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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서거 111주년 기념 장흥신문 기획특집(4)【옥중 집필본 동양평화론】전감(前鑑)에서 문답(問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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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12  1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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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본 원문에 스며들어 시적인 상상력으로 휘감긴
안중근! 동양평화 [각론]을 가슴으로 뿌리며

   
 

▼지난호에 이어서
(08) 그러나 한~청 두 나라 국민은 이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일본군대를 환영하고 그들을 위해 물건을 운반해 주었고, 도로를 닦았으며, 정탐해주는 등 일의 수고로움을 있는 힘을 다 기울였다. 이것은 무슨 이유였겠는가.
(09) 안중근의 동양평화를 위하고, 세계평화를 위하는 이 일이 더욱 돋보여서 뿌리 깊은 평자의 시상이 더욱 두터웠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아지기를 바라면서 다짐해본다.
(10) 거기에는 두 가지 큰 사유가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가 개전할 때, 일본천황이 선전포고하는 글에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독립을 공고히 한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대의(大義)가 청천백일(靑天白日)의 빛보다 더 밝았기 때문에 한ㆍ청 인사는 지혜로운 일이나 어리석은 일을 막론하고 일치동심해서 복종했음이 그 하나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과 러시아의 다툼이 황백인종(黃白人種)의 경쟁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난날의 원수졌던 심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도리어 큰 하나의 인종 사랑 무리(愛種黨)를 이루었으니, 이도 또한 인정의 순리라 가히 합리적인 이유 중 다른 하나다.
(11) 통쾌하도다! 장하도다! 수백 년 동안 행악하던 백인종의 선봉을 북소리 한 번에 크게 부수었다. 가히 천고의 희한한 일이며 만방이 기념할 자취이다. 당시 한국과 청국 두 나라의 뜻있는 이들이 기약도 없이 함께 기뻐해 마지않은 것은 일본의 정략(政略)이나 일을 헤쳐나감이 동서양 천지가 개벽한 뒤로 가장 뛰어난 대사업이며, 시원스런 일로 스스로 헤아렸기 때문이었으리라.
(12) 슬프다! 천만 번 의외로 승리하고 개선한 후로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며 어질고 약한 것 같은 인종인 한국을 억압하여 조약을 맺고, 만주의 창춘(長春) 이남인 한국의 조차(祖借)를 빙자하여 점거하였다. 세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의심이 홀연히 일어나서 일본의 위대한 명성(名聲)과 정대한 공훈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만행을 일삼는 러시아보다 더 못된 나라로 보이게 되었다.
(13) 슬프다.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서 어찌 뱀이나 고양이 같은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와 같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로다. 동양 평화와 한국 독립에 대한 문제는 이미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 이목에 드러나 금석(金石)처럼 믿게 되었고 한?청 두 나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음에랴! 이와 같은 사상은 비록 천신의 능력으로도 소멸시키기 어려울 것이거늘 하물며 한두 사람의 지모(智謨)로 어찌 말살할 수가 있었겠는가.
(14) 지금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뻗쳐오는(西勢東漸) 환난을 동양 사람이 일치단결해서 극력 방어함이 최상책이라는 것은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극히 모두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러한 순리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치고 우의(友誼)를 끊어 스스로 방휼의 형세(蚌鷸之勢)[2]를 만들어 어부(漁夫)를 기다리는 듯 하는 것인가. 한ㆍ청 양국인의 소망은 크게 깨져 버리고 말았다.
(15) 만약 일본이 그러한 정략을 고치지 않고 핍박이 날로 심해진다면 부득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망할지언정 차마 같은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한ㆍ청 두 나라 사람의 폐부(肺腑)에서 용솟음쳐서 상하 일체가 되어 스스로 백인(白人)의 앞잡이가 될 것은 불을 보듯이 아주 뻔한 형세리라.
(16) 그렇게 되면 동양의 수억 황인종 가운데 수많은 뜻있는 인사와 정의로운 사나이가 어찌 수수방관(袖手傍觀)하고 앉아 동양 전체가 까맣게 타죽는 참상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래서 동양 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얼빈에서 개전했고, 담판(談判)하는 자리를 뤼쑨구(旅順口)로 정했으며, 이어 동양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바이다. 여러분의 눈으로 깊이 살펴보아 주기 바란다.
1910년 경술 2월 대한국인 안중근 뤼쑨 옥중에서 쓰다.
3. [서문]을 통해 본 동양평화론 시적인 지향세계 : 서문 16단락에 의함
위 문답을 포함하는 제안 작품으로 불러서 곱게 앉혔다. 아래 율시 한 편의 첫째 [기구]는 승구를 끓어 당겼고, 둘째 [승구]는 전구를 끌어내 화합했으며, 셋째 [전구]는 넷째 [결구]와 어울림 한 마당을 【서문】이란 대문에 보다 잘 채워질 수 있도록 얹어 두었다. 위 서문구의 율시는 8구인 수함경미(首頷頸尾)를, 4구인 기승전결(起承轉結)로 보았으며, [전감]이 잘 불러드린 조력제란 역할이 손쉽겠다. [敍光]은 평자의 아호(雅號)다.

