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토론을 거치지 않은 ‘선포의 진리’ 누군가 선포하면 신도처럼 따르는 그러면서 집단은 점점 더 순수해지고, 점점 더 과격해진다. 그럴수록 집단은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요구하고, 선동가들은 거기에 맞춰서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들도 감당할 수 없는 사태까지 가버린다. 이렇게 주관적 희망과 객관적 현실을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하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이성적인 부분은 약해지고 감성적인 부분만 강조되다보니 확증편향이 심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이질적인 것을 잘 못 받아들이고,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것이 등장했을 때  굉장히 번거로워 한다. 왜? 그것은 따라서는 나의 사고 전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귀찮고 복잡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줘야 지지해주고 환호해주고 그래서 영향력이 생기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팩트 없는 얘기라도 흥미가 있으면 지지를 받는 나꼼수나 김어준, 주진우기자 같은 부류가 성공 모델이 되다보니 유튜브도 보수와 진보가 듣는 체널이 고정되어 간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가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1950년대 동독에서 오욕의 말년을 보낼 때 썼던 시 “해결의 방법”이다. 시민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그들을 포기할 수는 없고 결국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지지를 얻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의 시다.

작금의 장흥군과 장흥군 의회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무너진 정의와 공정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군수도 군의원도 민심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여론은 순식간에 돌아설 수 있다. 어제까지 우리군수님, 우리 의원님 하며 표를 주었던 군민들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거나 삶의 기반인 생명과 재산을 무너뜨리면 민심은 권력을 외면할 것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무척 존경하고 너무 좋아했다. 그는 정권연장에 실패하면서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정치적 ‘복수의 악순환’의 씨를 뿌렸다. 퇴임 후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진보정치의 성공을 위하여 역할을 하려하자 이명박 정부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가슴 아픈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아주 교묘하게 자기들의 기득권 확보에 활용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슬픈 현실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나는 지금도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부동산 폭등, 한일관계, 한미관계, 남북관계, 불평등 양극화, 출산율 저하 등 무엇 하나 시원한 해답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는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는 정의로운 정치를 한다면, 부족한 점이 있어도 양해하면서 기다리겠다는 지지자들의 아름다운 마음일 것이다.

장흥군민은 지금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장흥군의회”를 경험하고 있다. 상위법을 무시한 조례, 대한민국 지방자치 사상 전무후무한 ‘예산심의 거부’, 보복성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의정활동 등 팩트를 벗어난 지엽적인 문제로 허송세월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니 어찌할까?

지역민의 민원해결 등 열심히 잘한 일도 많지만 감정을 접고 모두 내 탓이오, 깊이 생각하여 판단하고 정리한다면 군청사 신축 계획안 승인의 건도 집행부와 핑퐁게임으로 비난 받지 않을 것이다.

난제 해결의 실마리는 대화와 타협이다. 집행부 의회 모두가 책임의식을 갖고 군민을 위하고 소멸위기의 장흥발전을 위해 상생의 협치를 기대한다.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 무너진 정의, 사라진 공정, 물구나무선 민주주의”라고 외치면서 현 정부와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힘없는 장흥에 민초들이지만 정의롭지 못한 집행부나 의회를 향한 메아리가 들리고 있다. 해도 해도 너무들 한다는 소리다.              /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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