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權判書尙愼(별권판서상신)/의주기녀
가면서 가시는 길 편안하게 가시옵고
길고 긴 만 리 길이 멀기도 하겠는데
소양강 달 없는 밤에 울어대는 기러기.
去去平安去    長長萬里多
거거평안거     장장만리다
瀟湘無月夜    孤叫雁聲何
소상무월야     고규안성하

남녀를 불문하고, 친지와 만나 따스하게 대화 나누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헤어지는 시간은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헤어지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상대를 보면 다시 주저앉고 싶은 갸륵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연인이었다면 더 이상 말을 해 무엇하겠는가. 아직 달도 뜨지 않는 초저녁이었다면 눈물과 한 숨이 마르지 못했으리라. 가고 가시는 그 길을 편안하게 가시옵고, 길고 긴 만 리 길일랑 하 많기도 하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외로이 우는 기러기 소리에 나는 어찌할거나(別權判書尙愼)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의주기녀(義州妓女:?∼?)인 여류시인으로 더 자세한 생몰연대와 행적은 알 수 없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고 가시는 그 길을 편안하게 가시옵고 / 길고 긴 만 리 길일랑 하 많기도 하겠군요 // 아직도 소상강에 뜨지 않는 달 없는 밤이 되거늘 / 외로이 우는 기러기 소리에 나는 어찌할거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권상진 판서와 이별하면서]로 번역된다. 사랑하는 임과 이별하고 난 후 가슴 저미는 시상을 일으켰던 것으로 상상된다. 소상강은 중국 호남성 남쪽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만나는 상강를 말한다. 소상강과 우리 판소리와는 깊은 인연을 맺고 등장하기도 한다.
시인은 임과 이별하면서 절절한 심회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가고 가시는 길 평안하옵시고, 길고 긴 만 리 길 많기도 하겠다면서 이별의 아픔과 절절한 심회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판소리 한 마당을 연출하는 마음으로 소상강을 이미지화 했을 것으로 보인다. 소상강에 뜨지 않는 달 없는 밤이 되거든, 외로이 울어대는 기러기 소리에 나는 어찌할거나 라고 했다. 이인로의 소상야우瀟湘夜雨를 보면 많은 풍취를 느낀다. [한 줄기 푸른 물결, 양 켠 언덕 가을인데(一帶滄波兩岸秋) / 바람 불자 보슬비가 가는 배에 흩뿌리네(風吹細雨灑歸舟) // 밤 되어 강변의 대 숲 가까이 배를 대니(夜來泊近江邊竹) / 잎 새마다 차가운 소리 모두 다 근심일세(葉寒聲摠是愁)]라고 했다. 이쯤 되면 소상강의 풍취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가시는 길 편안하고 만 리 길이 하 많은데, 소상강 달 뜨지 않아 기러기 소리 어찌할까’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去去: 가고 가다. 平安去: 평안하게 가다. 長長: 길고 길다. 萬里多: 만리길이 많기도 하다. 瀟湘: 소상강. 양자강 중류에 있는 8경 중의 하나다. 無月夜: 달이 뜨지 않는 캄캄한 밤. 孤叫: 외롭게 울어대다. 외로이 울부짖다. 雁聲: 기러기 우는 소리. 처량히 우는 기러기 소리. 何: (나는) 어찌 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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