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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서거 111주년 기념 장흥신문 기획특집(2)【옥중 집필본 동양평화론】전감(前鑑)에서 문답(問答)까지
관리자  |  ch23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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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26  10: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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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안중근 동양평화론과 이토 극동평화론 비교

칸트(Kant, I. 1724~1804)는 [평화]에 대한 두 가지 정답을 묻는다. 첫째 평화란 [전쟁의 폐허] 위에서 가능한 것인가? 모두 치명적 피해를 입어 더 이상 전쟁할 힘도 없는 상태에서 그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둘째 평화란 [자유의 무덤]에서 가능한 것인가? 강력한 제국에 종속되어 굴

   
▲안중근이 쏜 총에 피살된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동일의 벨기에산 FN M1900 권총

종(屈從)의 대가로 누리는 평화 또한 평화가 아니다. 힘의 의한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 주장을 두고 평화의 정의를 물었더니, <안중근이냐? 이토냐?>는 답은 서로 갈린다. 칸트가 지적한 도덕론에 의하면 전쟁은 악이며 영구평화야말로 인류가 도달해야 할 의무이자 목표지향점이라고 했다. 따라서 전쟁이 인격의 품위를 파괴시키는가 하면 성스러운 자유도 손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유한한 인간에게 있어서 [영구평화]란 논리는 영원한 과제이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조건을 제안한 것이 칸트가 우리 인류에게 제시한 선물이 있다면 나에게 맞는 저서라는 평가가 옳겠다. 칸트는 확정조항을 통해서 평화의 가능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1.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체제는 반드시 [공화정]이어야 한다.
2.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 체제]에 기초하여야 한다.
3.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의 조건]들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 칸트는 위에서 평화의 가능조건을 【공화정ㆍ연방체제ㆍ우호의 조건】을 내 들었다.

1. 안중근 동양평화론(하얼빈 저격이후 1909)⇒평화공존론 

[동양평화론]은 안중근이 하얼빈 의거 후 죽기 전에 남긴 유지의 글이다. “한국ㆍ청국ㆍ일본은 세계에서 형제의 나라와 같으니 서로 남보다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요지의 뜻”을 담았다. 그렇지만 오늘에 있어 형제간처럼 지내야할 사이가 매우 나쁠 뿐만 아니라, 서로 돕는 모습보다는 불화만을 세계 여러 나라에 자주 알려지도록 만들고 있다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이 오늘날까지 정책을 고치겠다고 세계에 발표하는 것은 일본으로서는 다소 치욕이 되는 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나 이는 불가피했던 일로 치장하여 먼 훗날 진지하게 논의할 일로 남겨두었으면 한다. 다만 먼저 짚고 넘어갈 일은 안중근 순국 일이 1910-03-26이면 국제법상으로 한국국치일(1910-08-29) 이전이니 촛불처럼 꺼져가는 순간일망정 ‘주권은 엄연히 한국에 있다’는 논의가 옳다. 일본은 범죄자 [인도권]은 있을망정 [공소권]이 없음을 지적한 말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책은, 청이 뤼순을 개방하는 일은 한ㆍ청ㆍ일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어 세 나라에서 대표를 파견해 평화회의를 조직한 뒤 이를 공포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신 구상을 제시했다. 이것은 일본이 얄팍한 야심이 없다는 것을 보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건은 안중근의 속 깊은 뜻이기도 했다.

뤼순(旅順 : ‘여순(Lushun)’의 표준어)은 일단 청국에 돌려주고 그것은 평화의 근거지로 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패권을 잡으려면 비상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뤼순의 반환은 일본의 고통이 되기는 하겠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익을 주는 일이며, 세계 각국이 그 영단에 놀라고 일본은 칭찬을 받고 신뢰가 되어 일본 청국 한국이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얻기에 이를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동양의 중심지이며, 항구도시인 뤼순을 영세중립지로 조성하여 각국 대표에 의한 상설위원회를 설치함과 동시에 하나하나 일을 꾸준하게 확장 사업인 바 단계별로 시행하자는 평화 및 민족주의 의론이다. 이토식의 힘에 의해 밀어 붙이는 입에 들붙었어야하는 평화를 지양하고, 공존의 평화를 희망했다.

