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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탐방(6)/ 김규정/한학자詠月大師原始要終行狀-침굉헌 현변 枕肱軒 懸辯(1616~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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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02  10: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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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서

   
 

일부러 남국을 마음껏 참례하면서 부휴선수 대사를 찾아가 승당했고 이어서 서산에 올라 휴정에게 의탁해 입실했다.
당시 혜안이 활짝 열린 것은 일월이 하늘 한가운데 있는 것과 같았고 진실한 교법에 통달하여 곤과 고래가 물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
더하여 천 번 정련한 지혜의 불(千精智火)로 마음속의 오개(五盖)를 깨우치고 백번 단련한 현묘한 화로(百鍊玄爐)로 마음속의 삼장(三障)을 제거했다.
이로 말미암아 석자의 쇠 주둥이를 날카롭게 하고 한 짝의 구리 눈동자를 차갑게 하여 필봉으로 외로운 봉황을 놀라게 하고 말 재주로 뭇 말들을 눈물 흘리게 하였다.
토끼 뿔 비껴들고 열반의 오묘한 문을 열어젖히고 거북이의 털을 일으켜 세워 공가의 먼지와 때를 쓸어 없애면서 깨달음의 언덕에 황금으로 된 노끈을 두르고 길 잃은 사람을 위해 목탁을 두드렸으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한숨 쉬며 말하기를 “조사의 도가 쇠미해져 범부의 근기가 혼매하고 용렬한 까닭에 오묘하고 원만한 세계를 어지럽혀 파당을 나누고 남북으로 제멋대로 흘러들어 절집을 고무해 필법을 겨루며 창과 방패가 서로 대적하게 되었으니 심하구나.
사람들이 이기기를 좋아하니 부처가 다시 출현해야 숨을 죽이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것이요. 달마대사가 되돌아 와야만 목을 움츠리고 입을 다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반존자의 입정을 계승하고 혜만 선사의 천진함을 그대로 따르는가하면 금강산에 석장을 내려놓고 사찰에서 석가불을 봉양하기도 하고 지리산에 관을 벗어 걸어두고 향로봉에서 신라 최치원의 자취를 찾기도 하였다.
그런 뒤에 신령한 용이 바다 밑에 숨는 것처럼 전라도 낙안군 금화산에서 덕을 감추고 얼룩무늬 표범이 수풀 속에 몸을 잠복한 것처럼 낙안(樂安) 연동(蓮洞)마을에 이름을 감췄다.
이 때문에 물과 구름에 의지해서 넉넉하고 마음 편하게 살면서 철우(鐵牛)를 채찍질해 달을 향해 사자후(獅子吼)를 하게 하였고 복계(複溪)를 따라 내려가며 거리낌 없이 노닐면서 석마(石馬)를 고삐매어 바람결에 울게 하였다.
오호라, 돌아갈 적에는 임종 게를 지어 신족통(神足通)들에게 유시하고 영결하였다.
구름과 안개가 비참해 하는 가운데 우연히 병에 걸려 땔나무가 다 타고 불이 재가 되듯이 담담하게 앉아 세상을 떠났다.
실로 순치 11년 갑오년(효종5년1654) 10월 29일 축시라 행년은 95세요. 선랍은 73년 이었다.
다비할 때에는 천상의 음악이 하늘로 치솟고 기이한 향내가 동천에 가득하였다.
상족제자 무하자 등이 모가 난 바위(巖角)에서 금골을 들어 올려 산허리 석종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또 남긴 글들 중에서 맑고 고운 풍격(淸邵)의 글을 채집하여 모아 한권으로 만든 다음에 훌륭한 공장을 시켜 출판하도록 하여 꽃다운 행적을 온 세상에 전해지게 하였다.
남긴 시문은 구구마다 마음을 밝히고 말마다 눈을 뜨게 하는 것들이었으니 형산(荊山)에서 까치에게 던지는 옥돌처럼 조각조각 부서지고 무너졌으며 교인(鮫人)의 눈물방울이 소반에 떨어져 만들어진 진주처럼 알알이 흩어졌다고 말할 만하다.
비록 그러나 비단옷 위에 홑옷을 걸친 것처럼 아름다운 색깔이 꿰맨 틈사이로 드러났고 밀실에서 등불을 밝힌 것처럼 밝은 빛이 창 틈 사이를 뚫고 나왔다.
비유하자면 대체로 바늘 한 땀의 신선한 계교도 버리고 지는 노을을 덧입고서는 세 짝의 돌 발우를 품고 자루에 조각달을 감춘 격이었다.
그러므로 선을 보아도 기뻐하지 않았으니 “대나무 잎이 쪽빛과 같고” 악을 보아도 싫어하지 않았으니 “연꽃이 물속에 착근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즉 묘한 뜻을 깨달아 한도를 넘어서니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하는 보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도에 통달하여 범속을 초월한 일은 유령(幽靈)을 부처님께 외복(畏服)시킨 것이니 이 어찌 세상의 표준이요. 조사 문하의 법도(規矩)라고 말해야만 되지 않겠는가. 오호라, 위대하구나.
현종2년(1661) 8월 침굉헌 현변은 삼가 쓰다.

