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6일자 본지 11면 보도는 ‘용반리 주민들의 군청 앞 시위 정당한 주장인가?’ 제하의 기사에서 ▶해결방법은 정도를 찾는 것이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의 요구가 관철되려면 정당성을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용반리 주민들의 요구는 정당성에 의문이 든다. 풍력발전건설로 마을에 피해가 있다면 법에 의뢰하여 보상받는 길도 있다. 장흥에 얼굴인 군청 앞 시위로 군민과 공무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지의 취재 중 이장과 서부발전의 의견은 많이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다만 추가로 풍력을 6기설치한다면 그때 주민수용성보장 차원에서 용반리와 보상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서부발전 측 답변이다.
하여 모든 사람들이 보고 느낄 때 군청 앞 시위보다는 마을 지도자와 서부발전은 새로운 협상을 시작하여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맞다.
지역 언론사로서 지역민의 편에서 생각해도 지금처럼 용반리 주민들의 시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시위는 작년부터 수 없이 하였으나 지금 얻는 것이 없다. 양보의 자세로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서 대화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면 용반리 주민들은 꿩도 매도 다 놓치고 하늘 쳐다보는 황당한 현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예감이 든다.

용반리 주민을 위한 편파적인 법은 없다. 법은 상식이다.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의 힘이 공정성을 잃으면 악으로 변한다. 이장과 마을 지도자들은 인내심을 갖고 주민의 이익을 위하여 누가 보더라도 이해되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노력하고 더 이상 시위는 백해무익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라고 보도하였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옳은 방향 제시로 지역신문의 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위의 가난과 고통은 나의 것이요.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가 좋은 것이다.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라고 프란체스코 교황은 말했다.

용반리 이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과거 보상은 필요 없다고 사업자와 주변의 협상 권고를 묵살하더니 풍력발전건설이 거의 100% 공정에 이른 지금은 그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지금이라면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용반리 측의 얘기는 보상협의는 사업자 측이 회관을 찾아와 제시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사업자 측은 보상을 하겠다는 확답은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선후가 다르다면 정리가 필요하다. 내용에 대한 문제점, 양측의 태도에 대한 문제점, 법률적 접근이 아니라 사회 통념상 미래 지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장은 자기를 희생하기로 결심해 놓고 주변에 의혹을 느끼게 하거나 지난 일에 과오를 주민들을 선동하여 관철시키려한다면 벌써 그 희생정신에 흠결이 생긴 것이다. 냉정한 마음으로 일을 대해야 오류를 범하지 않고 정당한 마음으로 도리를 생각해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삶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날 때 그 결과가 부정이든 긍정이든 비로소 그 이름값을 하는 것이다.
사업자 측은 용반리 주민들의 주장을 수용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용반리 주민들도 장흥군민에게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시위보다는 나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여 새로운 길을 찾는다면 용반리 주민들의 요구가 100% 수용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느 정도 충족의 길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단순하게 생각하고 정도를 찾아야 한다.

정정보도 합니다.
8월6일자 11면 기사 중
-최근 서부발전과 용반리 주민과의 대화가 있었다는데...
“용반리 이장과 주민대표라는 분들이 서부발전사무실 방문하여
반대투쟁하면서 사용된 비용과 보상금으로 13억5천만원을 요구했다.”
의 기사는 주민 대표 분들이 서부발전 사무실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서부발전 측에서 용반리 마을회관을 방문하여 나누었던 대화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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