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旅舘逢友人 壬辰之亂故云云
여관에서 벗을 만나다. 임진년 난리 때문에 읊어본다.


胡塵冥四界 오랑캐 난리에 천하가 캄캄하니
旅客意如何 나그네의 뜻은 어떠한가.
塞嶺愁雲暗 변방 산 고개 먹구름 시름겹고
江湖風雨多 강호에는 비바람 몰아치는구나.
華亭鳴獨鶴 화정서는 한 마리 학 울고 있자
枯木聚群鴉 마른나무에는 까마귀 떼 지어 날아든다.
邂逅舊相識 예전부터 알던 벗 만나고서
論懷月欲斜 회한 털어놓자 달마저 지려한다.

⦁送資胤沙彌皈故鄕 자윤 사미가 고향으로 돌아가자 전송하다.

年少淨遊子 나 어린 청정한 나그네
從前渾不知 예전엔 전혀 알지 못했었다.
偶然相曾得 우연히 서로 알아보고
三載共棲遲 삼년을 함께 머물렀다오.
破鏡不重照 반달은 다시 비추지 않고
落花難上枝 낙화는 가지에 오르기 어렵구나.
今分西海去 오늘 헤어져 서해로 가면
何日再東皈 언제나 다시 동으로 돌아오려나.
 
⦁寄報德方丈 보덕 방장께 부치다.

非唯兩地隔重雲 두 곳 아니라도 짙은 구름이 가리니
雪滿溪橋路不分 눈 덮인 개울 다리 길 분간 할 수가 없다.
舊情說盡何時好 옛정 다 말하고서 어느 때나 회포 풀까
百鳥喃喃花正芬 온갖 새들 지저귀고 꽃 들은 만발했다.

⦁過淸潤亭題 청윤정을 찾아가 쓰다.

海天窮處勝奇觀 바닷가 끝 경승 기이한 경관
萬頃滄波眼界寬 만이랑 푸른 물결은 시야가 확 트인다.
仙客共遊風流在 선객과 함께 놀자 풍류가 제법 일고
笛聲和月落雲間 젓대소리 달과 어울려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淸風 맑은 바람

玉川乘此上朝天 옥천자는 이 청풍 타고 하늘로 조회 갔고
邵子吟來楊柳邊 소강절은 버드나무 가에서 시를 읊고 있다.
今日南窓洗蒸鬱 오늘 남창에서 무더운 더위 씻어내니
却疑身作羽衣仙 되레 몸은 날개 달린 신선된 듯하구나.

注)
玉川 - 당나라 시인 노동의 〈다가(茶歌)〉에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은 어느 곳에 있는고. 옥천자가 이 청풍 타고 돌아가고 싶구나.〔蓬萊山在何處 玉川子乘此淸風欲歸去〕”라는 말이 나온다. 옥천자(玉川子)는 노동의 호이다.
楊柳邊 -  소강절의 시 월도오동상음(月到梧桐上吟)에 “오동나무 위에는 달이 이르고, 버드나무 가에는 바람이 불어오네. 서재가 깊숙하고 사람도 조용하니, 이 경치를 누구와 더불어 말을 할까.〔月到梧桐上 風來楊柳邊 院深人復靜 此景共誰言〕”라고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擊壤集 卷12》

⦁戱贈少年 二首 소년에게 장난삼아 지어 주다. 2수

廣寒宮裡厭孤眠 광한궁에서 홀로 자기도 싫증나니
落在人間二八年 세상에 나와 벌써 열여섯 해가 흘렀구나.
相逢一夜同床夢 하룻밤 상봉해 똑 같은 꿈을 꾸었으니
始覺多生有宿緣 다생 겁에 질긴 인연 비로소 알았다.


姑射山中第一人 막고야산에서 제일가는 사람
黃庭誤讀謫江村 황정경 잘못 읽어 강촌에 귀양 왔구나.
鳳含丹札下雲漢 단봉이 서찰 물고 은하수에서 내려와
不晩龍樓奉至尊 지존 떠받들다 태자궁에는 늦지 않으리다.