論說東洋應七思  (논설동양응칠사)
序章趣旨願平治  (서장취지원평치)
合成散敗千秋理  (합성산패천추리)
厭死偕生萬古規  (염사해생만고규)
聖道淵源先世繼  (성도연원선세계)
名文誡訓後人垂  (명문계훈후인수)
精微奉讀誰無感  (정미봉독수무감)
獨立吾邦永劫期  (독립오방영겁기)
=敍光,『東洋平和論【序文】』의 決心과感想

동양평화 논설을 보게 되면 응칠 선생이 생각나고
서문(序文)의 취지는 평화롭게 다스려지길 원하네
합하면 이뤄지고 흩어지면 패함은 천추의 이치요
죽기 싫어해 함께하면 그 生함은 만고의 법일지니
성인의 도의 연원을 선인들이 그보다는 이어왔고
이름난 문장 훈계 후인들 손에 면면하게 내려왔네
정미한 논조 받들어 읽으면 누가 감동이 없겠는가
우리나라 독립되길 긴 세월동안 기약할 수 있겠네.

시인은 서문(序文)에 놓인 16단의 동양평화론 시적인 재료를 어루만지며, 시상을 일으켜 냈다. 동양평화론을 읽게 되면 응칠 안중근 선생이 간절하게 생각나고, 서문 취지문을 구구절절을 보면 평화롭게 다스려지길 원했었다는 평화론자의 감미로운 여유로움 속에 평화의 깊은 맛에 취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못했다. 우리 선현들의 말씀에 “합하면 이뤄지고 흩어지면 패함은 천추의 이치”라는 의미를 생각하니 죽기 싫어하여 함께하게 된다면 그 生함만은 만고의 법이라고 설파했다. 이렇게 본다면 나라 백성의 영원한 삶을 구가하는 시인의 노래였음을 다시금 알게 했으니, 서문(序文)의 취지는 우리나라가 평화롭게 다스려지길 원했다.
화자의 뚝심은 성인 도의 연원을 선인들이 그보다는 길게 이어왔다는 농익은 역사를 가만히 들먹거린다. 거기에는 선현들의 이름난 문장과 훈계들이 후인들 손에 면면하게 내려왔다면서 역사적인 커다란 감동의 글을 어루만지며 영원하게 진해짐을 당부한다. 이제는 정미한 논조를 받들면서 더욱 자세히 읽으면 누가 감동이 없겠는가를 되뇌더니 두 손을 비벼대며, 간절한 마음으로 달래는 화자의 모습을 만난다. 정미한 논조를 받들어 수차례 읽게 되면 누구나 감동이 되살아나면서 되묻게 되어, 하늘에 자기 소원을 비는 간곡한 마음으로 우리나라가 하루속히 독립되기를 빌고 빈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긴 세월동안을 넉넉한 마음으로 다시 또 기약하겠다면서…

「공(公)의 의지와 기개는 달과 같이 맑아서 어려운 일을 능히 해냈고, 큰 뜻을 이루었네」에서 보이듯이 민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안 의사께 바쳤던 헌시(獻詩)다.

