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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서거 112주년 기념 장흥신문 기획특집(3)【옥중 집필본 동양평화론】전감(前鑑)에서 문답(問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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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05  11: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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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본 원문에 스며들어 시적인 상상력으로 휘감긴
안중근! 동양평화 [각론]을 가슴으로 뿌리며

Ⅳ. 안중근 [동양평화론] 논지(論旨)는 일본침략 노골화다.
안중근 5단계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작품이다. [서문⇒전감] 2개 각론만 방긋 열어놓고, [현상⇒복선⇒문답]은 3개 문패만 붙여놓았을 뿐 주인장은 홀연히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났다. 한반도는 한국인이 문을 여닫고, 중ㆍ일(中ㆍ日)에도 함께 이 문을 만지도록 허락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만 유럽처럼 공동화폐를 공유하며, 불침번의 군대만을 주둔하게 하는 등 이상향을 꾸밀 수 있을지 그 방안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위 안중근 동양평화 총론의 문은 2019-10-19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평화사도직 모임]에서 이기우 신부 측의 도움을 받아 발표한 내용 일부를 다듬어 수용했다.

   
 

다만 평자는 발표문 설명이 빈약하거나, 내용이 부실한 점을 꼬집고 눈을 부라려 가면서 가필(加筆)과 수정을 멈추지 않았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군 의사의 이토 하르빈 저격이후 110여년동안 상당한 기고문, 토론문, 논설문 등이 발표되었지만, 이만한 마룻대 상량문(上樑文)은 일찍이 찾지를 못했다. 동양평화론 [서문(序文)⇒전감(前鑑)] 원문만 유언처럼 외롭게 남겨둔 채, [현상(現狀)⇒복선(伏線)⇒문답(問答)] 등도 따로 없었는데, 평자가 [서문⇒전감⇒현상⇒복선⇒문답] 등 5개 설문을 다 짊어지고도 마지막에 [서문(序文)]에 반하는 [결구(結句)]까지 놓아가면서 논설문 체제로 기댄다.

   
▲ 대한독립이 쓰인 태극기(출처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 의사는 「安應七歷史」에 이어 「東洋平和論」을 옥중에서 집필했으나 일제의 위약으로 「序文」과 본문 중 「前鑑(一)」만 쓰고, 「現狀(二)」 「伏線(三)」 「問答(四)」은 겨우 목차만 제시하고 미완완성인 채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고 말았다. 이 동양평화론은 1979년 9월 1일 일본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 ‘七條淸美文書’ 중 「安重根傳記及論說」에 합철된 필사본을 재인용했다. 번역의 진술이 잘못되거나 표기상의 오자를 바로잡으면서 평설문을 통합 집필이란 진두지휘를 가볍게 서둘러 보았음도 아울러 밝힌다.

안중근이 동양평화를 주장했던 배경은 만인이 다 알고 있는 일본의 억압과 불법침범은 다음 여덟 가지다. 【첫째는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여 3국 인민 중에서 회원을 모집하고 재정확보는 1인 당 회비 1원씩을 모금하여 운영할 것.
둘째는 3국이 공동하여 은행을 설립하고 각국이 공용하는 화폐를 발행하여 금융~경제면에서 공동발전을 도모할 것.
셋째는 각국의 중요한 지역에 평화회의 지부와 은행지점을 개설하여 재정적 안정을 도모할 것.
넷째는 영세 중립지 뤼순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본군함 5~6척을 정박시켜 놓을 것. 다섯째는 3국의 청년들로 군단을 편성하여 최소한 2개 국어로 교육시켜 평화군을 양성할 것.
여섯째는 일본의 지도 아래 한~청 두 나라의 상공업을 발전시켜 공동으로 경제발전에 노력할 것.

일곱째는 [한ㆍ청ㆍ일] 세 나라 황제가 국제적으로 신임을 얻기 위해 합동으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대관(戴冠)을 받을 것.
여덟 번째는 안중근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점은 침략자 일본에 대하여 한국과 청에서 그 동안 행했던 침략만행을 기필코 반성하기를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1. 안중근이 법정에서 밝힌 이토의 죄상 15가지
힘에 의한 극동평화론을 앞세워 한국을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안중근은 다음과 같은 열다섯 가지로 조목조목 자상하게 밝혔다. 【죄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죄2, 한국 황제를 폐위한 죄. 죄3,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 강제로 체결한 죄. 죄4,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죄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죄6,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죄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죄8, 군대를 해산 시킨 죄. 죄9, 교육을 방해한 죄. 죄10, 한국인들의 유학을 금지시킨 죄. 죄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운 죄. 죄12, 한국인이 일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거짓말을 퍼뜨린 죄. 죄13,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천황을 속인 죄. 죄14,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죄15,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등 한국민 생명과 재산을 한꺼번에 위협하는 일을 낱낱이 지적하였으니, 그 밝은 혜안이 많이 놀랍고도 두텁다 하겠다.