2. 이토 극동평화론(청일전쟁 이후 1894)⇒극동침범론

이토의 극동평화론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보다 먼저 나와 안중근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문건이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죽음을 앞두고 동양평화론을 글로 적어 남긴 이유는 당시 이토가 거짓으로 동양의 평화를 유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토는 일본 메이지정부에서 극동평화로 잘 포장된 일제의 대외침략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로서, 조선을 일제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본은 1876년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朝鮮國은 自國의 邦으로 日本과 平等한 權을 保有한다]고 선언한 이래, [동양의 평화와 한국의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이 때의 [한국 독립]이란 5백년 이상 속국처럼 중국의 영향권 내에 있었던 한국을 청나라로부터 떼어놓고 나서 일본이 이를 지배하려는 속셈이 담겨 있는 등 위장된 명분을 만든다는 계산을 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명분으로 [반일세력(反日勢力)]을 제압하는 동시에 [부일세력(附日勢力)]의 활동력을 강화시키는데 주력하였으며, 종국에 가서는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병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토 식 [이토 히로부미 극동평화 사상]은 힘에 의하여,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하여 [평화라는 위험]을 다분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토의 [극동평화론]의 취지를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 상당수도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아시아가 서로들 연대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러자면 근대화에 앞선 일본이 중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른바 ‘일본 우월주의’다. 또한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들 역시 천주교를 박해했던 조선조정보다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온유하고 차분하여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지녔던 이 생각의 바탕에는 그 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사회적인 진화론]이 크게 작용했다. 결국 안중근이 저격한 사람은 이토이었으나, 실제로 그들과 맞서 싸우고자 했던 실질적인 대상은 이토의 순수한 거짓평화론과 한 판 붙자는 식의 커다란 싸움판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Ⅲ. 동양평화론 [현상↔복선↔문답]은 <各論>없는 피라밋트형이다

서문 16개 문단은 총론(總論) 자격으로 모두 서문(序文)의 자리에 놓았다. 그렇지만 각론(各論) 자격으로 자리한 40개 문단은 [전감(前鑑)]을 비롯해서 [현상(現狀)~복선(伏線)~문답(問答)]의 자리에 각 10개 문단씩 순서를 가리지 않고 국내 및 국제적인 굵직한 사건에 따라서 골고루 배정해서 그 자리를 곱게 앉혔다. 안중근이 세상을 떠난 지 110년! 지금까지 110년이 지났어도 빈 껍질만 남아있는 동양평화론은 똑같은 모양일진데, 앞으로 이대로 둔다면 1000년이 가도 변함없는 하나의 논리라는 자리에서 그칠 것이라는 피 끓은 용솟음이 잔잔한 피돌기를 찾아서 흐르리라. 앞으로 누군가가 동양평화론 5개 담론을 고르게 배정하여 [동양평화론이 영원한 미제]가 되지 않기를 희구(希求)할 것이다. 안중근은 이렇게 하라는 깊은 뜻을 담아 피라밋트형을 만들어 인용하라는 뜻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조용하게 지혜로운 후진을 기다리는 물음》은 아니었을까 하는 점에다 구두점을 찍는다. 5개 용어에 따른 각기 의미를 부여는 학회의 논의를 거칠 수도 있다. 배정된 40개 문단은 [전감(前鑑)~현상(現狀)~복선(伏線)~문답(問答)]의 자리에 의미에 맞게 10개 문단씩 배치(配置)하면 더 좋겠다.
[전감(前鑑)~현상(現狀)~복선(伏線)~문답(問答)]을 빈틈없이 안전한 자리에 두어 한 줌 율시의 응대로 동양평화론을 정성껏 다독이며, 위의 전감에 두터운 이부자리를 살며시 덮어주어 이 자리가 불안하지 않도록 다독였다. 안중근이 제시한 [총론(總論)]격인 [전감(前鑑)]의 바탕이 되는 밑바닥 10단락들이 임의 순서대로 가지런하게 [각론(各論)]의 자리를 펴고 [결심과 감상] 내용을 거울로 삼아 그 요약 자리라면 좋겠다. 피라밋트형인 3곳은 어느 단락에 어떻게 놓아도 상응하는 상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부르짖는 덕목을 모두 5가지로 설정하여 제시한다. 이 논지를 음미해 읽어 볼수록 안중근은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한 철학자의 자질을 넉넉히 갖춘 학술가임을 두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안중근의 든든한 목소리가 평자의 곁에 가만히 다가선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 다정함도 곱게 다가온다. 안중근(1879년-황해 해주)은 10단위 동년배이자 같은 지역출신인 이승만(1875년-황해 평산), 김구(1876년-황해 해주), 안창호(1878년-평남 강서) 등과 인성 윤리적인 측면에서나, 학문 교양적 측면에서 넉넉한 자산으로 비견(比肩)된다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판단을 하면서 든든한 마음이 상호 얽힌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서문을 비롯하여 모두 5단계로 나뉜다. 이 5단계가 제 집이 있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너뛸 수 없는 고도의 층계로 되어 있다는 점이 평자의 눈을 스쳐 지난다. [서문(序文)]을 알지 못하고는 [전감(前鑑)]을 이해하기는 많이 곤란하다. {전체의 대강}과 같은 [전감(前鑑)]이 넉넉했을 때 [현상(現狀)]을 섭렵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고, [복선(伏線)]의 주머니가 두툼하여야만 담론의 기초가 다소 풍부하여 [문답(問答)]의 자리가 넉넉하게 짜인다. 문답으로 의견을 나누었던 든든한 자료들은 인쇄매체를 통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고,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우리의 억울함을 널리 호소하려는 [결구(結句)]의 힘은 더 완고하리라 생각된다.