 大哉安義士 (대재안의사) 
안중근 의사가 이룩한 커다란 그 뜻으로
 明月海東淸 (명월해동청) 
밝은 달도 우리나라를 더 맑게 비추었네
 奇妙手中物 (기묘수중물) 
손에는 그 기묘한 물건인 권총을 들고서
 獨成人不成 (독성인부성) 
한 사람이 이루긴 아주 어려운 일이었네.
 =시제 : 〈安重根[Ⅰ]〉 / 『율산 한성택(전남 순천 별량 1888~1962)』 2020-3-26 최초발표

발표일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다가 의사가 순국한지 110주년 되는 날을 기했다. 이번에 찾아낸 한시 3편은 [安重根]이란 시제로 광주에서 발굴되었다. 이 한시는 당시 안 의사의 의거와 순국 소식을 들은 지역의 한학자가 작시한 것으로 안중근을 향한 우리 민족 당시의 정서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日人들이 보이지 않는 틈을 타서 동네 ‘제각(祭閣)이나 당집’ 같은 은밀한 곳에서 뚝심 큰 애국심도 기렸다.

저격의 괴수였음을 증명해 보인 시적인 착상 한 수다. 수많은 사람들 틈을 뚫고 두려워하거나 그런 기색 없이 [원수의 옷자락을 피로 적시게 했다]면서 바친 헌시(獻詩)다.

 血濺仇者衣 (혈천구자의) 
원수의 옷자락 피로 적시게 했으니
何惜一身毁 (하석일신훼) 
어찌 죽는 것을 그리도 아깝다하랴
椎秦中副車 (추진중부거) 
저 수괴 저격하고도 실패한 사람은
子房婦人耳 (자방부인이) 
잘못 생긴 여자 같은 장량뿐이라오. 
=시제 〈安重根〉/사사단(査士端)
무명시인. 1909년 당시의 중국문인)

시인은 청일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토의 악랄함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던 터다. 안중근이 쏜 세발의 총성이 모두 다 명중하였으니 어디 실패할 수가 있었던가. 시인 사사단(査士端)은 안중근 명사격도 칭송한다. 무엇을 두려웠으랴. 대범하게 명중을 시키고도 ‘대한독립 만세’를 원한 없이 당당하게 불렀으니. 그러기에 화자는 장부가 [어찌 죽는 것을 그리도 아깝다하랴]라는 소망 한 마디를 떳떳하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2. 전감(前鑑)

1. [전감(前鑑)]의 속뜻과 동양평화론에 얽힌 배경의 세계
전감(前鑑)은 [앞사람이 한 일을 거울삼아 어떻게 처신할 지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원론적인 뜻을 담고 있다. 더 쉽게 풀이해 놓아보면 [지난 일을 거울삼아 비춰보는 일이나 또는 지난날의 본받을 만한 썩 감동적인 일] 등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는 지난 역사를 되새겨 일본 군국주의의 무모함을 경계하는 뜻까지 깊숙하게 포함되고 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이미 커다란 욕심을 갖고 있었다면 어찌 자기 수단껏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고 이와 같이 유럽 백인종과의 조약 가운데 삽입하여 영원히 풀지 못한 숙제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처사는 도무지 어이없는 발상이리. 또한 미국대통령이 이미 중재하는 주인공이 되었을지라도 곧 한국이 유럽과 미국이란 터무니없는 사이에 끼어있는 것처럼 되었으니 중재자도 필시 크게 놀라서 기이하게 여겼다. 이런 터무니없는 사이에 낀 전감이다.
1904년 2월 8일 중국 랴오뚱 반도의 뤼순 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극동함대가 순식간에 높은 화염에 휩싸였다. 작은 정보유출이나 선전포고도 없이 한밤중에 기습해 온 적의 함선에서 일장기가 휘날렸다. 이 공격으로 동아시아를 둘러싸고 대립하던 두 열강 사이에 일어난 전쟁 시작이었으니 러,일 전쟁이다. 이 때 일본이 맨 먼저 겨냥한 나라가 조선이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반도는 일본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두보였다. 일본은 1876년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 무력외교)를 통해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고, 끝내 조선을 개항시킨다.
조선에 관심을 갖는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호시탐탐 교두보를 찾기 위해 조선을 노렸다. 청나라는 조선의 종주국이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했고, 러시아는 부동항(不凍港)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이래저래 조선은 지정학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군사적인 요충지였던 셈이다. 전쟁은 일본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이로 인해 1895년 4월 15일 청나라와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했다.

