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단절”을 호소하는 현수막을 게첨하는 명절이 안타깝다.
명절이 명절답지 않게 다가오고 있다.
명절중에서도 가장 큰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은 국민 대이동이 시작되고 귀성하는 사람들은 만남과 정 나눔의 설레이는 연례행사로 소중하고 아름답게 치루어 왔다. 혹간은 선물 장만 하기가 빠듯하고 귀성하는 차편이 불편하여도 그 누구도 나정내지 않았다. 연노하신 부모님들은 자녀들과 손주들이 꼬까옷을 입고 찾아 오는 것만도 반가웠고 가슴속에 쟁여 놓았던 이야기를 나누며 혹은 토닥이고 혹은 가슴에 품는 것으로 명절을 쇠었다.
그 명절이 실종되고 있다. 코로나 펜더믹의 현상은 우리 모두의 명절마저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멈춤’과 ‘거리두기’와 ‘집합 지제’를 지상의 과제처럼 감당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역사의 시간이다.
참으로 가슴 아린 현수막이 시내에 게첨 되어서 눈길이 머무른다.
“아들아 딸아 이 번 설에 오지 마라. 코로나 안 걸리게 우리도 안 갈란다.”
이 현수막은 장흥의  행정과 치안의 대표적인 기관인 장흥군과 장흥경찰서에서 공동으로 게첨한  내용이다.
“고향에 안오고 안가기로 코로나 예방해 주셔요.” 장흥군이 게첨한 현수막의 문안이다. 얼마나 간절하고 다급하면 기관들이 앞서서 ‘멈춤과 단절’을 호소하는 현수막을 군청 사거리의 대로변에 게첨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만큼 코로나19의 사태가 지난 1년간 지구촌과 이 나라들과 우리 사회를 이토록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일상의 삶이 그 질서를 잃고 헤메고 있다. 실체도 형용도 없는 바이러스와의 지루하고 기나긴 대결은 아직도 결말이 보이지를 않고 있다. 참으로 예상치 못하였던 불확실성의 습격이 설날도 빼앗아 가고 있으며 자녀와 부모간의 아름다운 소통와 애정 나눔도 철저하게 훼방 하고 있다.

◆코로나19 제로, 청정 장흥은 “흥미진진-장흥”으로 바이러스에 도전하고 있다.
장흥군이 ‘대한민국의 흥이 시작되는 곳’ 국흥國興 문흥文興 여흥餘興 감흥感興을 창조하는 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하루하루가 지난한 이 시절에 무순 흥興 이 있어서 흥미진진 장흥을 지향 하는 것일까.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이 당당한 지향의 단어 속에는 코로나 제로의 청정 장흥의 자긍심이 내재되어 있으며 결코 코로나19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도전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제껏 군민들이 예방수칙을 철저하게 이행하였으며 공직자들은 한치의 소흘함이 없이 대응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보건 의료직 공직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수고가 코로나19 제로의 장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 자긍심을 바탕으로 이 나라의 흥을 주도 하고, 인문의 흥겨움을 익히게 하고 일상의 여흥을 향유하게 하며 오감을 행복하게 하는 감흥의 시대를 선언하는 장흥군의 예지적 발상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군민들은 격조 높은 덕담德談으로 명절을 승화 시키자.
“칭찬은 고래도 춤 추게 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격려하고 성원하고 칭찬하는 덕담을 나누면 상호 즐거워 진다. “빈 말이라도 그렇게 말 해 주니 너무 고맙네” 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건네는 말 마디에 서로가 흥겨울때가 있다.
“자네 얼굴 주름이 지혜와 경륜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머리가 반백이네 그려. 어야 중후하고 덕스러워 보여서 절로 호감이 가네”
“아야 자네 체중을 줄였는가?  잘했네. 나이 들수록 몸이 가뿐해야 쓴다네. 자네는 오래 살것네”
“친구 그대의 언행은 들을 때 마다 정이 넘쳐서 친구를 만나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단 말이시”
이웃과 친지와 자녀들과 부부간에 그저 칭찬하고 응원하고 배려하는 덕담이 넘쳐 나는 금년의 설 날. SNS로 화상 전화로 덕담의 홍수를 주고 받자.
그래서 이 명절, 코로나19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청정 장흥에서는 흥미진진 장흥에서는  정이 듬쁙 넘치는 덕담으로 승화하는 설 날로 공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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