注)
姑射山(고야산) - 막고야산(藐姑射山) 속에 산다고 하는 선녀이다. 막고야산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산 이름이다.
黃庭 - 황정경(黃庭經). 도교에서 쓰는 경문이나 경전. 
鳳含丹札下雲漢 - 황제가 조서(詔書)를 내림을 말한다. 후조(後趙)의 석호(石虎)가 오색 종이에 조서를 써서 나무로 만든 봉새의 입에 물리어 천하에 반포하였다. 운한(雲漢 은하수)은 하늘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임금이 사는 대궐의 뜻으로 쓰였다.

⦁秋山送別 가을 산을 결별하며 보내다.

窮秋霜葉落前階 가을 다해 단풍 섬돌 앞에 지자
踏盡殘紅心欲裂 마음 아파서 남은 잎 다 밟고 다녔다.
嗟子離別一何頻 아, 그대와 이별은 어찌 그리도 뻔질나나
把手相看成淚血 손잡고서 마주보며 피눈물 뿌린다.

⦁夏雲多奇峯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가 많다.

非丈非瀛亦非蓬 방장도 영주도 봉래도 아닌 것이
白雲飜作瑞奇峯 흰 구름 뒤치자 상서롭고 기이한 봉우리 된다.
長風忽起還千狀 강한 바람 갑자기 일자 천태만상 그려내고
萬里蒼蒼一碧空 일만 리가 아득한 하나의 푸른 하늘이라.

注)
夏雲多奇峯 -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가 많다.〔夏雲多奇峰〕”라는 명구를 인용, 도잠(陶潛)이 지은 사시(四時)라는 제목의 오언절구 승구(承拘)에 나온다. 《陶靖節集 卷3》

⦁贈行脚沙彌 운수 행각하는 사미승에게 주다.

衣穿雉嶽靑千朶 푸른 천 송이 치악산에서 옷 해지고
冠破金剛萬仭峯 만 길 봉 금강산은 오르다 송라립 망가졌다.
五臺山路行應徧 오대산 가는 길은 응당 두루 알려졌고
香嶽鳴泉聽不窮 묘향산은 샘물 소리 듣다보면 한정 없으리다.

注)
冠 - 승관(僧冠). 옛날에는 승려가 쓰던 모자를 일컬어 ‘승립(僧笠)’이라고 하였다. 승립은 그 모양과 형태가 크게 5개(승관, 송락, 고깔, 굴갓, 대삿갓)로 구분되는데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드물다.
승립 중에서도 “송라립(松蘿笠)” 이라고 불리는 것은 승려가 평상시에 착용하던 모자다. 이 모자는 소나무에 기생하는 송라를 엮어 만든 것으로 윗부분만 촘촘하게 엮고 아랫부분은 투박하게 그대로 두었으며 정수리 부분이 뚫려있는 형태다.

⦁憶遠人 멀리 있는 사람이 생각나서

四五年來別遠人 사오년 간 이별하고 멀리 있는 사람
相思憔悴隔重雲 시들한 그리운 정은 먹장구름이 막는구나.
前秋木末飛霜葉 지난 해 가을 나무 끝 단풍은 날리고
今夏江頭柳絮紛 금년 여름 강가에서는 버들 솜털 어지럽다.
良話每違行不盡 정겨운 대화 매번 어긋나도 끝이 없고
佳期長阻各由門 아름다운 기약 늘 막혀도 각자 문 통과한다.
悵然獨立斜陽外 슬프게도 석양 너머에 외로이 서서
舊恨新愁謾自迍 묵은 한과 새 시름에 괜히 절로 머뭇거린다.

注)
霜葉 - 서리를 맞아 단풍이 든 잎.

⦁哭同住道伴 함께 사는 도반이 입적하자 이에 곡하다.

