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개인적인 용무를 위해 장흥읍사무소에 갔다. 들어서는 순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흰 머리의 중년 남성 공무원은 말할 틈도 없이 내 손에 들린 우편물을 낚아챘다. 마치 너 따위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가득하니 내가 대신 읽어주겠다는 듯했다. 결국 그 자신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는지 젊은 여성 공무원에게 우편물을 건넸다. 그녀 또한 단 한마디의 인사도 설명도 없이 곧바로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더니 그 일을 착실히 실천하고 또 실천하는 그들의 언행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하지만  나의 상황보다 더한 일은 내 바로 옆에서 일어났다.

  읍사무소에서 보낸 우편물을 움켜쥐고 복지과에 방문한 할머니는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라며 도움을 청했다. 중년의 여성 공무원은 귀찮다는 듯 우편물을 낚아채더니 “요금 감면이요”라며 무성의한 한마디를 던졌다. 할머니는 다시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연로한 분이 이렇게 반응할 때,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귀가 어두우신가? 용어가 좀 어려웠나?” 등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상황을 가늠한 후 대응하리라.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기도, 말하기도 귀찮다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짜증 섞인 말투로 목소리를 높였다. “요금감면이요”
  복지과 공무원의 대응이 이러하니 다른 과의 민원 대응 수준은 안 봐도 뻔했다. 나 역시 한심하고 귀찮고 무식한 군민들 상대에 지쳤다는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젊은 남자 공무원과 수화기를 통해 씨름하다 돌아왔다. 나의 민원을 응대한 그는 자신들이 어떤 우편물을 보냈는지 그에 대해 문의가 들어왔을 때 어떤 방향으로 안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 일을 한다는 이유로 월급을 받고 있음에도 말이다.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장흥읍사무소 공무원의 안일하고 상식 없는 대응이 어처구니없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담당 업무에 대해 이렇게 무지하고 무관심해도 월급 받는 거야?”, “열심히 일한다”라는 한 마디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나?”, “일을 통해 보람을 느낀다”라는 사고방식이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인가?  일을 향한 열정과 목표가 없다면 당장에 관두고 다른 일을 하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흔히 말하는 「철밥통」을 꿰차겠다는 사심을 앞세우며 자신의 월급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망각하는 「바보」로 살아가는 이유를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다니던 병원 의사 말투가 매섭다면 다른 병원을 알아본다. 좀 더 싹싹한 말투로 응대해 주는 게 좋아서 단골이었던 미용실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방문할 때마다 불쾌감만 안겨주는 행정 서비스는 이사하지 않는 이상 바꿀 수 없다. 피할 수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기에 지방자치단체 공직자들의 언어폭력과 불친절한 대응은 「최악의 갑질」이다. 더 어이없는 현실은 그들의 월급은 내가 낸 세금의 일부이며, 우리의 민원과 요구는 우리가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장흥 공무원들의 언행은 불쌍한 흥부에게 큰 선심 쓴다는 놀부처럼 고약하기 그지없었다.

  최근 코로나로 공무원들이 힘든 나날을 보낸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 내가 방문한 그 날이 좀 특별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복지과 담당 공무원의 응대는 충격이었다.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이 복지과를 방문해 이런 대접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울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금 치민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복지과 공무원들은 담당 업무와 민원인들의 특징을 늘 숙지하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 매뉴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이기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복지과 공무원의 자세는 찾아오는 「귀찮은 군민」을 「치우기」에 급급했다. 그 과정에 약자를 위한 배려와 친절은 없었다.

  우리가 대하는 대부분의 공직자는 임명직이다. 선출직이 여론과 세상의 반응을  중요시할 때 임명직은 윗선의 의중에 민감히 반응한다. 장흥군 행정서비스에 대한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장되게 표현해 보자면, 임명직 공무원에게 조직의 윗자리 분들이 아닌 일반 국민은 신경 써봤자 큰 득이 될 게 없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임명직 공무원도 공직자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공직자의 존재 이유이다. 세상이 공직자의 청렴결백과 성실을 기대하고 또 요구하는 것도 그들이 다름 아닌 「공직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을 장흥군의 공무원은 철저히 망각하는 듯했다.

  공직자이기 때문에 늘 반추해야 하는 일련의 원칙과 자세를 철저히 무시하는 장흥군의 공무원들 덕분에 나는 어머니 혼자 읍사무소나 군청에 가시지 않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직업윤리도 공감 능력도 없는 이들이 그득한 곳에서 또 무슨 험할 꼴을 당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도 공무원이라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워, 이웃을 무시하고 깔보는 이들을 상대할 일이 없길 그저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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