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噫吁噓 上德下衰 君子之道 晦盲否塞 反覆沉痼已極矣 凡言君子者 或忠信而無禮文 或禮文而無忠信者有夫矣 非獨今也  昔棘子成曰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鞟 犬羊之鞟也 詩曰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盖言君子之禮 必以忠信爲質 而不可相無也 夫豈獨君子之道爲然 凡物亦然 昔臧文仲 居蔡 山節藻梲 不務本而謟瀆鬼神 當時以爲知 况無上法王梵殿 有質無文 而爲曉夕焚香祝聖之所乎 今夫新構地藏菴也 殖殖其庭 有覺其楹 噦噦其㝠 冝乎大覺身之攸芋也 然而有質無文 比如爲山九仞 未克一簣也 而止 而不進也 此亦一大所嗛曰 有山人某名者 雖不有祝鮀之侫 而宋朝之美矣 直而不枉 侗悾而信愿者也 志欲丹臒 手持募卷 足踵檀門 而夷告於誾誾君子 侃侃夫人 能無說繹而改諸乎 古人云 豊狐文豹 何罪之有哉 其皮爲之災也 今之金玉布帛 亦人之一皮也 老子曰飄風不崇朝 驟雨不終日 天地尙不能久 而况於人乎 伏願哀浮生之須臾 念珎財之爲皮 或金玉 或布帛 或麻縷 或絲絮 或五糓 或諸雜采 憗以與之 裨之助之 使自得之 招其祁岳契丹之俊流 而得以施手 塡其靑紅 以全丹雘之功 則山以之增輝 水以之增光 抑亦所謂巋然高閣 如矢斯蕀之 如翬斯飛矣 自此以後 登臨者 魂飜眼倒 莫不融其神心焉 則其助人興也不淺矣 非只此爾 佛之金身 嵬然煥然 郁郁乎千百年之後也 跡之推之 今之舍之施之裨之成之者 亦同歸乎上善之地 上德之基 合乎君子文質彬彬之大道也 無疑矣 能如是則豈啻獨善其身而已 能使天下後世之人 莫不止於至善之地也云 胡不勉哉 祝曰恩從祥風翺 德與和氣游 雍容垂拱闕 永億萬斯秋

출전 〈枕肱集〉下

▲고흥 팔영산

◆팔영산 지장암 단청 모연문

아아아, 상덕(上德)이 가라앉고 쇠퇴해 가니 군자의 도는 깜깜해지고 운수가 꽉 막히면서 고질적인 악습을 반복하기를 이미 극에 달했다.
대체로 군자라는 자를 말하면 간혹 충신(忠信)하기는 해도 예문(禮文, 禮法)이 없거나 간혹 예문은 있어도 충신하지 않은 사내가 있다.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다.
옛날 극자성이 말하기를, “군자는 질박(質樸)할 뿐이다. 어찌 문식(文飾)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자 자공이 말하기를, “애석하도다. 선생의 말씀은 군자다우나 실수를 하는 그 혀는 사마(駟馬, 한 수레를 끄는 네 필의 말)도 따라잡지 못하겠구나. 문식은 질박과 같고 질박은 문식과 같다. 범이나 표범의 가죽도 털을 깎아버리면 개나 양의 털 없는 가죽과 같다.”라고 대답했다.
시(詩)에 말하기를,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귀엽고 아름다운 눈에 흑백이 분명하니 흰 바탕으로 채색을 한다.”라고 했다.
이는 대개 군자의 예문은 반드시 충신을 바탕으로 삼아 서로 없어서는 안 됨을 말했다. 어찌 유독 군자의 도만 그러하겠는가. 모든 만물이 다 그러하다.
옛날에 장문중(藏文仲)이 큰 거북 등껍질을 보관하면서 기둥 끝에 산(山) 모양을 새기고 대들보에는 수초(水草) 무늬를 그려 넣어 화려하게 꾸몄으니 이는 근본에는 힘쓰지 않고 귀신에게 아첨하려고 한 것인데도 당시에는 지혜롭다고 여겼다.
하물며 위없는(無上) 부처(法王)의 범전(梵殿, 佛堂)에 질(質)만 있고 문(文)이 없다면 새벽과 저녁에 분향하고 축성(祝聖)하는 장소로 삼을 수 있겠는가.
지금 지장암(地藏庵)을 새로 세우면서 그 뜰은 평평하고 넓으며 그 기둥은 높고 곧아 깊숙하고 아늑한 방안은 대각의 몸(大覺身)이 거처하기에 마땅하다.
그러나 질만 있고 문이 없으니 비유하자면 아홉 길의 산(山)을 쌓을 적에 한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그만두고 완성하지 못한 것과 같다.
이것도 아주 큰 한스러운 점이라고 말해야 한다. 어떤 산인(山人)은 이름을 모(某)라고 하는데 비록 축타(祝鮀)와 같은 말솜씨도 없고 송조(宋朝)와 같은 미모도 없지만 솔직하여 굽힐 줄 모르고 우직하며 성실한 사람이다.
단청하려는 뜻을 갖고서 모연문(慕緣文)을 손에 쥐고 단문(檀門, 시주)의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며 군자와 부인들에게 부드럽고 꿋꿋하게 간청하니 기쁜 마음으로 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탐스러운 여우와 문채 나는 표범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 가죽 때문에 재앙을 당한다.”라고 했다. 오늘의 금옥과 포백(베와 비단)은 사람의 가죽에 해당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폭풍은 아침나절도 못가고 소낙비는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하늘과 땅도 오히려 오래 갈 수가 없는데 하물며 사람의 경우이겠는가.”라고 했다.
엎드려 바라건대 덧없는 인생은 매우 짧음을 슬퍼하고 진귀한 재물은 가죽이 된다는 생각으로 금옥이나 포백이나 마루(麻縷 삼베)나 사서(絲絮 솜)나 오곡이나 모든 잡채(雜采, 五色으로 물들인 실끈) 등을 내놓아 보태고 도와주어 자득(自得, 스스로 만족하다)하게  했으면 한다.
기악(祁岳)과 거란(契丹) 같은 뛰어난 화가들을 초청해 솜씨를 발휘하게 해서 청색과 홍색으로 단청의 일을 마친다면 산은 빛을 더하고 물은 한층 영예를 높일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이른바 높은 누각이 우뚝 솟았다는 것은 화살이 가시처럼 날아가는 것 같고 꿩이 비상하는 모습과 같다.
이후로부터는 이 암자에 올라오는 사람은 정신이 새로워지고 눈이 번쩍 뜨여 자신의 심신이 융통(融通)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사람의 흥취를 돕는 일이 얕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것뿐만이 아니다. 부처의 금신(金身)이 우뚝 솟고 빛나서 천백년 뒤에도 화려할 것이니 자취를 헤아린다면 오늘 보시해서 도와주고 완성한 사람들도 상선(上善)의 경지와 상덕(上德)의 터전으로 함께 돌아가면서 문질(文質)이 빈빈(彬彬)한 군자의 대도에 부합할 것임이 의심 없다.
이와 같이 할 수만 있다면 어찌 유독 자기 몸만 선하게 할 수 있을 뿐이겠는가.
천하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지극히 완전한 경지에 머물게 하지 않음이 없게 할 것이니 어떻게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축원하기를,

