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성 시집 “바람구멍”

시조 형식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현대 시조의 시적 역량을 확대해 온 장흥 용산면 출신의 시조시인  이한성이 단조시집 ‘바람구멍’을 출간했다.
이 시인은 1972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이후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정소파문학상), 광주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광주시인협회 초대사무국장과 광주ㆍ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현 시대를 대표하는 시조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는 그 형식이 비교적 명확하다. 때문에 다른 장르의 시에 비해 함축적인 시어와 리듬감 있는 음률이 가장 큰 매력으로 손꼽힌다.
초기부터 평시조, 사설시조, 양장시조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시조라는 장르의 매력을 피력해 온 이한성의 이번 시집은 시조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인 “단시조”를 통해 한 인간의 인생과 그를 둘러싼 생각, 생활, 그리고 고뇌 등을 담았다.
 
이번에 시인은 ‘단시조’라는 정형 미학의 가장 순도 높은 양식을 잔잔한 실감의 기록으로 묶었다.
(...중략) 아닌 게 아니라 함축과 절제를 핵심 본령으로 삼는 ‘단시조’야말로 서정의 원형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맞춤한 그릇일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이루어왔던 숱한 시간의 문양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그 안에 순간적이고 통일적인 인상을 구성해 내는 양식으로 단시조를 취택한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충만한 현재형’의 양식을 통해 이한성 시인은 삶의 순간적 충만함에 이르고자 하는 미학적 열망을 낱낱이 보여준다.
<해설 ‘서정의 순간을 드러내는 뚜렷한 정형의 범례’
유성호(문학명론가ㆍ한양대학교 국문학 교수)>
언뜻 글자 수가 부족해 보이는 것 같지만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면 독자는 몇 줄의 문장이 지닌 엄청난 밀도에 곧바로 압도당하고 만다.
이토록 짧은 문장으로 단어 하나하나가 이고 있는 공간과 무게를 전달할 수 있다니, 물질은 물론이요, 말과 글 또한 넘쳐나는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함축의 미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한성의 시집은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또 시집 곳곳에 자리한 장흥을 소재로 한 작품의 경우, 시인과 동향인 독자라면 더욱 생생하게 그 이미지를 더듬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시집을 읽는 이유는 시인의 감수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익숙해서 그저 그렇게 보이는 우리의 언행이, 그리고 주변 풍경이 시인의 손끝에서 번지는 시어로 다시 태어났다. 때로는 모노톤으로 변색되고 마는 일상을 찬란한 색으로 덧입히고 싶다면, 짧은 문장의 강렬함과 조우해야 한다. 그때가 바로 시집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 2020, 책만드는 집 간행, 125쪽 10,000원)

   장병호 영화 에세이 “은막의 매혹” 

코로나19의 사태 발생 이후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진 요즘이다.
예전과 같은 자유로운 외출은 물론이고 공연장이나 영화관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행위 또한 금기시되고 있다. 늘상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거리두기 또한 생활화가 된 요즘이지만 그래서 집에서 혹은 소수가 즐길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 또 찾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영화보기 아닐까. 소파에 앉아 혹은 침대에 누워 리모콘 버튼을 몇 번 누르면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말할 것도 없이 영화관의 큰 스크린과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이렇듯 영화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우리와 더 가까워졌다. 코로나19 때문에 신작들은 개봉을 미루고, 한때 영화관을 점유했던 인기작의 재개봉이 거듭 되고 있기에 우리의 고민은 하나로 귀결된다. “어떤 영화를 볼까?”
장병호의 영화 에세이 한물결 영화수상 『은막의 매혹』은 TV앞에서 영화 고르기에 지쳐버린 영혼을 위로할 단비 같은 책이다.
1975년에 개봉한 《바보들의 행진》을 시작으로 동서양의 영화 쉰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벤허》와 같은 작품의 경우, 1959년도 작품과 2016년도 작품이 어떻게 다른지, 만약 이 두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점은 무엇이 있는지를 세세하게 짚어준다. 제목은 들어 보았지만 아직 본 적이 없는 영화, 예전에 한 번 본 영화라서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영화 등등, 장병호의 문장들을 따라 책 속을 걷다 보면 지금껏 빈약했던 ‘봐야 할 영화 리스트’ 혹은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가 풍성해질 것이다.
“나는 영화 전문가는 아니고 그저 영화 보기를 즐기는 행복한 관객이기에 소박한 일반인의 눈으로 글을 썼다. 그래서 클리세니 시퀸스니 미장센이니 오마주니 하는 전문용어는 되도록 멀리했음을 밝힌다.”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힌 것처럼 친숙한 단어의 나열은 담백한 문장이 되었다. 간결하고 명확하며 그래서 술술 읽힌다. 난해한 표현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릴 필요가 없으니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할 때까지 즐거운 독서가 계속된다. 수필가, 문학평론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저자의 필력 덕분이다.
깔끔한 문장과 좋은 영화를 둘 다 접할 수 있는 매체는 그리 흔하지 않다. 장병호의 에세이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해야 할 만큼 풍성하다. 『한물결 영화수상 은막의 매혹』의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다 보면 코로나로 얼룩진 우리 일상이 풍요로움으로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장병호는 관산읍 출신으로 그간 통찰력 있는 문장과 예리한 감각으로 수권의 평론집과 교육 수상집을 출간하여 주목을 받아온 작가이다. 그 문학적 역량이 금번의 영화 평론집에서 새롭게 조명되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2021, 해드림출판사 간행, 328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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