2 동양평화론의 배경에는 [천주교리]에 흠뻑 취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독 안중근 홀로 이토식의 극동평화론을 저지하고 거짓부렁이를 신랄하게

   
▲ 안중근 의사와 형제들의 면회 모습 (출처 독립기념관)

폭로하고자 하얼빈 거사를 결행했음을 우리는 다시금 그 진상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한다. 이와 같은 점을 동양에서 실현되기를 바랐던 참된 평화를 알리고자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남겼으니 우리는 경의를 표하지 아니할 수 없겠다.

안중근의 동양평화 개념은 어떠한 사상적 또는 시대사적 맥락에서 형성되었을까? 지금까지 많은 안중근 연구자들은 그의 동양평화론이 동아시아와 관련된 이 시기에 지적자원의 영향 아래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출발한다. 당시의 [문명개화론자]들이 전개한 삼국공영론 내지는 삼국제휴론 등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기도 했다. 이런 어정쩡한 이론들이 배경이 되었겠지만, 아무렴해도 프랑스에서 독실하게 전래된 천주교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보는 견해가 우월하다고 본다. 프랑스에서 부임한 빌렘 신부(한국명 홍석구 신부(1860~1936)와 8년 동안이나 함께 하면서 귀에 익도록 들었던 알라스-로렌 지방 영향은 대단하다고 보는 견해다. 이런 [천주교리]가 안중근의 생각을 머릿돌처럼 감싸고돌았음도 알겠다.

Ⅴ. 안중근 동양평화론 [각론(各論)]의 걸음마는 매우 바빴다.
안중근은 [서문⇒전감]에서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그어놓고, [현상⇒복선⇒문답]은 [과거⇔현재⇔미래]라는 평행의 복선(伏線)만 그어놓았다. 그것도 순한문 글씨로 동양인이 알아보기 쉽게 명시해 놓았다. 이를 감안하여 단계마다 8줄 율시 한 수를 각각 놓고 결심과 감상이 서렸던 헌시(獻詩) 한두 편씩을 놓았다. 잘 챙겨 놓은 8줄 율시는 [천지인 삼재설(天地人 三才說)]에 따라 시제(각론)이 의미하는 바에 따라 분석 통합하는 상징성과 지향점 내지는 종합성이란 의미 속에 철썩 같이 꽁꽁 묶어두었다. 惡을 미워하되 惡에 물든 죄인에게 善을 보여주었으며, 惡에 시달리는 동포들에게 같은 善을 살아가라고 격려한 후에 홀연히 떠난 인간, 도마란 세례명으로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하느님 사랑으로 겨레 사랑을 증거하고 떠났던 그가 바로 안중근이다.

안중근 5단계 동양평화론은 계층식이고 계통적인 체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유로화가 나오기 90년 전에 이를 잘 짚어가면서 예언했다거나, 100년 전에 김대중 평화이론 일부가 은근하게 스며있음까지 짐작할 수 있어서 매우 놀랍다. 안중근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에 있다는 평가가 많고 보면 밝은 그의 혜안이 많이 두텁다. 이런 밝은 혜안을 배경삼아 5단계 용어의 정의와 동양평화론의 배경을 정리하면서 율시 한 수와 안중근을 추모하는 명사의 절구 한 두 수로 그 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려한다. 성실하고 올곧게 살다간 안중근 흔적을 헌시(獻詩)로 기리려한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주장하려했던 [실천 방안]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한 아름 담겼다. 영토대국, 인구대국, 경제대국의 틈바구니 속에 낀 한국을 구하려는 불타는 욕망은 물론 죽음과 맞바꾸려는 철저한 민족의식 국가의식들이 가슴속에 이글거렸다.
그래서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다음 5대 항목에 대한 특별한 문학적ㆍ철학적 지향세계가 물씬거린다. [나눔의 미학ㆍ배려의 미학]이란 황색인만의 특별함도 덧보인다.

① 뤼순을 중립지대로 하여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의 협력을 위한 기구를 설치할 것.
②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의 공동사용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사용할 것.
③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이 연합군을 창설해 서양 제국주의 침략에 공동으로 맞설 것.
④ 대한제국과 청은 일본제국이란 별도의 지도 아래 경제적인 특별 개발에 힘쓸 것.
⑤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의 황제가 로마 교황의 중재 아래,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인 특별한 관계를 맺을 것이란 실천방안이 은은하게 깔려 보인다.

