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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높았던, 고향 장흥의 작은 산들예강칼럼(136)/박형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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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23  10: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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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관, 제암, 사자, 억불, 불용(부용)’ 등 장흥의 큰 산들은 그 이름이 퍽 웅대한데, 그런 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산들도 즐비하다. 이산저산 산기슭에 마을들이 늘어 있고, 추억들은 그 산곡을 감도는 멜로디로 남았다. 작지만 컸던, 고맙고 그리운 고향 산들. 높지 않아도 첨봉직출(尖峰直出) 필세(筆勢)에서, 또는 관음봉(觀音峰) 선학(仙鶴)의 어깨로 흘러내린 능선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산세를 두고 '붓(필,筆), 삿갓(笠) 입모(笠帽), 중(僧) 송락'으로 빗대거나, 거기에서 마을이름을 얻기도 했다.  ‘솟은 산 <소산(蘇山)봉’, ‘소(쇠)산 <우산(牛山)’으로 지칭되던, 작은 산들이 있었고, 서로 이름들이 중첩되거나, 따로 이름이 없는 산들도 많았다. 그 산곡 산야를 뒤로 두고 대처로 떠나갈 때야 누구든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환향(還鄕)의 다짐을 그 산 앞에서 했을 터.
 
1) 장동 우봉(牛峰, 배산2구)- 죽산安씨 마을로 ‘웃소峰, 아래소峰’이 있는데, ‘솟은 봉, 소봉’으로 받거나 또는 와우(臥牛)지세의 ‘우봉(牛峰)’으로 표기했을 것. 장동면에서 보성 웅치면으로 통하는 ‘기재재(蟹峴)’로 연결된다.

2) 장평 우산(牛山, 250m)- 옛 장평북교가 있었고, 농악으로 유명했다는 ‘흥골’이다. “기와집이 많아 우산을 쓸 필요가 없어 우산(雨傘)이라 했다” 함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정묘지,1747>에 ‘牛山’은 없었는데, <경술지,1910>에 나온다. 옛 ‘고적(古跡) 가좌소(加佐所)’가 있던 곳으로도 추정한다. 옛 장택현의 북쪽 중심지였고, 동학혁명 농민군의 북쪽 집결지로 ‘牛山’이 등장했다.
3) 고읍관산 소산봉(蘇山峰,239m) - 우리말 ‘솟은 산’을 ‘소산(蘇山)’으로 받았다한다. 우뚝 불끈 솟아있다. <정묘지, 고읍방>에는 “10여장 길이, 7,8척 넓이의 석굴이 있고, 굴(屈)의 처마에서 낙수 소리가 거문고를 탄 것과 같다”했다. 그 ‘소산 石屈’ 아래에 ‘소산 古寺’가 있었다 한다.

4) 고읍방촌 상잠산(158m) - ‘잔뫼’를 ‘상잠(잔觴 봉우리岑)’으로 옮겼다. 옛 회주목(懷州牧)의 주산(主山)으로 ‘상잠古城’이 있었다. 고려 때에 침입하던 왜구를 막던 입보처 石城. ‘잔뫼’ 사례는 장동 ‘배산(잔盃,뫼山)’산성에도 있다.

5)고읍 우산도(牛山島) - <정묘지>에 ‘우도(牛島)’인데, <경술지,1910>에 ‘우산’이고 <조선지지,1910>에 ‘우산도’였다. 지금은 연륙되어 있다.

6) 용산 묵촌 필봉(筆峰,440m) - ‘筆峰, 문필봉’은 전국적으로 많다. 그 필봉 정기를 받을 때면 선비가 나왔다했다. <정묘지, 남면방>은 “오도峙에 있고, ‘매화봉’으로 불렸으며, 하늘을 누를 만큼 수이하다(押天秀異)”고 했다.  그 筆峰 아래 ‘쇠쇠봉(140m)’에 ‘남도장군 이방언’ 선생이 모셔져 있다 한다.