注)
龍藏 -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세상을 떠난지 6백 년 뒤에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감춰져 있는 《화엄경(華嚴經)》을 가져 왔다는 전설(傳說)이 있다.
玉毫 - 여래(如來) 32상(相)의 하나로, 미간(眉間)에 있다는 백옥과 같은 흰 털을 말하는데, 거기에서 대광명(大光明)을 발산하여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비춘다고 한다. 옥호(玉豪)라고도 한다.
隆慶二三白馬之年 - 융경 6년은 임신년 서기 1572년으로 백말의 해가 아니라 검은 원숭이의 해이다. 백말의 해는 1570년 庚午年이다.
지은이의 오류이다.
心猿 - 심원의마(心猿意馬)의 약칭으로, 즉 사람의 망념(妄念)을 일으키는 마음이 마치 미쳐 내닫는 말〔狂奔之馬〕이나 날뛰는 원숭이〔飛躍之猿〕처럼 일정한 방향이 없이 사방으로 마구 내달리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五盖(오개) - 오온(五蘊), 즉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이다.
三障 - 불도 수행(佛道修行)과 선근(善根)에 중대한 장애가 되는 세 가지. 번뇌장(煩惱障), 업장(業障), 이숙장(李熟障)을 말한다.
鐵觜 (철취) - 당나라 때 조주선사는 말을 잘하여 “쇠 주둥이”라고 불렸다.
空假(공가) - 삼제(三諦) 중에서 공제(空諦)와 가제(假諦)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일체의 제법(諸法)이 불공(佛空), 불유(不有)의 중정 절대(中正絶對)라는 진리이다.
黃頭老 - 부처를 가리킨다. 부처의 고향인 카필라바스투성을 황두거소(黃頭居所)라고 번역한 데서 온 말이다.
碧眼師 - 푸른 눈이란 본디 서역(西域)에서 온 불교 선종(禪宗)의 동토(東土) 초조(初祖)인 달마대사(達磨大師)를 벽안호승(碧眼胡僧)이라 칭한 데서 온 말.
郍畔(나반) - 나반존자(那畔尊者). 우리나라 불교에서만 독성각 또는 삼성각에 봉안해 신앙대상으로 삼는 불교성자. 독성수ㆍ독성존자.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 건립에 대한 기록이 조선 후기에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전래시기에 이를 포섭하여 모신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慧滿(혜만) - 중국 선종禪宗 제2조 혜가대사慧可大師(487~593)의 제자인 승나선사僧那禪師의 제자 혜만선사慧滿禪師.  형양 사람으로 성은 장씨(張氏). 처음 본사에서 승나선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검약에다 뜻을 두어서 바늘 두 개만 갖고 다니면서 겨울에는 걸식하고 누더기 깁기를 하다가 여름이 되면 그것을 버렸다.
行年九旬有五 - 행년 95세는 오류인 듯하다. 1572년 태어나 1654년 열반했으니 83세가 맞는 것 같다.
禪臈七跌加三 - 선랍도 73세가 아니고 71세인 듯하다.
闍維(사유) - 불교에서 쓰는 용어로 사람이 죽은 뒤에 화장하는 것을 말한다. 다비(茶毘)라고도 한다.
鮫人泣盤珠 - 바다 속에 사는 교인(鮫人)이 물가의 인가(人家)에 머물다가 헤어질 때 눈물방울을 짜내어 진주 구슬로 변하게 한 뒤 소반에 가득 담아서 주인에게 이별 선물로 주었다는 전설이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오도부(吳都賦) 주(注)에 나온다.
法臣 - 부처님은 법왕이고 법왕의 신하이니 보살을 말함.
規矩 - 규구준승(規矩準繩). 목수가 쓰는 그림쇠와 자, 수준기, 먹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

■영월 청학詠月淸學(선조5년1572~효종5년1654)
법명法名은 청학淸學. 헌호軒號는 영월당詠月堂. 字는 수현守玄. 속성俗姓은 홍씨洪氏. 全羅道 長興府 有恥村 生. 父는 홍광명洪光明이고 母는 강씨姜氏이다.
13세에 가지산 보림사로 출가해 묘향산 청허선사(淸虛禪師) 문하에서 전법제자(傳法弟子)가 되었다. 평소 시를 즐겨 지었고 丁酉亂 後 金華山 澄光寺를 重創하고 山內庵子를 整備했다.
세수世壽는 83세이고 하랍夏臘 71년에 입적했다. 제자는 무하자無何子, 법정法正, 인징印澄, 명정明淨, 학순學淳 等이 있다. 저서 《詠月堂大師文集》은 全羅道 樂安郡 金華山 澄光寺에서 현종2년(1661) 天冠山 名僧 침굉헌枕肱軒 현변懸辯(광해8년1616~숙종10년1684)이 주도해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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