만약에 위와 같은 5가지 항목이 받아드려져 [동양평화와 경제개혁]에 힘썼더라면 우리의 경제는 한 단계 상승하는 커다란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현재 어렵게 사는 우리의 현실은 물론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을 구제하는데도 크게 일조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중근이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하듯이 부르짖었던 EU와 같은 경제 선진국 앞서는 지도까지 [나눔과 배려의 정신]으로 보다 쉽게 달성되지는 않았을까?

1. 서문(序文)

1. [서문]의 속뜻과 동양평화론에 얽힌 배경
안중근 동양평화론 5단계 서문에서는 이 글을 써야할 필연적인 이유를 밝혀두고 있다. 일본은 철석같았던 [이토약속]을 깨고 한~청~러를 야금야금 제 네들 영토화 내지는 침식화로 휘둘렀다. 이와 같이 일본은 청~일 전쟁을 통해 침략의 당위성을 이끌어 내면서 거짓 명분을 내세웠던 그러한 이유를 차곡차곡 쌓아만 가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러~일 전쟁의 참화는 더 해했으면 더 했지, 차마 눈으로 보고나서 입으로 형용할 수 없다는 평화를 염원하는 나라들의 평가가 나온다. 무기를 통한 힘이 있는 자의 만행이 19세기말 우리 정치지형을 요동치게 만들면서 현실화되어 가고 말았다. 이를 [초잠식지(稍蠶食之)] 라 했으니, 안중근은 참담하게 통회했다.

1894년 7월~1895년 4월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을 배경으로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벌어졌던 우리에게 비참한 선물을 안기고 말았다. 갑오전쟁을 계기로 조선에 진주했던 청군과 일군의 군사적 대립이 전면전으로 발전하며 발발(勃發)했던 것도 한 요인이 되었다. 결국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했던 일본이 경복궁의 침탈과 강압으로 친일 내각을 구성한 후 청나라에서는 독립을 사주한데 이어, 7월 25일 아산 앞바다에서 일본해군이 청 해군을 크게 격파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평양성 전투와 황해해전에서까지 압승하고, 청나라의 랴오뚱 반도와 뤼순을 점령하면서까지 청군을 궤멸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시모노세키 조약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맺어졌으며, 이 조약으로 인해 일본은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2. [서문]에서 보이는 동양평화론 사실적인 배경
안중근 동양평화론은 [서문]에 16문단, [전감]에 40문단을 배열했지만, [현상ㆍ복선ㆍ문답]은 모두 빈집이었다. 고른 평설을 순서대로 위 [4개집]에 각각 10문단씩 임의로 고루 안배했다. 때문에 각 집 명과 내용이 어휘적인 측면에서 맞지 않을 수도 있다.
(01) 대저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에 분명히 정해져 있는 이치이다. 지금 세계는 동서(東西)로 나뉘어져 있고, 인종도 각각 달라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실용기계 연구에 농업이나 상업보다 더욱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새 발명인 전기포(電氣砲 : 기관총), 비행선(飛行船), 침수정(浸水艇 : 잠수함)은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하고 사물(事物)을 해치는 기계들이다.
(02)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물(犧牲物 : 하늘과 땅이나 사당의 신에게 제사지낼 때 쓰는 짐승, 소, 돼지, 양 따위)처럼 (사람이) 버려서,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03)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밝은 세계에 이 무슨 엉뚱한 광경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이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은 똑 같은 이치다.
(04) 그 근본을 따져보면 예로부터 동양 민족은 다만 문학(文學)에만 힘을 쓰고 제 나라만 조심해 지켰을 뿐이지 도무지 한 치의 유럽 땅도 침입해 빼앗지 않았다 했으니 오대주(5大洲) 위의 사람이나 짐승, 초목까지도 다 알고 있는 사실에 기인한다.
(05) 그런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가까이는 수백 년 이래로 도덕(道德)을 까맣게 잊고 날로 무력을 일삼으며 경쟁하는 마음을 양성해서 조금도 꺼리는 기색이 없다. 그 중 러시아가 더욱 심했었다. 그 폭행과 잔인한 해악이 서구(西歐)나 동아(東亞)의 어느 곳이고 간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06) 악이 차고 죄가 넘쳐 신(神)과 사람이 다 같이 성낸 까닭에 하늘이 한 매듭을 짓기 위해 동해 가운데 조그만 섬나라인 일본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강대국인 러시아를 만주대륙에서 한 주먹에 때려눕히게 하였다. 누가 능히 이런 일을 헤아렸겠는가. 이것은 하늘에 순응하고 땅의 배려를 얻은 것이며 사람의 정에 응했던 이치다. 
(07) 당시 만일 한(韓), 청(淸) 두 나라 국민이 상하가 일치해서 전날의 원수를 갚고자 해서 일본을 배척하고 러시아를 도왔다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나 어찌 그것을 우리들이 예상할 수나 있었겠는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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