孤鶴欲拂連天翼 군계고학은 하늘 닿던 날개 버리려 하나
應是心期萬里行 응당 이 마음은 일만 리 행을 기약한다오.
落落香岑雲外碧 쓸쓸한 묘향산은 구름 밖에 푸르고
嵬嵬楓嶽日邊靑 높고 큰 풍악산은 하늘 끝에 홀로 우뚝 섰다,
百年計活冠兼衲 한평생 생활은 송라립에 겸해 납의고
千載生涯錫與瓶 일천년 생애는 석장과 호리병뿐이었다네.
馹驥揮鞭騰踏去 역참 천리마 채찍 가하며 쏜살같이 달려가니
駑駘回首杳㝠㝠 노둔한 말은 고개 돌리자 아득하기만 하다.
他年如有幸相思 훗날 만일 다행하게 서로가 그리워지거든
令我須開碧眼睛 부디 나의 푸른 눈동자 활짝 열리게 해다오.

注)
孤鶴 - 군계고학(群鷄孤鶴). 닭의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말.

❍霽月堂大師集跋文

惟我大師翁 道德之量 蕩蕩焉恢恢焉 逈出思議之表 豈可以有無生滅而計之者哉 所謂尊莫尊乎道 美莫美乎德 其謂此歟 是故我師患道德不充乎身 不患勢位不充乎己 永不務於翰墨 爲法切於忘軀  旣不定住一山 故自所錄法施等語 或因僧求語 或與客道話 或擧古敬言 發初心信手意而游毫之 是乃荆人以玉抵鵲頭 然而尠所得 而手目隨所聞而錄之 欲刊行世有意矣 且應和門人也 一日擧似上人 上人欣然勒榟 不日成之 噫 千載之下 主張師者 非公而誰 余亦隨跋共輔涓埃 正如將爝火引天光耳 
 
崇禎十年丁丑 五月 端陽 小弟子密彥盥手百拜謹跋

❍제월당 대사집 발문

오직 우리 대사 옹만이 도덕의 국량이 한 없이 넓고 여유로웠다. 생각하고 헤아리는 용모가 월등하게 뛰어났으니 어찌 유무생멸(有無生滅)을 경영할 수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른바 ‶도에 제일 높은 자를 높이고 덕에 제일 아름다운 자를 아름답게 여긴다.″는 것이 이것을 두고 한말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우리 대사는 도덕이 몸에 채워지지 않을까를 걱정했지 권세와 지위가 자기 몸에 채워지지 않을까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영원히 글씨 쓰거나 글 짓는 일에도 힘쓰지 않았고 불법(佛法)을 위해 몸을 돌보지도 않았으니 산 하나에서도 머무르는 곳이 일정치 않아서 혼자서 지은 법 보시(法施) 등의 법어는 어떤 납승이 한마디 말을 부탁하거나 선객(禪客)에게 수신도덕을 설명하는 말이거나 옛날의 일을 들어 행동은 조심스럽고 말은 믿음직하게 하라는 것으로 손가는 대로 초심의 의사를 드러냈지만 성실했다. 이것은 바로 ‶형인(荊人)이 박옥(璞玉)을 던져서 까치를 잡는다.″라고 한다. 그러나 적게 얻은 것을 손목이 따라가는 대로 들은 것을 기록했으니 세상에서 간행하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다. 우선 응화(應和) 문인으로 하루는 상인(上人)에게 들어보였더니 상인도 즐거워하며 새겨서 출판하자(上梓)고해서 하루가 못되어 완성되었다. 아, 천년의 뒤에도 주장(主張, 立論)할 스승은 공이 아니면 누구이겠습니까. 나도 산 넘고 물 건너 사소한 일을 함께 도왔으니 바로 이와 같다. 횃불로써 새벽을 인도할 뿐이로다.

숭정10년 정축(인조15년1637) 5월 단오 소 제자 밀언은 손을 씻고 일 백배를 올리며 삼가 발문을 쓴다.

注)
玉抵鵲頭 - 재주 가진 이가 자신의 훌륭함을 자랑하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옥을 흔한 돌멩이처럼 던져서 까치나 잡는다.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에 “형산의 사람들은 박옥을 던져서 까치를 잡는다.〔荊山之人 以玉抵鵲〕”라고 했다.
涓埃(연애) - 가느다란 물줄기와 티끌처럼 보잘것없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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