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부인천이씨행적비(烈婦仁川李氏行蹟碑)는 용산면 상금리에 소재하고 있다.
이 비는 인천 이씨의 烈行(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수원 백씨 상금 문중의 협조를 받아 외아들 백호윤(종팔)이 건립하였다.

열부 이씨는 금곡마을에서 1930년 4월26일 태어났다. 천성이 순박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한 이씨는 나이 19세에 상금마을 수원백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남편의 휘(諱)는 장선(璋善)이다.

이씨의 나이 23세 남편은 28세였고 슬하에 호윤(종팔)은 두 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남편인 백씨는 위기의 나라를 구해야 한다면서 부인에게 외아들을 맡기고 자원입대하여 강원도 양구의 전투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그리면서 1950. 11. 16. 전사하셨다.
전사통보서와 유품은 받았으나 유해는 찾지 못했다. 외아들 호윤은 아버님의 가묘를 만들어 매년 성묘하면서 유해 찾는 일에 정성을 다 했다.
아들의 효성을 하늘이 도왔는지 1983년 11월 훈장과 군번이 기록된 유품을 가지고 육군본부를 찾아가 수소문한 결과 그토록 그리던 아버님이 국립 서울 현충원 36단지 4판 묘역(표지석20209묘소)에 안장되어 계셨다. 31년만에 묘역을 찾은 것은 전쟁 중으로 각종 기록의 오류 탓이었다.
몇 시간 표지석을 붙들고 통곡을 하였고 아버님 사후에 유해가 모셔진 묘소를 찾았다는 것을 마지막 할 수 있는 효행을 한 것으로 위로하면서 자식하나 믿고 64년 동안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홀로 살아오신 어머님께서 2016년 10월13일 향년 87세로 소천 하시자 국립 서울 현충원에 사별한지 64년 만에 아버지 곁에 모시고(36단지4판 묘역 표지석20209번) 3년 상을  치룬 후 고향땅 상금과 금곡 사이 아늑한 자리에 열부인천이씨행적비(烈婦仁川李氏行蹟碑)를 문중의 협조로 어머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지난 15일 비를 완공하고 제막식을 거행했다.
시대의 풍습이 효를 잊고 살아가는 세상에 귀감이 되는 사연으로 지나는 길손마다 비문을 읽고 눈시울을 붉히시니 먼저가신 분께 명복을 빌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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