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香爐峰(등향로봉)/서산대사 휴정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과 같은데
일천 집의 호걸은 초파리와 같고
밝은 달 청허히 누워 바람 운치 별미로다.
萬國都城如蛭蟻    千家豪傑似醯鷄
만국도성여질의    천가호걸사혜계
一窓明月淸虛枕    無限松風韻不齋
일창명월청허침    무한송풍운불재

향로봉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의 하나다. 인제, 고성, 간성 3군 경계지역으로 1293m에 고지에 위치한다. 구름 덮인 날이면 향로에 향을 피우는 것 같은 형상으로 보여 향로봉이라 했다고 한다. 맑게 게인 날에는 금강산 비로봉과 고성 절벽강이 흐르는 모습이 보이며 동해 해금강과 만경창파까지 보인 곳이다. 대사도 이런 산을 올랐던 모양이다. 만국의 도성일랑 개미집과 같고, 일천 집의 호걸은 마치 초파리와도 같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끝없는 솔바람의 운치는 그야말로 별미라네(登香爐峰)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으로 조선 중기의 승려이자 승군장이다. 어려서 남다른 바가 있어 돌을 세워 부처라 하고, 모래를 쌓아 올려놓고 탑이라 하며 놀았다고 한다. 9세에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안주목사 이사증을 따라 서울로 옮겨와 수도에 정진했다.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만국의 도성일랑 개미집과 같고 / 일천 집의 호걸은 마치 초파리와도 같다네 // 창에 비친 밝은 달 아래 청허하게 누우니 / 끝없는 솔바람의 운치는 그야말로 별미로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향로봉을 오르며]로 번역된다. 전국의 산재된 향로봉은 7개나 된다. 여기서 인용되는 향로봉은 금강산ㆍ국사봉ㆍ설악산ㆍ오대산으로 연속되는 북부 태백산맥에 위치한 1,296m봉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태백준령이라 했듯이 하늘 머리가 닿을 듯한 봉우리의 진수를 맛보면서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우주와 하늘과 같은 보다 크고 원대한 것에 집착했음을 알게 한다.
큰 스승으로 불린 대사의 안중에는 오직 큰 것도 작게만 보인 미세함으로 표현했다. 만국의 도성일랑 마치 개미집과 같고, 일천 집의 호걸은 초파리와도 같다는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아마 태백산 준령에 위치한 향로봉에 올랐더니 온 세상이 그렇게만 보였던 모양이다. 도성이 개미집만 같고, 호걸들도 초파리와 같이 작게만 보였다는 시상의 덩치다.
화자는 지상의 도성이나 호걸들을 아주 작게 표현하는 선경의 심회를 보이더니만, 후정의 정취에 매료되지 아니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창에 비친 밝은 달 아래 청허하게 누우니, 끝없는 솔바람의 운치는 그야말로 별미였다는 시상이다. 청허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을 뜻하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도성은 개미집 같고 호걸은 초파리 같아, 밝은 달 아래 누우니 솔바람 운치 별미로군’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萬國: 만국. 都城: 도성. 如蛭蟻: 개미집과 같다. 千家: 일천 집. 가구. 豪傑: 호걸. 似醯鷄: 초피리와 같네. // 一窓: 한 창가. 明月: 밝은 달. 淸虛枕: 청허하게 눕다. 아무 생각없이 눕다. 無限: 끝이 없다. 松風韻: 소나무 운치. 不齋: 가지런하지 않다. 곧 높낮이 여러 곡에 의한 운치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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