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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보고 나 자신에게 듣는다.특별기고/김창석/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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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07  10: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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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은 체면을 중요하게 여겨 남의 눈치에 민감하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가르쳐온 우리 교육에 따르면,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을 자연스레 형성된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를 먼저 계산한다, 또한 개성이 중시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인정 받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막상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실례로 요즘 한 젖줄에서 갈라져 서로 으르렁 대는 두 칼잽이 추미애 법무와 윤석열 검찰의 촉수가 잘 설명해 준다.
흔히 오늘날 한국정치권에서 보수, 진보 골똥 논객들이 함부로 내뱉는 천박하고 혐오스런 독설 또한 모난 돌 이랄 수 있다.
우린 어릴 때부터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옷을 입어도 유행하는 옷을 입고, 밥을 먹을 때도 남이 시키는 대로 촘촘한 예절을 따라 한다. 솔직하게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기 보다는 배운 대로 남의 생각에 맞춰 대답을 한다. 행복도 욕망도 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쪽을 쫓아 먼저 달성 해야만 성취감을 갖는다. 정말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 인생은 불안하고 피곤하기만 하다.
조선 후기 성호학파의 대표적 문인인 혜환 이용휴는 남의 시선에 얽메여 피곤한 삶을 사는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글을 남겼다. 오늘날과 과히 다르지 않다.
나와 남을 비교하면, 나는 가깝고 남은 멀다, 나와 사물을 비교하면 나는 귀하고 사물은 천하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그와 반대로 친한 내가 먼 남의 명령에 따르고, 귀한 내가 천한 사물에 부림을 당한다. 왜 그럴까? 욕망이 밝은 정신을 덮고, 습관이 정신을 감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좋아하거나 미워하며 기뻐하거나 화내는 감정, 이러 저러한 행동이 모두 남을 따라만 하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말하고 웃는 표정까지 남들의 노리갯감으로 바친다. 정신과 생각과 땀구멍과 뼈마디 어느것 하나 내게 속한 것이 없게 되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 이용휴(아암기)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존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남의 눈치를 보며 자기 검열을 한다.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 내 얼굴 표정을 바꾼다. 심지어 나의 감정조차 남의 감정에 맞춘다. 그러니 나란 우렁껍데기 처럼 몸뚱이만 둥 떠있고 남의 눈과 귀에 좌우되어 가짜 나로 살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자신을 믿으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노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다.
與其視人(여기시인)  寧自視(영자시)  與其聽人(여기청인)  寧自聽(영자청)
 남을 살피느니 나 자신을 살피고 남에 대해서 듣느니 나 자신을 들으리.
호남 실학을 대표하는 학자 존재 存齋 위백규 魏伯珪(1727~1798)선생이 열 살 때 지은 좌우명 이라니 신통하고 놀랍다.
그는 바로 장흥군 관산읍 출신으로 그의 동상이 현재 장흥 공설운동장 입구 국도상에 우뚝 서 있다.
그의 연보에는 열 두 살 때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 사람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고는 하나 그 맘 때면 고작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어린 나이다.
존재는 어릴 적부터 천재의 면모를 보였다. 두 살에 육갑(六甲)을 외웠고, 여섯 살에 이미 글을 쓸 줄 알았으며, 여덟 살에 주역(周易)을 배웠다. 게다가 손 귀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 났으니 가족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이러쿵 저러쿵 주문도 많고 그럴수록 자유로운 행동은 제약을 받고 심적 부담도 커 갔을 것이다.
이 글은 그런 그가 벽에 붙여 놓고 다짐함 문장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각오를 다졌으리라. 누구에게 이끌려 가는 삶은 살지 말고 내가 이끌고 가는 삶을 살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를 하자. 남이 하는대로 따라 가거나 남의 눈치를 보지말고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좌고우면 하지 않고 나 자신을 믿으며 나아갈 것이다. 죽을 때까지 본래의 나를 지키며 살아 가리라. 그는 이 좌우명을 품고 새로운 실용학문을 펼친 호남 실학의 비조(鼻組)로 우뚝 섰다. 이용후 역시 다른 글에서 말한다.‘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면 사물도 나를 옮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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