위의 5단계 담론을 토닥토닥 총론으로 삼아 [전감(前鑑)]을 흩뿌리면서 각론들의 에탄 목소리를 들어보면 물 한 모금이 우선 바쁘다는 목매임이 아련하게 들려온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자세히 음미해 읽어보면 마치 ‘피라밋형’을 잘 갖추고 있다는 논리를 만난다. [서문(序文)]은 맨 하단을 구성하여 그 밑바닥을 잘 깔고 있는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제1단계인 [전감(前鑑)]은 튼튼한 주춧돌을 깔고 서있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음을 쉽게 보여준다. 그 제2단계인 [현상(現狀)]은 기둥을 깔고 만지면서 마룻대 역할을 톡톡히 하며 든든하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으며, 제3단계인 [복선(伏線)]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넓고 야무진 기왓장 역할을 하면서도 [동양평화론]이란 집을 보존하며 지탱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4단계에서 보인 [문답(問答)]은 나라 잃은 수많은 한국 동포들이나 국내외 애국지사들은 물론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하 많은 인사들이 이곳을 찾아와 인류의 인권을 논의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일본의 부당성을 성토하는 자리로 꽉 차 있음을 비유적으로 상징하는 등 나라 잃은 설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뿐만 아니라 이 문답은 불법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한 나라의 대표를 잡아다가 상호 토론식으로 이야기하는가 하면 토론의 화살 끝을 인륜에 반하는 식의 강력한 일침의 현상들을 끝 부분에 가서 극명하게 보여준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서문(序文)에 반하는 결구가 빠져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이 [결구(結句)]를 새롭게 창안하여 5단계 모두가 피라밋형으로 얽혀져 있음을 지적하고 픈 심정이었다. 이는 바로 [전감(前鑑)]이 동양평화론 전체의 대강인 <총론(總論)>으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전감(前鑑) 뭉치를 갈라 여백으로 나누어 [현상(現狀)→복선(伏線)→문답(問答)]을 내용에 들어맞게 한 주먹씩 집어 흩뿌렸다. 이렇게 하여 성지(?)를 찾아 벌떼와 같이 몰려드는 자유의 사도(使徒)들이 자기의 주장을 문답(問答)을 통해 자유롭게 논의하면서 회담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침략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문답이 오감을 바랬다. 이는 통 큰 여론을 모아 세계 언론 등에 무더기로 뿌려 보내거나,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그 부당성을 알리는 역할을 충실하게 알리는 사명을 하는데, 초점을 두어 이와 같은 [결구(結句)]에 둔다면 어떠하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놓아서 모두 [6단계]로 줄을 세웠다. 이는 20세기(1900년대)초에 일본에게 청국과 러시아를 침략하려는 양 다리로 놓아주고 나서도 나중엔 조선까지 을사5적들을 앞세워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이라는 어처구니없이 사건을 당하는 창구역할이 되어버린 가상적인 밑거름으로 삼아본다. 이와 같은 나라 잃은 서러움이 전감이라는 총론에 한 가득씩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빈 껍질만 덜렁 남아있는 5단계 동양평화론 [전감(前鑑)]의 논리적인 정서를 각론격인 [현상(現狀)→복선(伏線)→문답(問答)]을 고루 뿌린다. 평자임으로 총론격인 [전감(前鑑)]의 씨앗들이 어느 항목에 뿌려져 있더라도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라는 율시 한 수가 충분한 자양분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 율시 한 수가 임의적인 논술로 배정한 결구(結句)와 어울린 [6단계]는 [서문(序文)→전감(前鑑)→현상(現狀)→복선(伏線)→문답(問答)→결구(結句)] 등의 어울림 한 마당이 되어 서로 끌어당기고 늘리는 압축의 역할을 충분하게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이와 같이 「압축의 美, 늘림의 美, 상호 얽힘의 美. 상호 끓어 당김의 美」 등이 작용하면서 너는 나를 도와주고 나는 너를 아끼면서 살아가는 진정한 평화와 사랑이 감돌 수 있겠다. 이것만이 진정한 동양평화가 아닐지 모르겠다.
이는 당시의 어수선한 국제정세는 물론 국내정세를 그대로 반영하는 창구의 역할이 이렇게라도 되었더라면, 하는 평자의 간곡한 염원어린 거름 한 줌을 도탑게 깔아본다. 우리 조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상황도 그러하고, 강력한 국가의식을 가슴에 품어보면서도 안중근이 구별한 5개 문단은 그대로 살려 배열하면서, “이 결구를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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