2. [전감]에서 보이는 동양평화론 사실적인 배경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서문]에 16문단, [전감]에 40문단을 배열했고, [현상ㆍ복선ㆍ문답]은 모두 빈집이었다. 고른 평설을 순서대로 위 [3개집]에도 10각론씩 배열했다.

(01)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서남북의 어느 주(洲)를 막론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대세(大勢)의 번복(飜覆)이었고, 알 수 없는 것은 인심의 변천이었다.
(02) 지난날(甲午年.1894년) 일ㆍ청 전역(日淸戰役)을 보더라도 그 때 조선국의 서절배(鼠竊輩) 동학당(同學黨)의 소요로 인연해서 청ㆍ일 양국이 동병해서 건너왔고 무단하게 개전(開戰)을 펼쳐서 서로들 자주 충돌하였다.
(03) 청국이 패(敗)해 일본이 이기고 승승장구, 요동(遼東)의 반을 점령하였다. 요험(要險)인 뤼순(旅順)을 함락시키고 황해함대(黃海艦隊)를 격파한 후 마관(馬關)에서 담판을 열어 조약을 체결하여 대만(臺灣)을 할양받고 2억원을 배상금으로 받기로 하였다. 이는 일본의 유신(維新)후 하나의 커다란 기념사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04) 청국은 물자가 풍부하고 땅이 넓어 일본에 비하면 수십 배는 족히 되는데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패했다던가. 예로부터 청국인은 스스로를 중화대국(中華大國)이라 일컫고 다른 나라를 오랑캐라 일러 교만이 극심하였으며 더구나 권신척족(權臣戚族)이 국권을 천농(擅弄)을 하였고, 신민(臣民)과 원수를 삼으면서 상하가 불화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치욕을 당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겠다.
(05) 일본은 유신 이래로 민족이 화목하지 못하고 이러한 다툼이 끊임이 없었으나 그 외교적 정쟁이 생겨난 후로는 집안싸움(同室操戈之變)이 하루아침에 화해가 되어 연합을 혼성하고 한 덩어리 애국당(愛國黨)을 이루었으므로 이와 같이 개가를 올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친절한 외인(外人)이 다투는 형제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06) 이 때의 「러시아」의 행동을 기억할지어다. 당일에 동양함대(東洋艦隊)가 조직되고 「프랑스ㆍ독일」 양국이 연합하여 「요코하마」(橫港) 해상에서 크게 항의를 제출하니 요동반도(遼東半島)가 청국에 환부되고 배상금 상당액수가 감액되었다. 그 외면적인 행동을 보면 가히 천하의 공법(公法)이고 정의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랑이(虎狼)의 심술보다 더 사납다고 하겠다.
(07) 불과 수년 동안에 민첩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뤼순구(旅順口)를 조차(租借)한 후에 군항(軍港)을 확장하고 철도를 부설하였다. 이런 일의 근본을 생각해 보면 「러시아」 사람이 수십년 이래로 봉천이남(奉天以南) 대련(大連) 뤼순 우장(牛莊) 등지에 부동항(不凍港) 한 곳을 억지로라도 가지고 싶은 욕심이 불과 같았고 밀물과도 같았다. 그러나 감히 하수를 못한 것은 청국이 한번 영(英)ㆍ불(佛) 양국의 천진(天津) 침략을 받은 이후로 관동(關東)의 각진(各鎭)에 신식 병마(兵馬)를 많이 설비했기 때문에 감히 생심(生心)을 다 못하고 단지 끊임없이 침만 흘리면서 오랫동안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에 이르러 그들의 셈법이 꼭 들어맞았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장생탐진포럼 회원들의 안중근 의사 사당 해동사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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