7) 용산 칠리안 능선 봉우리들 - 승주봉(僧主峰,329,9m)이 있다. ‘풍길, 상발’에 걸쳐있는 노승봉(老僧峰,339m)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봉화대가 있고, 왜구침입과 동학혁명 때 접전지였다고 한다. 금곡 칠리안 필봉(筆峰,219m)도 있다. ‘농어두,칠리능선’의 기암괴석을 이빨로 보고서 ‘연치(連齒)암’이라 했다. ‘연치암’ 유래를 ‘얹힌 바위’라는 우리말에서 찾는 주장도 있다.

8) 모자꼴 입모봉(笠帽峰)들 - 여러 ‘입모봉’이 있다. <정묘지, 남면방>에 ‘입모봉(笠모봉)’은  “그 아래 奇岩이 호랑이 같다”라고 했다. <정묘지 유치방> 늑룡동에도 ‘입모봉’이, <정묘지 장동방>에 ‘모봉(帽峰)’이 있다.

9) 부산 기역산(騎驛山,263m) - ‘기악(奇嶽)산, 기역산, 송락봉’으로도 부른다. <정묘지, 용계방>에는 ‘奇嶽山’으로, 심천 마을에 가깝다. 스님의 모자(송락)에서 유래한 ‘송락봉’ 또는 ‘노승봉, 필봉’으로도 불렀다. <조선지지>에 '騎驛山'인데, ‘역원터, 역터’로, ‘역기(驛基)’에서 유래했을 것.

10) 안양 기산 옥녀봉(玉女峰) - <정묘지 안양방>에 “옥녀봉이 ‘기산 서쪽’에 있다”고 했다. ‘옥봉 백광훈’의 호(號) ‘玉峰’ 유래를 해남의 ‘옥산, 원경산’에서 찾기도 하지만, ‘기산 옥녀봉’에서 왔을지도 모르겠다. <안양면지,1998>에는 玉女峰 3곳으로, ‘요곡’과 ‘교동’에도 있다. ‘옥녀단좌’라 했다. ‘기산팔경’에 ‘옥녀모연(暮烟)’이, ‘비천12경’에 ‘옥봉낙적(落笛)’이 등장한다.

11) 강진~대덕 경계 관찰사봉(388m) - 1583년 음9월경 전라관찰사 구봉령(1526~1586)이 회령포鎭에서 1박 하고 기재재(蟹峴)를 지나던 흔적이다.

12) 대덕 부곡산(425m),공성산(365m),오성산(218m) - ‘부곡산’ 아래 ‘분토(分土)’ 마을은  장흥과 강진의 경계라기보다는 ‘가루분(粉)’에서 온, ‘粉土’ 마을이고, ‘가마골山’에서 온 ‘부곡(釜谷)山’으로 여겨진다. ‘공성산’ 아래 ‘양하’ 마을은 그 물길이 좋았다. 장흥 땅 사자지맥은 ‘사자, 억불, 불용, 천관’을 거쳐 ‘부곡, 공성, 오성’으로 마감되어 남해로 흘러 들어간다.

13) 회령진城 뒷山 - 1597년 음8월 중순에 李충무공은 회령鎭城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취임하며 재기를 했는데, 그 회령포진城 뒷산(142m) 정상에서 남도바다를 바라보며 각오를 다지지 않으셨을까? ‘통제사山’이라 부를 만 하다.

14) 회진 선학동 공지산(관음봉) - <선학동 나그네>에 나온다. “법승(法僧)의 장삼자락 흐름이요, 밀물에 떠오르는 비상학(飛翔鶴)의 날개짓 모양이며, 명당이 숨어있다”했다. ‘李청준山’이라 명명해 본다.

15) 유치 오복 마을 “호복지세(虎伏之勢)” - 지금은 수몰된 유치면 오복마을의 ‘오복(五福)’은 원래 ‘호복(虎伏)’에서 유래한 것. 마을 뒷산 등성이는 영락없이 호랑이가 엎드린 등마루 모습이었고, 그곳 ‘사인암’은 ‘호두(虎頭)’였다.

16) “축내” 마을은 “와우지세(臥牛之勢)”가 아니다. - ‘축내’를 ‘축내(丑內)’로 표기하며 ‘소 축(丑)’자를 간결하게 사용한데서, 이를 두고 ‘와우지세 명당’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원래 방축(防築), 방죽이 있던 거점’ 동네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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