에 있고 북극성의 아래는 공동이라고 여겼는데 낙양(洛陽)이 땅 중앙에 위치하므로 낙양을 공동이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역자 注)
다섯 칸 규모의 웅장한 침명루(枕溟樓) 누대(樓臺)에 오르면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고 골짝 송백(松栢)을 바라보면 바다처럼 수해(樹海)를 이루어 하늘과 나란하다.
한라산의 둥글고 뾰족한 봉우리는 아득하여 날아가는 갈매기 형상이다. 영조21년(乙丑1745) 사찰에 불이나 누대는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支提(天冠山)誌. P95~96⟫

[장흥군 역사연표]에는 “영조23년(丁卯1747) 탑산사 소실로 요사채만 남음.”이라는 기사가 있다.
〈長興地理志 · 邑誌모음. 長興文化院. 1992〉

▶次枕溟樓白谷韻
천관산 탑산사 침명루 백곡 처능 대사 시에 차운하다.

崖寘連雲傑閣牢 벼랑에 걸린 구름 속 높다란 누각
登來延賞眼成勞 올라 구경하자 어느덧 눈에 익숙해진다.
月明滄海龍吟動 달 밝은 푸른바다는 용들이 꿈틀대고
風細踈簾鷰語高 성긴 발 산들바람 따라 제비들 재잘거린다.
宇宙百年吾跌簜 광막한 우주 속 내 인생은 질탕하니
江山千載幾英豪 유구한 강산에 영웅호걸은 몇이나 되나.
時看白雪飜空碧 이따금 푸른 하늘 날리는 하얀 눈 구경하니
鵬擊天池送怒濤 붕새는 바다 박차며 거센 파도 일으킨다.
〈雪巖禪師亂藁〉

◆白谷(백곡) - 백곡 처능白谷處能(광해9년1617~숙종6년1680)이다.
배불항론(排佛抗論)의 대표적인 상소인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를 올렸다.
총 8천여 자가 넘는 분량으로 호불론(護佛論)의 입장에서 쓴 글로 유불선(儒佛仙)에 박통(博通)한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명문장이다. 현종2년(1661)경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의 불교 관련 상소문 중에서 분량이나 내용상으로 가장 대표적인 문헌이다.
천관산과 인연이 깊은 고승대덕으로 유불(儒佛)을 뛰어넘어 다수의 공경대부와 교류했고 높은 학문을 쌓아 시대정신(Zeitgeist. Spirit of the age)을 이끌어 나간 선각자다. 저서는 〈대각등계집大覺登階集〉이 있다.

附原韻 원래의 시를 붙이다.
-白谷處能(1617~1680)

千尺飛甍結構牢 천자 날렵한 용마루 단단하게 얽었으니
登臨偏覺匠工勞 누각 올라 새삼스럽게 목공의 노고 깨달았다.
柱根揷入南溟濶 기둥뿌리는 남쪽 넓은 바다에 들이박고서
簷角排磨北斗高 처마모서리 내밀어 높은 북두성 갈아 부순다.
佳景一時魂散亂 아름다운 정경은 일시에 영혼 산란하게 하니
壯遊三日氣雄豪 멋진 유람길 사흘에 웅장한 호기 맛보았다.
斜陽聘目耽羅島 해질녘 머나먼 탐라도에 눈길 돌리자
欹側孤雲侵怒濤 기울어진 외로운 구름은 성난 파도 습격한다.

출전 : 〈支提(天冠山)誌. P95~96〉,〈長興地理志․邑誌 모음. P107〉

역자 注)
오칸(五間) 침명루(枕溟樓)는 영조21년(乙丑1745)에 암자에 불이나 누각(樓閣)은 자연 허물어졌다. ≪支提(天冠山)誌. P96≫
현재 준수하게 중건한 대웅전과 요사채는 태고종 소속 주지 도성(道性)이 佛紀2554年(西紀2010年) 완공했다.
〈長興邑誌 丁卯誌. 영조23년(1747)〉 “古邑坊 山川” 條項에서 “탑산암(塔山庵)”을 모든 암자의 으뜸이라고 소개하면서 ‘침명루(枕溟樓)’를 ‘가허루(駕虛樓)’라고 달리 불렀고 ⟪支提(天冠山)誌⟫에서는 빠뜨린 백곡처능(白谷處能)의 원운(原韻) 결구(結句) 부분 “(斜陽聘目耽羅島 해질녘 머나먼 탐라도에 눈길 돌리자 欹側孤雲侵怒濤 기울어진 외로운 구름은 성난 파도 습격한다.)”을 기록해 놓아 전체를 복원할 수 있었다.

▶贈一華沙彌 일화 사미승에게 주다.

自笑功名上景鍾 공명 비웃어도 공로 경종에 새겼으니
祗要玄道繼西宗 삼가 불교 규찰하며 서역종교 계승한다.
捿神法佛黃金國 정신을 황금국 불법에 두자
絶祀簪纓白玉峯 사대부 백 옥봉 가문 제사가 끊겼구나.
楚鳳吳牛論世事 초나라 봉황 오나라 소 세상일 의논하니
團龍睡鴨禮眞客 수압향로 명품 차는 신선들 예법이다.
勸君更扣無生理 그대는 다시 무생의 이치 두드려서
敎導時人厭六蜂 세상 싫어하는 지금사람들 계도시켜라.
〈雪巖禪師亂藁〉

◆絶祀簪纓白玉峯 - 일화사미(一華沙彌)는 삼당 시인三唐詩人의 한사람인 장흥부 옥봉 백광훈(1537~1582)의 자손으로 명필이다.
法名은 日華이고 號는 瑞巖이다. 長興府 支提山 天冠寺人. 芙蓉靈觀 아래는 二派가 있는데 한파는 淸虛休靜系이고 한파는 浮休善修系이다.
부휴선수浮休善修 → 벽암각성碧巖覺性 → 취미수초翠微守初 → 설파민기雪坡敏機 → 빙곡덕현氷谷德玄 → 서암일화瑞岩日華 → 석담만의石潭萬冝 → 호봉성관虎峰聖舘이다.

注)
景鍾(경종) - 경종(景鍾)은 진(晉)나라 경공(景公)이 주조한 종이다. ≪국어(國語)≫ 〈진어(晉語)〉에 “옛날 노(潞)와 싸워 승리하였을 적에 진(秦)나라가 그 공로를 빼앗으려고 하자 위과가 몸소 보씨(輔氏)에서 진나라 군대를 퇴각시키니 경공이 친히 두회(杜回)에 머물며 그의 공로를 경종에다 새기라고 명하였다.”라고 하였다.
團龍(단용) - 송대(宋代)에 다엽(茶葉)의 정품(精品)으로 이름이 높았던 소룡단(小龍團) ․ 소봉단(小鳳團) 등 좋은 차를 의미한다.
睡鴨(수압) - 수압향로(睡鴨香爐). 잠자는 오리[鴨] 모양으로 만든 향로이다.
無生(무생) - 생기고 사라짐의 변화가 없다.

역자 注)
옥봉 백광훈 · 송호 백진남 父子는 영화체(왕희지체)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으나 후손인 일화대사는 광초(狂草)에 특장(特長)이 있었다.
국중(國中)에 널리 퍼졌다고 하나 역자는 아직 진품을 만나는 과분한 안복(眼福)을 누리지 못했다.
후대에 이르러 영남지방의 영파성규(影波聖奎)와 호남지방의 영파덕수(永坡德壽) 등 많은 명필들이 일화의 필법을 계승하였다.

▲천관산 탑산사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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