恩從祥風翺 은혜는 상서로운 바람 따라 비상하고
德與和氣游 덕은 화락한 기운과 노닐고 있구나.
雍容垂拱闕 궁성에서 온화한 모습으로 수공하니
永億萬斯秋 억만년토록 영원히 만복을 누리리라.

注)
垂拱 - 〈서경〉 무성(武成)에 나오는 말로 성군(聖君)이 옷을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 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이 잘 다스려지게 하는 무위지치(無爲之治)를 뜻하는 말이다.


◆與京客 한양 손님에게 주다.
-無用秀演(1651~1719)

餘雨踈踈遠客來 먼 길손 오자 가랑비 듬성듬성 내리고
林深路黑滑蒼笞 깊은 숲 깜깜한 길은 푸른 이끼 미끄럽다.
開窓欲寫殷勤意 창 열고 은근한 뜻 읊으려하니
霽後春山翠萬堆 비 갠 봄 산은 일만 무더기가 검푸르다.

▶謹呈栢庵 삼가 백암 성총 화상에게 올리다.

丈夫一委其身後 장부가 한번 이 몸을 맡겼으면
白刃當胸不易心 흰 칼날이 가슴을 쳐도 마음 바꾸지 않는다.
況乎世界伊麽熱 더구나 세상은 이처럼 뜨거운데
誰外庭前栢樹陰 누가 정전백수의 그늘을 벗어나리오.

▶題水石亭 수석정에 쓰다.

快亭臨水石 물과 바위에 임한 시원한 정자
高臥彼㦲仙 한가한 저 사람은 신선인가 보다.
嶺日簷端射 산봉우리 햇살은 처마 끝을 쏘고
溪風檻孔穿 계곡 세찬 바람에 난간 구멍이 뚫린다.
躍來魚率性 물고기는 천성을 따라 도약하고
飛去鳥能天 산새는 본성을 다하여 날아 가구나.
觀物還觀我 만물 관조하다 날 관조하니
我然物亦然 나도 그러하고 만물 또한 그러하구나.

注)
水石亭 - “갑오년(1714, 숙종40) 여름에 내가 목수로 하여금 선원禪院에서 가까운 동쪽 시냇가에 겨우 한 칸 되는 작은 정자를 짓게 하고는 수석水石이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無用堂集〉下.  조계산 송광 선원 곁에 있고 무용 대사는 수석정기를 남겼다.

▶次冷上人韻 냉 상인의 시에 차운하다.

方丈何時飛短笻 방장산은 언제 짧은 지팡이 날렸던가.
袖端猶有石門風 소매 끝에는 아직도 쌍계사 흔적 남아 있다.
衲輕百結身邊破 헐렁한 납의는 기워도 너덜너덜하고
道大三千眼底空 도는 큰지라 삼천대천세계는 안중에도 없구나.
白足冷於皆骨水 사문은 개골산 물보다 차갑고
靑眸活却妙香楓 파란 눈동자는 묘향산 단풍보다 산뜻하다.
喜君說盡山川美 그대가 반가워서 산천의 아름다움 다 말하니
無數名區一席中 무수한 명승지가 이 자리에 다 모였구나.

▶偶吟 우연히 읊다.

何物於斯貫古今 이 무슨 물건이기에 고금을 꿰었는가.
我愁穿却電中針 난 번갯불 속에서 바늘을 꿸까 되레 걱정한다.
溪流百曲黃頭舌 일백 구비 시냇물은 석가모니의 혓바닥이고
栢樹千章碧眼心 일천 그루 잣나무는 달마대사의 마음이라.
僧拂錫歸苔逕細 중은 석장 휘두르며 이끼 낀 오솔길로 돌아가고
鶴將雛入白雲深 학은 새끼 데리고서 깊은 흰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誰知高臥東山客 동산에 높이 누워있는 나그네 누가 알거나
能以乾坤作枕衾 능히 천지를 베개와 이불로 삼고 있는 줄을.

출전 〈無用堂遺稿〉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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