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窃惟金棺放光 採瑞蹟於龍藏 玉毫收彩 鐫妙躅於龜碑 故道炤人天 名垂宇宙 感前聖之殊䡄 慕後賢之高標 大師父洪光明 法諱淸學 字守玄 詠月其軒號也 應跡靑丘 降神於冠山勝府 寄胎姜氏 誕生於有恥名村 時乃隆慶二三 白馬之年 仲呂十四 黃昏之夕 夙負碩德 早抱中和 喜怒不形 言笑有便 年甫十三 厭鷄肋之世味 仰洞山之辭親 愛熊掌之淸閑 效雲門之欺傅 遂乃脫白衣於伽智 透鐵網之江魚 削綠髮於寶林 出玉籠之野鶴 於是慕波輪之東謁 碎骨於香城 學善財之南遊 忘身於法界 以故飽叅南國 訪脩公而昇堂 繼登西山 投靜老而入室 當時豁開慧眼 如日月之當天 朗詣眞乘 若鯤鯨之飮水 加以千精智火 五盖銷於心猿 百鍊玄爐 三障爍於意馬 由是利三尺之鐵觜 寒一雙之銅眸 驚孤鳳於筆鋒 泣群馬於口給  可堪橫拈兔角 扣開涅槃之妙門 竪起龜毛 拂盡空假之塵垢 界金繩於覺岸 振木鐸於迷途 乃喟曰 祖道衰微 凡機昧劣 汨妙湛而分派 南北橫流 皷眞界而爭鋒 矛盾相敵 甚矣 人之好勝也 黃頭老翻出 歛氣而呑聲 碧眼師却來 縮項而藏舌 故乃繼郍畔之入㝎 踵慧滿之任眞 憇錫蓬萊 奉曇佛於香界 掛冠方丈 訪崔仙於爐峰 然後 匿德金華 神龍隱於海底 韜名蓮洞  文豹潜於林中 是以依水雲而棲遅 鞭鐵牛以哮月 沿複溪而放曠 轡石馬以嘶風 噫 做終偈於臨歸 諭神足而與訣 雲悲霧慘 偶爾而立痾 薪盡火灰 泊然而坐化 寔維順治十一年甲午十月卄九日丑時也 行年九旬有五 禪臈七跌加三 其闍維之際 天樂掀空 異香滿洞 上足無何子等 捧金骨於巖角 安石鍾於山腰 抑又採淸邵於遺篇 彙爲一軸 倩良工而綉榟 芳流八垓 句句明心 言言活目 可謂荊山抵鵲玉 片片而摧頹 鮫人泣盤珠 箇箇而歷落 雖然綗衣尙錦 美色著於縫罅 密室燃燈 明耀徹於窓隙 大抵棄一針之淸計 衣添落霞 蘊三隻之石盂 囊藏缺月 故觀善而不喜 羌竹葉之同藍 覩惡而不嫌 曰蓮花之着水 然則通妙旨兮出度 示權衡之法臣 達大道兮超凡 服幽靈於覺帝 奚不曰俶世之標準 祖門之䂓矩乎 嗚呼偉哉

時維順治辛丑仲秋枕肱軒懸辯謹書

출전 ⟦詠月堂大師文集⟧

❍영월대사가 처음 태어나서 입적할 때까지의 행장

삼가 생각하건대 금으로 된 관(金棺)에서는 빛을 내고 용궁(龍宮)에는 상서로운 유적인 화엄경이 감춰져 있고 옥호상(玉毫相)에서 뿜어 나온 광채를 거둔 오묘한 자취는 거북 빗돌(龜碑)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도가 인천(人天)을 비추어 이름을 세상에 전한 옛날 성인(聖人)들의 뛰어난 법도에 감화된다면 뒤따른 현인(賢人)들의 높은 의표(高標)도 흠모하게 되는 것이다.
대사의 아버지 성명은 홍광명(洪光明)으로 대사의 법휘(法諱)는 청학(淸學)이고 자는 수현(守玄)이며 영월당(詠月堂)은 그의 헌호(軒號)이다.
우리나라에서 외물의 자취에 응해 관산 고을의 뛰어난 곳에 강신하여 강씨(姜氏)의 모태에 맡겨 유치(有恥)라 불리는 마을에서 탄생하셨으니 때는 바로 융경6년(壬申年선조5년1572)으로 백마의 해인 사월 열 나흗날 저녁 황혼 무렵이다.
일찌감치 석덕의 자질을 지니고서 중화(中和)의 경지를 이루어 기쁨과 성냄을 드러내지 않았고 말하고 웃는 데에도 상대를 비위 맞출 줄 알았다.
나이 겨우 열세 살 되었을 적에 버리기도 아깝고 먹자니 맛이 없는 세상이 싫어 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가 부모 곁을 떠난 것을 부러워하였으며 웅장(熊掌)의 청한(淸閑)함을 사랑하여 운문(雲門)이 스승 속이던 일(欺傅)을 본받고자 하였다.
마침내 가지산(伽智山)에서 백의(白衣)를 벗어던지고 쇠 그물을 통과한 강 물고기가 되어 보림사에서 녹발을 깎고서는 옥 둥우리를 탈출한 들판의 학이 되었다.
이에 살타파륜보살이 동쪽으로 가서 법용보살을 알현하고 묘향성에서 분골쇄신한 일을 사모하고 선재동자가 남쪽을 여행하며 법계에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을 배우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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